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커버 개정판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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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하지환은 고향 신해에서 일하고 있는 손지은 경감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랜만의 연락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가움을 표하고 난 후에 손지은은 하지환의 친구 황동혁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말을 전했다. 그것도 복부에 총상을 맞고서 말이다. 발견됐을 때의 특이점은 록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환은 휴가를 내고 친구를 떠나보내기 위해 신해로 향했다.


태어나서 고등학생 때까지 신해에 살았던 하지환은 서울로 대학에 온 이후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신해에 발령이 나 한동안 다시 그곳에서 머물게 됐었다.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 중이던 시기에 엄마가 류마티스와 위암으로 사망을 했었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신해에 머물면서 고등학교 시절 후배이자 의사인 효린에게서 엄마가 류마티스 환자의 손 모양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 진단을 내린 의사 우동규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소설은 판사로 재직 중인 하지환에게 현재 닥친 사건을 먼저 보여줬고, 이후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친구 황동혁이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이었다. 소설의 제목이 퀸의 곡과 똑같은 <보헤미안 랩소디>인데, 황동혁이 발견되었을 때 해당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부분과 연결 지었다. 중요한 의미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후 하지환이 신해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을 때 엄마의 죽음에 오진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류마티스 전문의 우동규를 고소하고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러는 한편으로 효린의 제안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면서 하지환의 과거부터 쌓여 맺힌 응어리를 풀어나가는 과정 또한 진행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친구 황동규의 의문의 죽음,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류마티스가 아닌 환자들을 오진해 이득을 본 의사 우동규를 고발하는 과정을 풀어나갈 줄 알았다. 황동규의 아버지 또한 우동규에게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사망했기에 이 두 사건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런 느낌을 풍기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하지환이 정신 상담을 받게 되면서 소설은 조금 다른 분위기로 흘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 없이 엄마의 기대를 받으며 가난하게 자란 하지환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판검사가 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엄마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던 하지환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어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반대로 인해 공부만 하며 좋은 학교로 위장 전학까지 다녀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하지환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깨닫지도 못했기에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

그걸 풀어주는 과정을 통해 소설은 황동혁, 우동규 사건과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중요한 건 하지환의 심리적 요인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현재 일어난 사건과 겹쳐지면서 다소 놀라운 결말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힌트가 정말 많았는데 소설 전개에 그저 휩쓸려버린 바람에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라 가볍게 읽기에 괜찮았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악이 되기도 한다. 합법인 행동이 악이고 위법인 행동이 선일 때도 있다. 한 사람이 선과 악을 번갈아 저지르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법정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더러 자신이 선의 영역에 있음을 선포해달라고 한다. - P9

"다양한 감정을 정확하게 사용하면 인생이 훨씬 다채롭고 즐거워지겠죠.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감정이 충분히 소화돼서 갈등이 남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슬픔을 느껴야 할 때도 분노를 느끼면 슬픔의 감정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몸속에 남아서 다른 갈등을 일으키게 되거든요."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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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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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노 고헤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중화소바집을 운영하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 아내 란코도 시집을 온 후부터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소박한 일상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2년 전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고헤는 가게 문을 다시 열지 못했다. 란코의 빈자리가 컸다기보다 아내를 잃은 후에 그 무엇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를 좋아하는 고헤가 한 번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을 펼쳤을 때 30여 년 전에 란코 앞으로 온 엽서를 발견하게 된다. 고사카 마사오라는 대학생이 란코 앞으로 보낸 것이었지만 그녀는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며 잘못 보냈다는 엽서를 애써 써서 보냈었다.


등대가 그려진 엽서를 들여다보던 고헤는 문득 직접 등대를 보고 싶어져 등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이후 고헤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한편으로 란코와 그녀에게 엽서를 보냈던 대학생의 이야기를 마지막에서야 알게 된다.




몇십 년 동안 함께 산 아내를 하루아침에 잃은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병이나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게 아니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게 준비를 하러 간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 죽어있는 걸 발견한 고헤의 입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을 터였다. 가게 일 때문에 아내를 괜히 고생시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을지 몰랐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란코가 떠난 이후 고헤는 중화소바집을 열지 못했다. 그리 넓은 가게는 아니라서 어떻게든 혼자 꾸려나갈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오래전 아내에게 온 낯선 이의 엽서를 발견한 이후 문득 등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차를 빌려 가까운 등대를 보고 온 고헤는 조금이나마 살아갈 힘을 얻은 듯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등대가 마치 인생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컴컴한 늦은 밤에도,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에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배들을 향해 빛을 비추는 등대야말로 삶의 지표와도 같았다.

고헤가 내내 등대만 보러 다닌 건 아니었다. 잠깐씩 등대를 보러 다녀왔고, 돌아온 집에서 자식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간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짱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다고 또다른 친구 도시오가 말해주었다. 나중엔 간짱의 그 아들인 다키가와 신노스케와 함께 고헤는 등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함께 사는 큰딸은 물론이고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둘째 아들,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과 각각 시간을 보내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 자식들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중엔 세상을 떠난 란코에게 엽서를 보내왔던 대학생 고사카 마사오를 만나기도 했다.


소설은 그렇게 특별한 사건 없이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흘러갔다. 보통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은 일상의 담백함이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해서 즐겁게 읽었다. 마치 고헤의 중화소바처럼 담백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는데 맛있어서 계속 찾게 되는 음식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게 참 좋았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일이 숱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딸, 아들, 몇 안 되는 친구.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는 멀리서만 봐왔는지도 모른다. 삼각형도 육각형도 멀리서 보면 전부 원으로 보인다. 아니, 너무 가까워서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 P206

하늘색과 바다색과 안개 속에서 등대는 스스로의 빛깔을 지우고 숨죽인 듯 보이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불을 밝혀 항로를 비춘다. 숱한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저것은 조부다. 저것은 조모다. 저것은 아버지다. 저것은 어머니다. 저것은 란코다. 저것은 나다.
저것은, 앞으로 살아갈 내 아이들이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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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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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는 할아버지 질노르망의 손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을 버렸다고만 여겼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 퐁메르시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러 간 마리우스는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퐁메르시가 아들이 나이 든 이모와 함께 참석한 교회에 꼬박 모습을 드러냈다는 걸 교회 집사를 통해 듣게 되면서 마리우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부유한 할아버지의 집을 나와 고르보 누옥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간다.


몇 년이 흐른 후 마리우스는 변호사가 되어 여전히 고르보 누옥에서 지내고 있었다.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간 그는 매일같이 그곳 공원에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부녀를 목격한다. 아직 어린애 티가 나던 소녀는 마리우스가 공원에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놀랍게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마리우스는 그녀에게 반해 쫓아가다가 집을 알아내기까지 한다.




소설 3권의 주인공은 마리우스였다. 이전까지 팡틴과 코제트의 입장에서 장 발장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장 발장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마리우스는 부유한 할아버지 질노르망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 세상 그 무엇에도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였는데, 그런 그가 바뀌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비밀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자신을 버렸다 여긴 아버지 퐁메르시가 사실은 아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몰래 교회 예배 때마다 숨어서 지켜봤다는 걸 전해 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할아버지가 자신의 신변을 담보로 아버지를 협박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이후 마리우스는 왕정주의자인 할아버지에게서 벗어나 공화파가 되어 정치적 신념까지 바뀌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위해 싸우던 아버지를 존경하는 건 당연했고 말이다.

부유한 할아버지의 집에서 벗어나 가난함의 상징인 고르보 누옥에서 지내게 된 마리우스는 생각보다 괜찮은 듯했다. 아무래도 그가 변호사가 됐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던 덕분일 테고, 스스로 박차고 나온 부유함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마리우스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던 터라 이웃 종드레트의 방세까지 대신 내주기도 했다. 여기서 종드레트가 어떤 인물인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정체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리우스의 상황이 변하게 된 건 공원을 매일 산책하러 나온 부녀를 보면서부터였다. 이들이 장 발장과 코제트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마리우스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저 힐끔힐끔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젊은 혈기로 인해 뒤를 쫓아 집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이 이사를 하게 되어 다시는 그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지 못해 좌절하게 된다. 스토킹은 예나 지금이나 안 될 일이지만, 장 발장은 물면 안 놓는 자베르에게 언제까지고 쫓기는 신세이기 때문에 거처를 옮기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마리우스는 종드레트의 집을 방문한 그 부녀를 벽의 구멍 너머로 보게 된다. 동시에 종드레트가 과거에 코제트를 핍박한 테나르디에라는 게 밝혀졌고, 복수를 위해 불한당들을 끌어모았다. 마리우스는 테나르디가 워털루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구한 은인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님을 이전 책에서 분명히 했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를 구한 은인이라는 불가피한 선택 앞에서 마리우스는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는데, 이 무슨 악연인지 마리우스의 신고를 받은 당사자가 자베르였다. 자베르도 참 끈질기고, 테나르디에도 명이 참 긴 것 같다.


소설은 위기에서 벗어난 장 발장이 다시 한번 자베르의 앞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마리우스의 이야기를 진행한 와중에 곁들인 다른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 역시나 읽기 힘들었다.

마리우스는 오 년 이래 가난, 곤궁, 심지어 고뇌 속에서 살았지만, 진정한 비참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한 비참, 그는 방금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아까 그의 눈 아래를 지나간 그 인간 쓰레기였다. 정말 남자의 비참밖에 보지 않은 자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이고, 여자의 비참을 보지 않으면 안 되며, 여자의 비참밖에 보지 않은 자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으로, 어린애의 비참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 P293

아직 자신을 알지 못하는 영혼의 그 첫 시선은 하늘 속의 여명 같은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빛나는 미지의 것의 눈뜸이다. 열렬히 사랑할 만한 암흑을 갑자기 어렴풋이 비추고 현재의 모든 순진함과 장래의 모든 정열로 이루어진 이 뜻밖의 빛의 위험한 매력은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우연히 나타나서 기다리는 일종의 막연한 애정이다. 그것은 천진난만함이 부지불식간에 쳐 놓은 올가미요, 그러기를 바라지도 그렇게 할 줄도 모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올가미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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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인 더 하우스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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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는 코스타리카로 떠나 모녀와 함께 평범한 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뒤에 그는 다시 미국으로, 자신이 발견된 숲으로 돌아왔다. 와일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라일라, 방학을 맞이해 집으로 돌아온 매슈를 지켜보는 생활을 이어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와일드에게 일어난 사건은 처음엔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자신을 버린 부모와 혹시 있을지도 모를 형제, 친척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혈통을 찾아주는 사이트에 등록했었다. 그 결과 와일드는 육촌 친척쯤 되는 PB,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은 대니얼 카터라는 사람과 연결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이트를 통해 대니얼 카터에게 연락을 하자 탈퇴한 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PB는 와일드가 코스타리카에 가 있는 동안 연락을 해왔는데, 마지막으로 보내온 메시지가 마치 유서와 같은 것이라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와일드는 대니얼 카터를 직접 찾아갔으나 엄마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매슈를 통해 PB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유명해졌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피터 베넷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전작에서 와일드는 그의 삶의 터전이었던 숲을 벗어나 코스타리카로 향하는 선택을 했었다. 그것도 모녀와 함께 말이다. 그건 와일드에게 기적과도 같은 선택이었고,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6개월 만에 다시 그 숲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혈연과 관계된 사건을 맞닥뜨렸다. 얼떨결에 찾은 아버지 대니얼 카터는 엄마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젊은 시절에 군인으로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여러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아내 소피, 딸들과의 일상에 떨어질 폭탄을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에 와일드는 제대로 된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그러고선 PB라는 이니셜의 피터 베넷이 남긴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게 되는데, 매슈를 통해 그가 서바이벌 연애 프로그램의 승자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성 우승자인 젠과 결혼해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에 피터는 처제 마니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했다는 폭로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후 그는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렇게 와일드의 혈연관계로 보이는 이들과 관련된 사건 외에 '부메랑'이라는 온라인 조직의 이야기가 한편으로 등장했다. 그 조직은 인터넷에서 다른 이들에게 악플을 달거나 괴롭히는 이들을 처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동물 이름으로 닉네임을 지은 6명의 사람들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름은 물론이고 성별, 나이, 거주지, 직업 등 아무런 정보 없이 오로지 인터넷 악플러를 처단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인터넷으로 무엇이든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그들은 악플러를 처단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했고, 처단 결정을 내리면 단계별로 벌을 주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할런 코벤의 이전 작품 <스트레인저>에 등장했던 크리스 테일러가 부메랑의 리더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가물가물했는데, 문득 떠올라 흥미로운 연결이라 생각했다.

얼떨결에 사라진 혈연을 찾게 된 와일드가 궁지에 몰리게 된 건 집에서 총 세 발을 맞아 죽은 은퇴한 경찰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와일드는 피터 베넷에게 악플을 남긴 IP를 찾아 그 집에 온 것인데 이미 죽은 이로 인해 졸지에 살인범 취급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FBI 법의학자 또한 똑같은 총에 세 발을 맞고 사망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와일드에게는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유능한 변호사 헤스터가 있었고,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수양 동생 롤라가 있었다. 그리고 라일라와 매슈도 있었으며, 잠깐 삐끗하긴 했지만 은퇴한 경찰서장 오렌도 있었다. 와일드는 부모에게 버려진 신세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곁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가족만큼이나 그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일드의 혈연관계인 피터와 관련된 사건에 부메랑 조직이 연결되어 흐르던 소설은 상상도 못했던 비밀이 밝혀져 충격을 줬고, 범인의 정체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놀라움을 안겼다. 더불어 그토록 궁금했던 와일드의 출생에 관한 사실도 드러났다. 너무나 다행인 건 와일드의 친부모가 일부러 그를 버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와일드는 조금이나마 편안해진 듯했다. 마지막에 드디어 안정을 찾으려는 듯한 장면을 보면 말이다.


충격적인 비밀과 반전이 여러 번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혈연관계를 찾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더러운 욕구가 드러나 몸서리가 쳐졌고, SNS와 유명세에 중독된 이들이 이해가 안 되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런 과정으로 흘러온 소설은 주인공 와일드에게 좋은 마무리를 지어주며 끝이 났다. 와일드의 이야기가 계속됐으면 싶은 바람도 조금 있긴 하지만, 드디어 정착을 하고 싶은 모습으로 보여 이대로의 끝도 좋았다.

헤스터 크림스틴과 대다수 세상 사람들은 ‘숲에서 온 소년‘의 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을 테지만 정작 소년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소년이 생각하기에 그의 부모는 죽었거나 그를 버렸다. 그러니 그들이 누구이고, 그를 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적어도 좋은 쪽으로는. - P12

비밀을 햇볕 아래로 끌고 가라. 일단 햇볕에 노출되면 비밀은 시들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틀렸다.
정말로 시들어 죽는 비밀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비밀, 지나치게 강해지는 비밀도 있었다. 그런 비밀들은 햇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주위를 파괴한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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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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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특채로 들어온 신입 윤서리는 초짜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노련해서 자신의 팀장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다. 서형우 팀장은 다른 부서의 팀원, 그것도 여자라는 윤서리에 대한 소문이 들려와도 귓등으로 흘려넘겼다. 그러다 윤서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나자 호기심에 그녀의 파일을 들춰보았다. 그리고선 윤서리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였다.

서형우에게 발탁된 윤서리가 해야 할 일은 범죄조직 '비원'의 뒤를 봐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놓는 조직원을 적당히 잡고 봐주며 돈을 받는 그런 부패 경찰의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윤서리는 서형우가 시키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후로도 윤서리의 단독 행동이 서형우 본인은 물론이고 비원 우두머리의 눈치까지 보게 되자 그는 윤서리를 특별한 임무에 내보냈다. 연쇄살인마를 처단하는 작전으로 포장한 사망 미션이었다.

상사의 지시에 윤서리는 11년 전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산성 부근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서형우가 말한 연쇄살인마 정여준과 마주하게 된다. 정여준이 의외로 그녀를 죽이지 않고 데려간 이후 윤서리는 비원에 대척점에 있는 '산성'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마치 프롤로그와 같은 소설의 도입에서 이 책의 장르가 SF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공격을 주고받는 남녀의 모습 뒤로 손에 들고 있는 칼이 허공에 멈추거나 시멘트 벽이 날아오는 등의 능력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누가 이길지 훤히 보이는 대결은 남자가 여자를 봐주고 아지트로 데리고 옴으로써 끝이 났다.

이후 부패 경찰 서형우가 신입답지 않은 신입 윤서리를 발탁하는 초반 과정을 보여줬다. 비원이 대체 뭔지, 서형우는 대체 왜 그들을 봐주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돈 때문이라기엔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 윤서리는 서형우의 눈밖에 날 행동을 종종 했다. 그로 인해 서형우는 윤서리를 잘라내기 위해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작전이라고 포장한 곳에 그녀를 보냈다.

그 이전부터 소설의 배경이 조금 독특하다는 걸 언급하고 지나갔다. 11년 전에 산성으로 유명한 곳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 그 지역에 사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사고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해 그 도시 인근에 사는 사람들마저 떠나게 했다. 그로 인해 일명 '산성'이라고 불린 그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와 같은 곳이 되었고, 싱크홀이 있는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 곳곳은 통제가 되어 관계당국에서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윤서리는 그 싱크홀에서 가족을 잃었다는 과거가 초반에 드러났다. 그녀의 부모는 싱크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시신도 찾을 수 없었는데, 당시에 학생이던 윤서리는 착실하지 않았던 터라 학교에 가지 않아 목숨을 부지했다고 서형우에게 밝혔다.

그런데 싱크홀을 떠나온 윤서리가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가게 되면서 연쇄살인마라고 했던 정여준을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소설 초반에 보여줬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정여준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다른 이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제거한 한편, 윤서리는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켜 아지트로 데리고 왔다. 기절했다 깨어난 윤서리는 커다란 공동이라던 그곳에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심지어 그곳 사람들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도 밝혀져 놀라움을 줬다. 정지자, 복원자, 파쇄자라고 불리는 각기 다른 세 가지 능력을 그들 모두 가지고 있었다.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물체를 움직이거나 부수거나 원래대로 복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소설은 SF다운 면모를 보이며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그러다 산성 사람들 사이에 서형우가 심어놓은 스파이가 있다는 게 빠르게 밝혀지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11년 전 싱크홀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서 그곳을 올라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화가 드러났다. 가장 강력한 초능력을 가지게 된 최주상과 이경선이 왜 대립을 이루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비원과 산성으로 갈라졌다는 걸 빠르게 밝혀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비밀과 드러나지 않았던 능력을 보여주며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설 뒤편에 쓰인 것처럼 SF와 스릴러, 재난과 히어로물이 결합되었고, 여기에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장르까지 곁들여 푹 빠지게 했다. 온갖 장르를 조화롭게 연결 지어 흠뻑 빠져서 읽었다. 이들의 끝이 어떻게 될지, 삶과 죽음이라는 그 거대한 간극을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궁금해서 빠르게 읽게 만들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아직까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 소설이었다. 재미있다는 말은 너무 뻔하고 흔한 표현이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진짜 너무 재미있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을 정도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나를 탓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고, 마지막 여운까지 짙은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책을 또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로도 만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제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넷플릭스 뭐 하냐!)

"그래, 우리 힘은 의지에 좌우되는 에너지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젠 정말 잘 알겠어. 이 능력은 의지를 가진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중략)
그럼 난 이제 죽음을 각오한 너와 싸워야 하는 걸까. 아무도 꼭두각시가 되지 않고, 네가 날 구하려 하지 않고, 나도 널 구하려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하지 않아도 네가 구해질 순 없을까…." - P352.353

"전 경선산성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서 싸우고 있어요. 저한테 잡혀 오기 전의 윤서리 씨 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제 목적인 거예요." - P175

이제 대체 누가 두 번째 나선계단을 만들 수 있을까. 누가 남은 사람들을 햇볕 드는 세상으로 등 떠밀 수 있을까.
난 그 희망이 한 사람에게서밖에 보이지 않아.
이번 싱크홀에서 우리를 구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정여준이야. - P264.265

by. 정여준
"자꾸 이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 왜 이렇게 당신이, 익숙하고 그리운 거죠?" - P338.339

by. 윤서리
"나도 그래. 나도 당신이 그리워. 당신이랑은 다른 의미로 더 많이, 더 오래 그리워했어. 내가 아직도 만나지 못한 미래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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