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2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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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열흘을 호된 감기를 앓았다.

환절기이기도 하고 평소 약한 체력이라 그저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통과의례거니 하고 지나치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신문, 방송 등 세상에서는 조류 독감이니 돼지 독감이니 하면서 신종 감기 때문에 한바탕 난리이다. 은근히 걱정될 수밖에.

그 몸살, 감기 기운과 치료를 위한 약물로 멍한 상태에서 [제중원]을 읽었다.

지은이의 방송 극작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조선인으로서 최초의 의사가 된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 하기에 책을 읽기 전부터 관심이 많이 갔었던 책이다 [제중원].

마침 심한 감기를 앓으면서 내심 그냥 감기 정도가 아니라 목숨도 위태롭다는 신종 질병이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가운데서 읽는 [제중원]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의학 드라마는 평상시에도 재미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그렇게 느끼는지 국내에서 의학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모두 성공(?)한 듯하다. 가깝게는 ‘하얀 거탑’이 그러하고 좀 시기가 지난 것으로는 ‘장금이’가 그러하다.

 

[제중원]은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쓴 소설답게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를 확실하게 준다. 글로 써진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를 본듯 한 장면 한 장면이 선명하게 뇌리에 찍힌다면 다소 과장일까.

사람과 짐승 사이의 어중간한 대접을 받던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넘어 조선 최초의 의사가 된 주인공 황정. 그리고 그에 대립되는 악역의 백도양. 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석란.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제중원]을 읽으면서는 황정뿐만 아니라 구한말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세도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뜻을 거르고 천하다 느끼는 의사의 길을 택한 백도양을 주인공의 위치에 두고 그 내면의 갈등과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을 묘사한 소설이라면 어떠할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제중원]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에필로그에 간략하게 밝힌 주인공 황정의 만주 생활 이야기여도 좋고 아니면 백도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여도 좋으니 속편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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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 권지예 소설
권지예 지음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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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산문집은 빼고 읽었다고는 해도 내가 권지예 작가의 전작읽기를 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장편소설 [붉은 비단보]가 빠졌다. 아니 정확하게 2005년도까지는 분명 전작읽기를 하고 권지예 작가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렸다.

그리고 만나게 된 소설집 [퍼즐]. 마치 오래전에 친하게 지내다가 서서히 잊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와락 반가웠다고나 할까.

그런 친구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변화 속에서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변화는 없다.

하지만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기도 어렵다.

옳다, 그르다. 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힘‘이란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대하는 권지예 작가의 소설은 그 시간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면, 그것은 나의 착각일까?

혹, 책을 읽는 나의 심리가 4~5년 전의 그 때에서 한발작도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가 싶다.

 

예전에는 스며드는 물처럼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면 [퍼즐]에서는 불륜이라는 소재가 모두 겉으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중 [베드]와 [바람의 말]은 연작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 여기에 [딥 블루 블랙][네비야, 청산 가자]까지.

세상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로 짐작되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해결되지 못한 욕망과 새로운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한 생을 살아도 서로는커녕 자기 자신도 잘 모를 거야. 그냥 어느 날 삶이 어두운 밤바다처럼 막막할 때가 있었어.] (246쪽)

 

내 삶이 저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때, 바로 그러한 때 나는 권지예 작가의 소설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녀의 소설이 내게는 완벽하게 뚜껑이 닫혀진 우물 안처럼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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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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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명해서 앞에 다른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책도 책이지만 영화로 만들어져서도 크게 성공해 대강의 줄거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언젠간 꼭 봐야지 벼르고 있으면서 아쉽게도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서 좀비가 등장한다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라는 책을 접했을 때 제인 오스틴에게 열광하는 독자라면 유혹을 쉽게 떨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은이도 제인 오스틴 원작.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냥 오만과 편견을 패러디한 소설이라면 굳이 책의 표지에 제인 오스틴 원작이라고 표기할 필요가 있을까? 살짝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읽기 전 제인 오스틴의 원작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작가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읽으니 왜 굳이 앞표지에 제인 오스틴 원작이라고 표기해야만 했는지 확연하게 이해가 된다.

내용의 전체 흐름과 대부분의 장면들은 원작의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져 있다. 다만 소설 속 인물들의 이중성과 풍자적인 면을 좀 더 극대화 시켰다고나 할까?

패러디보다는 캐리커처적인 면이 강하게 돋보인다.

아들이 한창 사춘기일 때 그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으로 판타지를 선택했었다.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기분으로 아이가 읽는 판타지 소설을 따라 읽던 기억.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그 때 읽었던 판타지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청소년들. 그 중에서도 고전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를 두었다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권한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고전과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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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미인
후지모토 히토미 지음, 권남희 옮김 / 텐에이엠(10AM)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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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흔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제대로 균형 잡힌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사별로 인한 편부, 편모 가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결코 곱지 않은데 이혼으로 인한 가정을 바라보는 시각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은 아직도 멀었지만 이제는 여자들도 충분히 교육받고 경제적인 자립의 길이 어느 정도는 열려있는 시대이다.

여자들이 외부의 눈이 무서워 무조건 참고 살거나, 남자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이혼당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이혼을 선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후지모토 히토미 작가의 [이혼미인]은 요즈음 일본에서 유행이라는 ‘중년 이혼’을 다룬 작품으로 여 주인공 미오가 자발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남편을 설득해 이혼을 강행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작가인 후지모토 히토미.

하지만 일본에서는 ‘후지모토 히토미 중독’, ‘후지모토 히토미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작가라고 한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이혼을 바탕으로 [이혼까지] [좋은 여자] [이혼미인]등 이혼을 다룬 세편의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고 하는데 어서 우리나라에도 나머지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바란다.

 

처음 [이혼미인]이란 단어를 대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혼미인이라니. 정말 생소하면서도 기발한 단어라는 생각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혼미인을 향해 나가야겠지만 ‘이혼’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막막함, 두려운 이웃들의 시선, 결핍, 더 나아가서 생의 실패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도무지 미인이라는 산뜻한 단어와의 결합은 어색하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 먼저 책의 뒤표지에 실려 있는 본문 인용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이혼하고 나서 미인이 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야. 그때까지 힘들고 괴로웠던 일상에서 해방됐으니 시원하지, 동시에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더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이혼이라는 핸디캡을 짊어지고 적극적으로 인생에 임하는 자세가 인간을 아름답게 하거든. 그래서 이혼미인이 되는 거야.]

 

[이혼미인]의 처음 삼분의 일 정도를 읽으면서는 끓어오르는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소설 속의 설정된 인물이라지만 미오의 남편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말밖에는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인물이다. 그의 행태를 여기에 적기에도 짜증나는 인물.

도대체 왜 주인공 미오는 그 남자와 중년이 되기까지 참고 받아주기만 하고 살았는지. 좀 더 일찍 과감한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를 얻게 되지요. 요컨대 인생은 덧셈입니다 불행한 체험, 불리한 사건도 상처 입는 걸로만 끝나면 시시합니다. 거기에서도 뭔가를 배우고 익히면, 아픈 기억들도 인생에 플러스가 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149쪽)

 

더 이상 무엇 때문에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경제적 여유 때문에 등등) 라는 변명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진정한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자기기만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의 현명한 선택임을 인정하고, 공평하고 균형 잡힌 견해와 생각을 기르도록 힘써야겠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굳은 사고는 이제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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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100년을 읽는다
마치엔 외 지음, 최옥영.한지영 옮김, 송수권 감수 / 지상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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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사의 [노벨문학상 100년을 읽는다]를 손에 드는 순간, ‘헉’, 하고 숨이 막힘을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700쪽에 달하는 묵직한 무게도 무게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와 수상 작품 목록을 보니 거의 모르는 작품이었다. 목록을 훑어가다 보면 가물에 콩 나듯 하나씩 아는 작품들이 보이니(단순히 제목과 작가를 알고 있다는 거다. 읽은 작품은 더더욱 적다.) 평소 항상 손에 책을 들고 다닌다는 사람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심히 자책하게 된다.

정말 한참을 내려가야 겨우 하나씩 보이는 읽은 작품들, 그것도 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으니 얼마나 까마득한지. 읽었다 한들 제대로 이해나 했을지도 지금에 와서는 의심스럽다.

 

노벨문학상은 다이너마이트 발명자로서 이것으로 거부가 된 노벨이 유언에 ‘인류복지에 공헌이 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기부한 유산으로 재단을 설립하여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로 매년 수여하고 있다. 최초의 5개 항목 (물리학, 화학, 생리 의학, 문학, 평화) 외에 1969년 경제학상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노벨기금과는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알프레드 베르나르도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거부가 되었지만 이것이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인류 살상 무기가 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유산을 기부하였다 하는데 최초의 목록에 과학과 인류평화 부분이 아닌 문학 부분이 설립되었다니 과연 문학은 인류역사를 오랫동안 지배(?)해왔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여기서 굳이 상위개념, 하위개념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말이다.

 

[노벨문학상 100년을 읽는다]는 제목에 걸맞게 1901년부터 2001년까지 수상자와 수상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부터 모든 작품들이 작가소개, 작품내용, 작품 감상, 감상 안내, 선정 이유, 그리고 수상소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간혹 작가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수상식에 불참하여 수상소감이 없는 경우도 있다.

책의 첫머리에 나와 있듯이 [노벨 문학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대상](5쪽)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 또한 사람들 사이의 일이라 선정과정에서 다소 잡음도 있을 듯하다.

 

고등학교 시절 열광하여 읽었던 ‘헤르만 헤세’.

그는 나를 고전의 세계로 처음 인도한 작가이고 전작읽기를 시도하게 한 작가였다.

세월이 흘러 잊어버리고 살았던 첫사랑을 다시 그려보듯 [노벨문학상 100년을 읽는다]를 들고 제일 처음 찾아본 작가도 헤세의 장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황야의 늑대]로 1946년 수상을 하였는데 사실은 1931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그 당시 스웨덴 한림원의 상임이사가 헤세의 작품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최종 후보에서 탈락하곤 했다고 한다.

그도 역시 수상 소감을 남기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100년을 읽는다]를 처음 펼친 순간처럼, 책을 덮은 뒤에도 의욕보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1901년부터 지금가지의 수상 작품 중 우선은 시와 극작을 제외한 소설을 찾아 차근차근 읽어보려 한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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