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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경찰청에 특채로 들어온 신입 윤서리는 초짜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노련해서 자신의 팀장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다. 서형우 팀장은 다른 부서의 팀원, 그것도 여자라는 윤서리에 대한 소문이 들려와도 귓등으로 흘려넘겼다. 그러다 윤서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나자 호기심에 그녀의 파일을 들춰보았다. 그리고선 윤서리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였다.
서형우에게 발탁된 윤서리가 해야 할 일은 범죄조직 '비원'의 뒤를 봐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놓는 조직원을 적당히 잡고 봐주며 돈을 받는 그런 부패 경찰의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윤서리는 서형우가 시키지 않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냥 넘어갔지만 이후로도 윤서리의 단독 행동이 서형우 본인은 물론이고 비원 우두머리의 눈치까지 보게 되자 그는 윤서리를 특별한 임무에 내보냈다. 연쇄살인마를 처단하는 작전으로 포장한 사망 미션이었다.
상사의 지시에 윤서리는 11년 전 거대한 싱크홀이 생긴 산성 부근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서형우가 말한 연쇄살인마 정여준과 마주하게 된다. 정여준이 의외로 그녀를 죽이지 않고 데려간 이후 윤서리는 비원에 대척점에 있는 '산성'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마치 프롤로그와 같은 소설의 도입에서 이 책의 장르가 SF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공격을 주고받는 남녀의 모습 뒤로 손에 들고 있는 칼이 허공에 멈추거나 시멘트 벽이 날아오는 등의 능력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누가 이길지 훤히 보이는 대결은 남자가 여자를 봐주고 아지트로 데리고 옴으로써 끝이 났다.
이후 부패 경찰 서형우가 신입답지 않은 신입 윤서리를 발탁하는 초반 과정을 보여줬다. 비원이 대체 뭔지, 서형우는 대체 왜 그들을 봐주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돈 때문이라기엔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 윤서리는 서형우의 눈밖에 날 행동을 종종 했다. 그로 인해 서형우는 윤서리를 잘라내기 위해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작전이라고 포장한 곳에 그녀를 보냈다.
그 이전부터 소설의 배경이 조금 독특하다는 걸 언급하고 지나갔다. 11년 전에 산성으로 유명한 곳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 그 지역에 사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사고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해 그 도시 인근에 사는 사람들마저 떠나게 했다. 그로 인해 일명 '산성'이라고 불린 그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와 같은 곳이 되었고, 싱크홀이 있는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 곳곳은 통제가 되어 관계당국에서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윤서리는 그 싱크홀에서 가족을 잃었다는 과거가 초반에 드러났다. 그녀의 부모는 싱크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시신도 찾을 수 없었는데, 당시에 학생이던 윤서리는 착실하지 않았던 터라 학교에 가지 않아 목숨을 부지했다고 서형우에게 밝혔다.
그런데 싱크홀을 떠나온 윤서리가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가게 되면서 연쇄살인마라고 했던 정여준을 만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소설 초반에 보여줬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정여준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다른 이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제거한 한편, 윤서리는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켜 아지트로 데리고 왔다. 기절했다 깨어난 윤서리는 커다란 공동이라던 그곳에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심지어 그곳 사람들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도 밝혀져 놀라움을 줬다. 정지자, 복원자, 파쇄자라고 불리는 각기 다른 세 가지 능력을 그들 모두 가지고 있었다.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물체를 움직이거나 부수거나 원래대로 복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소설은 SF다운 면모를 보이며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그러다 산성 사람들 사이에 서형우가 심어놓은 스파이가 있다는 게 빠르게 밝혀지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11년 전 싱크홀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서 그곳을 올라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화가 드러났다. 가장 강력한 초능력을 가지게 된 최주상과 이경선이 왜 대립을 이루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비원과 산성으로 갈라졌다는 걸 빠르게 밝혀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비밀과 드러나지 않았던 능력을 보여주며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설 뒤편에 쓰인 것처럼 SF와 스릴러, 재난과 히어로물이 결합되었고, 여기에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사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장르까지 곁들여 푹 빠지게 했다. 온갖 장르를 조화롭게 연결 지어 흠뻑 빠져서 읽었다. 이들의 끝이 어떻게 될지, 삶과 죽음이라는 그 거대한 간극을 과연 뛰어넘을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궁금해서 빠르게 읽게 만들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아직까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 소설이었다. 재미있다는 말은 너무 뻔하고 흔한 표현이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진짜 너무 재미있어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을 정도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나를 탓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었고, 마지막 여운까지 짙은 소설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책을 또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드라마로도 만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제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넷플릭스 뭐 하냐!)
"그래, 우리 힘은 의지에 좌우되는 에너지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젠 정말 잘 알겠어. 이 능력은 의지를 가진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중략) 그럼 난 이제 죽음을 각오한 너와 싸워야 하는 걸까. 아무도 꼭두각시가 되지 않고, 네가 날 구하려 하지 않고, 나도 널 구하려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하지 않아도 네가 구해질 순 없을까…." - P352.353
"전 경선산성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서 싸우고 있어요. 저한테 잡혀 오기 전의 윤서리 씨 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제 목적인 거예요." - P175
이제 대체 누가 두 번째 나선계단을 만들 수 있을까. 누가 남은 사람들을 햇볕 드는 세상으로 등 떠밀 수 있을까. 난 그 희망이 한 사람에게서밖에 보이지 않아. 이번 싱크홀에서 우리를 구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정여준이야. - P264.265
by. 정여준 "자꾸 이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 왜 이렇게 당신이, 익숙하고 그리운 거죠?" - P338.339
by. 윤서리 "나도 그래. 나도 당신이 그리워. 당신이랑은 다른 의미로 더 많이, 더 오래 그리워했어. 내가 아직도 만나지 못한 미래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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