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코끼리

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2월

가끔씩 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아들이랑 야식을 먹기 위한 밤 외출을 한다. 뜻하지 않게 맛있는 집을 발견하면 우리는 곧잘 의기투합하여 매일 밤 1센티미터씩 뱃살을 늘려나가는데 몰입하기도 한다. 어느 날 서로의 배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밤 외출을 삼가자고 다짐도 해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늦은 밤 맛있는 음식을 실컷 탐하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이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본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무 부족하고 미숙한 엄마라서 미안해”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부모 될 자격에 좀 엄격했으면 싶다. 좁고 가파른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자식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무책임한 어른 땜에 상처받고 슬픔과 혼란에 휩싸이는 어린 아이들이 없을 테니까.

아빠가 다른 여자와의 관계 때문에 가출하고 혼자서 남매를 키우는 엄마.

주인공 나의 눈에 엄마는 매사에 어설프고 덜렁대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동생 나나가 아기였을 때 유모차도 제대로 밀지 못해 도랑에 빠뜨린 적도 있는 엄마. 그런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하자 초등학교 5학년인 나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면허를 따기도 전에 노란 소형차부터 덜컥 구입해 놓은 상태.

이혼한 엄마가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려면 기동성이 있어야 하니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아직은 위태롭고 여리기만 한 이 가족을 태우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할 자동차는 튼튼하고 큼지막한 차가 아니라 작고 약한 소형차이다.

[노란 코끼리]는 바로 이 차의 이름이다. 험난한 세상에 바람막이가 되어 주기에는 조금 부실하고 약한 노란 코끼리. 이 코끼리를 타고 세 가족은 상처 받기도 하고 고장 나서 멈춰서기도 하면서 조금씩 고단한 세상에 적응해간다. 그리하여 노란 코끼리를 폐차하게 될 때쯤에는 굳건하고 씩씩하게 세상에 맞설 수 있는 강한 가족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함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잘 하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놀란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야. 엄마는 이제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갈 거야] (251쪽)

광기의 해석

광기의 해석 -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2월

한 때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그를 깊게 연구하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저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나름 그 매력에 흠뻑 취해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 행동, 모두를 프로이트의 이론에 갖다 붙여서 혼자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를 썼었다.

그리고 내 무의식에는 그 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낀다.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 슬픔, 상처를 나름 이해하려 애쓰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습관은 아마도 그 때 생긴 듯하다.

[광기의 해석]이라는 제목보다는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이라는 제목이 훨씬 책 내용에 근접한 것 같다. 처음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아돌프 히틀러>의 이야기를 액자 형식으로 구성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야기의 초점은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동안의 전기에 맞춰져 있다.

[1부 빈]에서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시작된 해인 1938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당시 81세의 고령으로 이미 15년 전부터 턱에서 시작된 암으로 시달리고 있던 프로이트는 몇 번의 재수술을 받으면서 빈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자살의 근본 원인으로 정신의 내적 부조화를 주장했다. 자아가 약해지고 고갈될수록 상위자아는 더욱더 강해진다. 권위를 이루는 내적 동인은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자아를 꾸짖는다. 그러나 자아가 약해져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것은 상위자아에게 항복하고 사라져버린다.

만약 프로이트가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다면, 혹은 빈에 머무르면서 나치가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103쪽)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장악했을 때 유태인이었던 프로이트는 자살까지도 고려했었으나 자신에게는 아직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탈출을 결심한다.

[군중은 대부분 지도자의 최면에 걸렸다. 지도자는 상위자아의 자리를 차지했고, 여러 이유로 그곳에 머물렀다. 그가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은 새로운 심리 처방이다. 개인의 초자아가 모순되고 때때로 가까이 하기 힘든 까닭은 그것이 무의식적, 집단적 초자아이기 때문인데 지도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분명하고 절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19쪽)

[2부 런던]에서는 영국으로 탈출한 프로이트가 최후의 문제작 [모세와 일신교]를 쓰고 출판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프로이트는 환영받고 존경받는 인물로서 여러 유명 인사들의 방문이 러시를 이루었다. 여기에는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 살바도르 달리등도 포함되어 있다.

[최상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묘사와 관련해 프로이트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는 성적으로 실패했거나 실패로 향하고 있는 사랑, 질투 혹은 자신을 파괴하려는 미묘한 역동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169쪽)

[모세와 일신교]를 출판함으로서 프로이트가 예상했던바 영국에서 받던 존경과 사랑은 사라진다.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비난과 경고에 맞서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쓰고 출판하는 프로이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사실 과학적인 사람이 아니다. 관찰자도 아니고, 실험자도 아니고, 사색가도 아니다. 나는 단지 기질적으로 모험가일 뿐이다.] (36쪽)

첫사랑, 마지막 의식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고정관념이라는 말이 있다. 잘 변하지 아니하는,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이라고 사전에는 풀이되어 있다.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들.

이언 매큐언의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지 않고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처음으로 접한다면 분명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에 대해 확고 불변한 고정관념이 생길 것이다.

먼저 읽은 [암스테르담]이나 원작을 읽기 전에 영화로 접한 [어톤먼트]등으로 그리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으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펼쳤던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나의 그러한 기대가 또 다른 고정관념이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지금도 작가 자신이 추천하는 그의 대표적 단편집이라고 한다. 그 중 여러 편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표제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서머싯 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니 대중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모두 성공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너무도 강렬해서 엽기적으로만 느껴지는 줄거리 때문에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인간 내면이 가지는 원초적인 외로움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느낌이다.

[여름의 마지막 날] [첫사랑, 마지막 의식]과 같은 아름다운 글들과 [가정처방] [나비]같은 잔혹한 글들을 작가는 같은 방식으로, 작가의 감정이입이나 사적인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게 서술한다. 소름끼치도록 글을 잘 쓰는 작가. 이언 매큐언.

특히 [나비]와 [가장 무도회]에서는 뛰어난 심리 묘사를 보여준다.

섬세한 심리 묘사부분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속으로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는 여자일 것이라고 상상 했었다. 이것도 내가 넘어서야할 고정 관념이다.

그는 [학교 선생처럼 생긴 사람이 글은 악마처럼 쓰는](208쪽) 남성 작가이다.

[이 때 처음으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난 모른다. 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는다. 공연한 일로 웃는 듯 짧고 불안한, 소녀의,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강가에서 불어오는 미풍과 등 뒤에서 타오르는 늦은 오후의 뜨거운 태양, 그리고 찌르는 듯한 그 웃음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하나인 것처럼, 마치 하나의 맛인 것처럼 느껴진다.](62쪽)

소설은 역시 영상으로 보다는 글로 읽어야 한다. 저 표현을 어떻게 영상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읽을거리에 항상 목말라하던 어린 시절,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 들어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곤 했었다. 아직 도서관을 이용해 보기 전이라 상상속의 그 방은 잘 꾸며진 서양식 도서관의 모습은 갖추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책장이 사방으로 놓여 있고 천정까지 책이 가득 쌓여있는 온돌방의 모습이었다. 어떠한 치장이나 형식을 갖추지 않은 그냥 책이 많은 곳. 그 곳에서 다리를 쭉 펴고 앉거나 혹은 누워 자유롭게 책을 보는 상상만으로 어린 시절 한 때는 행복하기도 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 모으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책꽂이의 서너 칸이 아직 안 읽은 책들로 채워져 있고 그 목록은 계속 늘어갈 추세이다. 이것은 그 시절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일까 고개를 갸웃해 본다.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귀한 고서적이나 절판된 책들이 가득하고 종류별로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 차 있는 곳,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체계적인 독서를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곳이라니. 어렸을 적 내가 꿈꾸던 바로 그곳이 아닐까? 그런 곳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먼 이국에는 존재했었다니. 아릿한 향수와 흥분으로 책읽기를 시작한다.

[그 서점에 도착한 것은 잿빛 겨울의 어느 일요일이었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책은 회고담 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소설을 보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낡은 책들과 그 책의 작가와 수집가들에 대한 지루한 이야기의 열거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한방에 날려 버릴 정도로 초반 도입부는 재미있다.

작가는 캐나다 중소 도시의 신문사에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회부 기자였다. 그러나 당시 그가 집필했던 범죄 서적에 관련된 사건으로 범인으로부터 목숨을 위협하는 협박을 받게 된다. 그 결과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일푼으로 파리로 도망치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파리에서 당장의 숙식도 해결하기 곤란한 암담한 상황이었던 그는 산책하던 중 우연히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고서점을 발견한고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고서점의 주인 [조지]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을 읽을 줄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는 생각을 기초로 [서점] 이라기보다는 [도서관]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운영한다. 평소 공유재산과 공동체 생활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바로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노숙자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숙소로 제공하기도 한다. 누구나 필요한 사람에게는 열려 있는 곳이긴 하지만, [조지]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을 고르는 기준은 아마도 [작가 지망생]인 듯하다. 잠시 갈 곳이 없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은 그곳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나는 늘 윌트 휘트먼의 말에 동감해. 누구에게나 천재다운 면이 있으며, 누구나 특별할 수 있다는 말. 그 여자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어. 우리가 도울 수 있네.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해] (254쪽)

[둘러보게. 이 지구가 얼마나 부유한지. 그러나 유럽과 북미, 일본의 몇몇 사람들만 그 혜택을 즐기고 있고 나머지는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살고 있네. 하물며 깨끗한 물조차도 구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잖은가. 맞는 말이지? 사람들 대부분은 의문을 제기하려 들지도 않아. 그러나 최소한 나는 더 공평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네] (269쪽)

[있잖은가, 작가가 되려면 삶을 사랑해야 하네. 그리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보다 삶을 사랑하기에 좋은 곳도 없지. 여기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어. 책도 읽을 수 있고 아름다운 여자들도 만날 수 있지. 이런 장소를 충분히 즐기게. 세상에 이런 곳은 흔치 않으니까] (280쪽)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조지와 함께한 시간은 나를 바꿔놓았다. 내가 떠난 삶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제 나는 앉아서 타자를 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인생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318쪽)

렘브란트 반 라인

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들은 항상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떤 것은 친밀감으로 또 어떤 것들은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분명 한 때 존재했었으나 그 흔적도 없는 무수한 것들 사이에서 몇백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온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

오늘 그러한 화가가 나에게로 왔다. [렘브란트 반 라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법이며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되 어둠은 결코 빛을 제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4쪽

렘브란트 본인의 젊은 날의 자화상을 표지로 사용한 이 소설은 요즘 보기 드물게 550쪽이 넘는 두께로 주로 뒹굴거리면서 누워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진 나에게는 손목보호가 필요하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묵직한 두께에 역시 묵직한 인물을 다루고 있는 소설. [렘브란트 반 라인]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렘브란트 본인의 일기가 한 축이고 작가 지망생인 피터르 블라외의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이다.

렘브란트의 일기에는 그림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나 열정,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연스레 묘사되는 스케치 기법 등이 설명되어 있다. 특히 연극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인물에 몰입하여 스케치하는 과정의 묘사는 이래서 거장이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그는 모든 사물엔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믿고, 하나하나에 완벽을 기하는 사람이야. 터번 하나를 그릴 때도 마음에 들 때까지 이틀을 소비하고, 지붕에 떨어지는 빛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두 달도 기다리지! 이런 그를 비난할 수야 없지...........] 173쪽

[인간은 뭔가를 옳게 인식했다고 생각하면 동시에 그게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감각만으로 인식된 것들에서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175쪽

액자틀에 해당하는 피터르 블라외의 서술로 이루어지는 다른 한 축에서는 피터르 블라외의 눈으로 바라본 렘브란트의 사생활이 그려진다. 지나간 혹은 진행중인 렘브란트 연인들과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다. 그리고 실존했던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실명을 사용해 가끔은 소설이 아닌 자서전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지는 재미도 독자에게 선사한다.

[수치는 우리의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게 되는 슬픔입니다. 후회는 과거의 어떤 일이 우리가 바랐던 것보다 더 나쁘게 드러나는 슬픔입니다. 그러나 결핍에서 더 큰 완벽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은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448쪽

[내가 만약 남은 인생을 어떤 비범한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런데 그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지방에서 서성거리던 상자 속의 그 남자처럼, 그 일을 끝까지 철저하게 따라갈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