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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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밤과 푸른 달   반은 염소, 반은 악마인 외계 생명체 '크람푸스'가 지구를 침공해 사람들은 늑대 유전자를 주입한 인간을 만들어 내 그들과 싸우게 했다. 그렇게 4년 2개월의 전쟁이 끝난 후 인간을 위해 싸웠던 존재들은 골칫거리가 된다. 이후 인간들은 늑대 인간을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시설에 가둬둔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명월을 보기 위해 강설은 시설을 찾아간다.

바키타   배아통을 실은 우주선이 지구에 불시착했다. 우주비행사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키타를 보게 된다. 오래전 바키타가 지구에 왔을 때 그들은 침략이 목적이 아닌 인공화합물을 먹는 게 목적이었기에 인간들은 그들과 함께 공존했다. 그러다 바키타가 어느 순간 이후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우면서 그곳을 떠나게 된 과정이 떠올랐다.


푸른 점   지구와 닮은 행성을 찾아 떠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우주로 나간 '사투르호'의 함장 시에라는 다른 대원들보다 조금 일찍 냉동 수면에서 깨어났다.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푸른 점 지구를 잠시 동안이나마 혼자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선체 외부에 가벼운 충격이 가해져 우주선의 인공지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에라가 직접 수리를 하기 위해 우주로 나갔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만다.

옥수수밭과 형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천재 자폐증 소년 푸코는 형이 너무나도 좋고, 학교에 갔다가 집에 일찍 돌아와 형과 함께 옥수수밭에서 하는 소풍도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사랑하는 형이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푸코는 형이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펐는데, 이틀 후에 옥수수밭에서 형을 다시 만나게 됐다. 발목에 숫자 9가 새겨진 형은 푸코가 알던 바로 그 형이었다.


제, 재   해리성 인격 장애가 있는 천재 재는 또 다른 인격인 제와 한 몸을 쓰고 있다. 두 인격은 잠을 잠으로써 교대로 다른 인격이 깨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재인 재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수면제를 먹으면서까지 해야 할 일을 해놓고 잠에 들었고, 재와는 달리 제는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할 뿐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제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다.

이름 없는 몸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를 마친 후에 도망쳤던 집으로 향했다.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던 노인들이 득시글거리던 그 마을이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조용했다.


-에게   '나'는 이름을 잊어서 저승차사가 부르는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해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 그러다 광화문에서 잊지 않겠다며 이름을 구호처럼 외치는 많은 여성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이제 지구는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고 있다. 절에서 동자승으로 자란 효원은 동생들을 먼저 수송선에 태워 보내고 떠나지 않겠다고 한 효종 스님의 곁을 지킨다.


두 세계   유라는 소설을 현실처럼 즐길 수 있는 '노랜드'에서 판매되는 책 <아락스>에 오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공 아락스가 원래의 결말과는 다르게 목을 매 자살을 한 결말이었다는 것이다. 유라는 관리자로 그 책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고 나중엔 시스템 전체가 비어버린 걸 알게 된다. 유라는 최근에 <아락스>를 구매한 독자를 찾다가 35번이나 완독한 신규영을 만난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지구를 침략한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에 참전한 군인 이인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까웠던 미군 친구 벤을 마지막으로 추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를 타고 달리던 도중 이인은 사고가 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열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은 SF 장르가 두드러졌는데, 차갑게만 느껴지는 SF가 아니라 천선란 작가의 따스함이 듬뿍 담긴 SF가 몇 편 있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흰 밤과 푸른 달>, <푸른 점>, <우주를 날아가는 새>가 유독 감성적인 느낌을 풍겼다.

<흰 밤과 푸른 달>은 지구를 침략하러 나타난 외계 생명체에 대항하기 위해 유전자 변이 시술을 받은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든 떠날 것처럼 느껴졌던 명월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우주 밖으로까지 나가게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강설은 하고 싶었던 말을 나쁘게 들리도록 하고서 돌아섰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라는 걸 다시 말해줘야 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한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푸른 점>은 엄마의 기억이 생생한 시에라가 새로운 지구를 찾아 나서는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의 끝부분에는 큰 반전이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사랑했던 푸른 점을 똑같은 마음으로 여긴 시에라에게 그 사실은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른 대원들을 위해 엄마가 남긴 유언과도 같은 선택을 한 게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역시 <푸른 점>과 같이 지구를 떠나는 이야기였는데, 전자와는 다르게 남겨진 이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쓸쓸함이 느껴졌다. 회상과 현재의 시점을 오갔던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런 상황임에도 남은 이를 신경 쓰던 효종 스님의 걱정이 애틋하게 다가와 눈물이 나기도 했다.

감성적인 이야기만 담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때때로 환기가 되었다.

<옥수수밭과 형>은 마지막에 너무 소름이 돋아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제, 재>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자의 이야기였는데, 한쪽 인격에게만 치우친 두뇌로 인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이름 없는 몸>은 주인공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늙은 노인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을 하고서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하니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이후 마을로 다시 돌아갔을 때 옆집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뜯어먹고 있었다는 장면 역시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이 세계보다는 다른 세계에 살고 싶어 했던 유라의 쌍둥이 유진과 소설 속 아락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천선란 작가의 책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모두 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만다. 이 책 역시 너무나 좋았다.

아주 어색한 만남이 될 것이다. 같은 종족의, 같은 나이였던 두 소녀는 70년 후 늑대와 할머니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강설은 기다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모래 알갱이보다 작아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쳐다보는 곳 어딘가 명월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했던 시간에 비해 훨씬 기다릴 만했다. <흰 밤과 푸른 달> - P56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중이다. 옷을 갈아입으려는 지구로부터. 격변을 버틸 수 있는 많은 대안을 세웠으나 모든 시뮬레이션이 실패로 끝났다. 판이 뒤집히는 대혼란 속에서 생명체는 하늘에서도, 땅속에서도, 바닷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슬퍼하고 억울해할 것도 없었다. 공룡이 사라졌듯 인간도 사라져야 할 때가 다가왔을 뿐이므로. <푸른 점> - P90

잠을 자지 않으면 깨어 있는 동안 몸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인격을 바꾸는 방식은 무의식이었다. 잠들지 않으면, 깊이 자지 않으면 한없이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제, 재>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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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두 사람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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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25년 만에 동창회가 열렸다. 그것도 무려 호텔에서 열린 것이었다. 동창들은 어떻게 저렴한 참가 회비로 호텔을 빌릴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히사카 고이치가 동창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수긍했다. 그가 스캔들 메이커라는 점은 차치하고 현직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창회는 히사카 고이치의 건배사 직후에 각자 여러 종류의 술을 들면서 시작되자마자 아비규환이 됐다. 술맛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자마자 뱉은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바로 사망했다. 동창회 참석자 20명 중 무려 17명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국회의원이 참석한 동창회라는 부분에 주안점으로 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불특정 다수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경찰은 혼란에 빠진다.





이번 시리즈가 지난 시리즈 <다시 비웃는 숙녀>와 달랐던 점은 미치루의 타깃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챕터마다 이름이 붙어있어서 그 사람이 타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읽는 동안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결말에 이르렀을 땐 다른 이유가 밝혀져 예측을 벗어났다.

거기다 지난 두 시리즈와는 다르게 한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를 벌였다.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한 20명의 사람들 중 17명이 죽고 3명이 상해를 입었다. 이후에는 관광버스 좌석이 폭발하게 만들어 방음벽에 부딪쳐 26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중학교에서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시골 헬스장 폭발 등의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한 사람만을 노린 게 아닌 우연찮게 같은 장소에 있던 수많은 사람에게까지 상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섬뜩하게 다가와 공포감이 극대화됐다.


사건이 여러 장소에서 일어났고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경찰은 시작부터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첫 사건에서 스캔들로 유명한 현직 국회의원이 죽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후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수법의 테러가 일어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CCTV에 우도 사유리라는 여성이 포착되어 그녀를 집기 위한 수사로 진행되었다. 그녀는 의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도망친 여성이었는데, 시리즈의 주인공인 미치루와 어쩌다 마주치게 되면서 그녀의 계획을 돕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너무나 닮았지만, 우도 사유리는 점점 미치루의 계획에 의문을 품었고 마지막엔 자신을 처리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동안 너무 무서웠던 건 관련 없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는 점이었다. 미치루의 살인 계획에 포함된 사람도 가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도 죽거나 다쳤다는 점이 끔찍했다. 나중엔 금요일 저녁에 신칸센에서 테러를 일으키려고 했을 만큼 미치루는 살인귀가 되었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우도 사유리도 미치루에게 동조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어떻게든 빠져나오게 되면서 두 사람은 그렇게 찢어지게 됐다. 하지만 둘 다 죽지 않았고 경찰에게도 잡히지 않았기에 나중에 또 만나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원수가 되어서 말이다.


미쳐버린 악녀 미치루가 다음엔 또 어떤 악행을 벌일지 벌써부터 두렵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이번 사건은 그게 반대가 된 게 아닐까 싶어서."
"반대, 라니요?"
"수단을 위해서는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즉 애초에 대규모 살인이라는 수단을 위해서라면 목적은 복수든 정치적 의도든 상관없는 거지." - P57.58

동류. 다만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질적인 부류.
두 사람이 만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P294

별안간 사유리는 이해했다. 이 조소야말로 미치루의 본성이다. 타인의 고뇌, 고통, 절망, 단말마. 오로지 그것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비웃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한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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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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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는 아버지의 은인인 줄 알았던 테나르디에를 고발했고, 그 집에 자베르가 습격해 일당을 모두 소탕한 이후 장 발장은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곧장 그 집에서 이사를 해 친구 쿠르페락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마리우스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가씨 코제트가 장 발장의 딸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그녀를 도통 찾을 수 없어 절망한다. 그러다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사는 집을 알게 되고, 그녀와 재회한 이후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행복에 젖는다.


마리우스가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 친구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각 집에서 총 등의 무기들을 들고나와 경계를 섰다. 염탐하던 사복경찰 자베르를 붙잡아 묶어두는 등의 수확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슬퍼서 이제 죽은 목숨이라 여기며 친구들의 혁명에 동참한다.

전편에서 장 발장은 자베르에게 잡힐 뻔했지만 가까스로 도망을 쳐서 목숨을 구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장 발장은 더욱 경계를 갖고 모든 걸 주의하는 듯 보였다. 코제트가 머무는 공간과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분리해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찾아내 밤마다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가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몰래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마리우스는 물론이고 코제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 발장의 경계심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채 깊어지기도 전에 이별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의 곁을 떠난 지 4년 만에 찾아가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하지만, 구식인 할아버지는 코제트가 어떤 집안의 여자인지 모른다는 점으로 인해 결혼을 반대한다. 결국 할아버지 질노르망은 다시 한번 손자를 잃고 말았다.


이러는 사이에 감옥에 있던 테나르디에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을 한다. 에포닌은 남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선 그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탈옥한 아버지 테나르디에가 코제트의 집을 털려고 했을 때 가로막으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가여운 여자였고, 마지막엔 마리우스 대신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 깊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또한 테나르디에의 또 다른 자식인 아들 가브로슈의 활약이 있었는데, 테나르디에 부부가 다른 여인에게 버린 두 아들이 길에 나앉아 가브로슈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이 이어지기도 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서로가 동기간인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던 세 형제의 하룻밤이 안쓰럽고 가엽기만 했다.


이후 소설은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며 좌절한 마리우스가 친구들의 편에 서게 되는 상황과 장 발장이 마리우스의 존재를 알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후반이 이어졌다.


이제 마지막 5권만 남았다. 갈수록 읽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마지막이니만큼 열심히 읽어 끝을 내야겠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이러한 사랑이 자기들을 어디로 이끌어 갈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도달한 사람들처럼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 P328

이날 코제트의 시선은 마리우스를 미치게 하고, 마리우스의 시선은 코제트를 떨리게 했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갖고 떠났고, 코제트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떠났다. 이날부터 그들은 열렬히 사랑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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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20분의 남자 스토리콜렉터 10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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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 디바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오로지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는 이유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지만, 훈련을 받고 특수부대 레인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훈장까지 수두룩하게 받은 디바인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모든 걸 벗어던지고 전역해 대학에 가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로 결정한다. 월가의 투자자로 돈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디바인은 매일 아침 6시 20분에 통근열차를 타고 몸담고 있는 '카울앤드컴리'로 출근을 한다.


다른 말단 신입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해 일하던 디바인에게 메일이 한 통 도착한다. 보통의 메일 주소와는 다른, 숫자로 된 주소로 온 메일에 담긴 내용은 '그녀가 죽었어'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한때 디바인과 좋은 감정을 나누고 있었고 딱 한 번이지만 관계를 하기도 했던 세라 유즈가 52층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메일을 받지 않은 걸 알게 된 디바인은 곧장 52층으로 향했고,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후 디바인은 자신을 용의자로 의심하는 형사는 물론이고, 카울앤드컴리의 CEO 브래들리 카울의 정보를 캐내기 원하는 전직 장군 애머슨 캠벨, 세라 유즈의 입사 동기이자 경쟁자인 제니퍼 스타모스, 카울의 현재 여자친구 미셸 몽고메리 등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사건들을 맞닥뜨린다.




디바인이 너무나 잘 하고 또 적성에도 잘 맞던 군인으로서의 삶을 버린 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고 보기엔 어려울 듯했다. 선택은 디바인이 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가 겪은 상황이 인간에게 혐오를 갖게 해 모든 걸 떨쳐버리게 만든 것처럼 여겨졌다. 그로 인해 디바인은 아버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본인은 혐오 그 자체인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투자자로서의 삶이었다.

전역을 하긴 했어도 몸을 쓰고 단련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은 디바인은 새벽 4시에 운동을 하고 난 후에 남들보다 일찍 6시 20분 기차에 올랐다. 사람이 드문 시간이라서 그 시간에 기차를 탄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 CEO인 브래드 카울의 대저택, 일명 '궁'이라 부르는 곳에 때때로 카울의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몸매가 드러나는 멋진 비키니를 입고 나와 있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칙칙한 삶에 유일한 낙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일상을 살아가던 디바인에게 메일이 도착하면서 평범했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좋은 감정으로 만났지만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했던 세라 유즈가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었다. 사내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기에 유즈와 디바인이 데이트를 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지만, 칼 행콕 형사가 디바인의 집까지 찾아와 그녀에 대해 캐물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디바인은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듯한 남자들에게 이끌려 애머슨 캠벨을 만나게 된다. 장군은 전역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비밀리에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하며, 카울앤드컴리의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역한 지 좀 되긴 했어도 아직도 뼛속에 군인의 상명하복 DNA가 남은 디바인은 캠벨의 명령을 따르고 비밀리에 일을 해야만 했다.

디바인은 일단 세라 유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위장 살인이라는 걸 알고 퇴근 후에 회사에 들어갔다가 유즈의 라이벌인 제니퍼 스타모스와 사무실 책상에서 섹스를 하는 브래드 카울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다. 이후 디바인은 스타모스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궁의 비키니 여인 미셸 몽고메리와 얼떨결에 가까워져 브래드 카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심지어 '51구역'이라 부르는 통제구역을 들어가 보기도 한다.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기 위해 디바인은 룸메이트 중 한 명인 화이트 해커 윌 밸런타인에게 메일 주소에 대해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으로 디바인은 세라 유즈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다른 룸메이트인 법대 졸업생 헬렌 스피어스에게 상담을 하기도 했다. 칼 행콕 형사 말고 다른 두 형사가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칼 행콕이라는 형사가 없다는 말에 상황은 자꾸만 미궁에 빠진다.

이런 상황으로도 모자라 세라 유즈 외에 또 다른 죽음들이 줄줄이 이어져 디바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소설은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을 발단으로 디바인이 회사의 CEO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면서 돈 세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줬다. 덕분에 그곳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결말이 다 될 때까지 범인의 윤곽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 의문스러움을 남겼다. 그때쯤이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드러내야 마땅했으나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 정말이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 진짜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읽을 때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었는데 다 읽고 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 초반에 굉장한 단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여 그저 흘려넘겼으나 알고 보니 아주 큰 단서였다. 인간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데커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발다치의 새 소설은 전직 특수부대 장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그의 활약이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쉬웠는데, 다음 시리즈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리즈는 언제나 환영이다. 이번 소설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다음에 풀어내주길 바란다.

너는 그날 밤 회사에 들어가는 데 네 보안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출입 기록에 네 이름이 떴잖아. 누군가가 네 카드를 복제했어. 문제는 누가 했느냐야. - P252

"우린 정보가 필요해, 디바인. 그것도 많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해. 자네는 이미 거기에 들어가 있으니 이 문제를 조사하기에 더할 나위 없지. 그게 자네가 여기 와 있는 이유야. 우리가 자네를 주시한 이유고. 자네가 지금 마운트키스코에 사는 이유, 자네가 매일 카울의 집을 지나쳐 가는 이유라면 말일세. 우리는 브래드 카울을 반드시 잡아들여야 해. 그러려면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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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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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 오늘도 활기찬 아침입니다   아나운서 지민은 서울에 있는 방송사 취업에 번번이 낙방을 하고 지방 방송국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공채로 입사했지만 프리랜서이기에 방송국 외부 행사로 부수입을 올리며 생활하는 그녀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가 되어도 그녀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손원평 × 피아노   혜심은 어렵게 얻은 집에서 6년 동안 운영했던 공부방을 정리하고 있다.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에 매물로 나온 집을 매매하려다 일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천천히 집 정리를 하고 있을 때 4개월째 공부방 비를 내지 않은 준용이가 불쑥 찾아왔다. 돈을 내지 않은 건 아이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혜심은 괜히 심술이 난다.


이정연 × 등대   설희는 점심시간인데도 한가해 보이는 복어 전문 식당에 수습 직원으로 입사한다. 홀에서 업무를 배우다 주방에서 복어를 손질하는 법을 배우고 난 뒤에 정직원이 된 그녀는 룸에서 서빙을 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다 설희는 이 가게의 여러 룸에서 번번이 불법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전 직장에서의 일이 되풀이될까 걱정이 된다.

임현석 ×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화장품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진영은 가맹점주들을 구슬리는 게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본사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점주들과 대화를 나눌 땐 본사 욕을 하는 게 스스럼없을 정도다. 물론 진영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정아은 × 두 친구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지현은 어젯밤에 빙판길에 미끄러져 어깨가 부서진 917호 환자를 보살핀다. 갑자기 다쳐서 극도로 예민해졌는지 917호는 지현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있지만, 그녀는 묵묵히 받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917호 환자를 보고 나온 지현은 그녀가 중학생 때 친했다가 소원해진 승미라는 걸 알게 된다.

천현우 × 빌런   군필 삼수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백수인 도지윤은 여기저기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쏟아부은 코인이 원금의 20배가 뛴 걸 보며 쾌재를 부른다. 부모님의 눈치에도 열심히 백수짓을 하며 게임에 몰입해 돈만 쓰던 지윤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는 다른 코인에 전 재산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게 스캠코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지윤은 현금 서비스를 갚아야 하는 게 막막했는데, 마침 코인 오픈 채팅방에서 물류센터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이를 따라가게 된다.


최유안 × 쓸모 있는 삶   통역사인 혜린은 선배의 제안에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온 영국 방송국의 현지 코디네이터 일을 하게 된다. 혜린은 일을 하면 할수록 감독의 각본대로 따라가는 촬영이 껄끄럽고, 거기다 다큐의 주제가 한국의 출산율이라 이 일이 업무로만 여겨지지 않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한은형 × 식물성 관상   위워크에서 식물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민지에게 비건 식당 3군데를 운영하는 보이사가 일을 제안했다. 민지가 비건 식당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보이사의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된 민지는 매니저로 승진을 하게 되지만, 보이사의 보여주기식 PC 주의가 점점 불편해진다.




8명의 작가가 쓴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월급사실주의'라는 프로젝트 2편이다. 1편은 2023년에 출판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지만 평이 괜찮았다. 다양한 직업군의 애환을 그린 소설이라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되던 책이었다.


손원평 작가의 <피아노>는 개인적인 문제가 직업적인 고충으로 이어져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혜심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었다면 개인적인 문제가 업무로 이어져도 큰 상관은 없었을 텐데, 그녀가 어린아이들을 다루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감정적인 부분이 복잡하게 다가왔다. 집 문제로 공부방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몇 개월이나 공부방 비를 밀린 준용이 왔을 때 반갑지 않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에겐 잘못이 없기에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혜심의 상황이 그녀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 애착이 있는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는데, 나눔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냥 버린 그 피아노가 누군가가 가져간 걸 알고선 찾아 헤매는 상황이 왠지 그녀의 처지와 닮아 있어서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 피아노로 인해 준용과 다시 얼굴을 마주한 혜심이 자신의 감정은 털어버리고 아이를 위해 보인 태도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사회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해지는 상황으로 속마음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게 눈에 띄던 소설도 있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의 진영은 본사 영업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가맹점주들 앞에서는 본사 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점주의 편이라는 걸 보여주는 그 행동으로 비위를 맞추고, 본사에서는 점주들을 욕하는 상사들의 말에 대꾸를 해주기도 뭐 한 부분이 곤란하기만 했다.

<두 친구>는 소원해진 친구와 우연히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박선생이라 불린 이의 업무적인 태도가 기억에 남았다. 다른 선생들, 간호사들처럼 크게 화를 내거나 뒷담화를 하지 않는 박선생의 무표정이 너무 공감이 됐다. 업무보다 힘든 게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식물성 관상>은 되지도 않는 PC 주의를 매번 지껄여대는 사장 보이사의 뜻을 따라야만 하는 민지의 상황이 너무 공감이 됐다. 마음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어서 보이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게 답답해져 한 마디 했을 때 돌아온 건 현실적이라 쓴맛이 남았다.


직장 생활에 통쾌함 따윈 없었다. 일보다 힘든 게 사람이라는 것 또한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불같은 음성에 주위 선생들이 진저리를 쳤지만, 박선생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통화를 감내했다는 전언이었다. 그때 박선생의 마음에 무엇이 오갔을까. 내가 박선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짚어보던 지현은 박선생의 무표정이야말로 제 직업을 유지하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아은 <두 친구> - P142

오늘이 그가 가장 슬기롭고도 평화로운 날일 것이다. 슬기롭고도 평화로운 연기를 해왔다는 걸, 그런데 충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야 사실을 알게 될 것이지만 오늘은 정말 그럴 것이다. 그날의 민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한은형 <식물성 관상>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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