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들은 항상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어떤 것은 친밀감으로 또 어떤 것들은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분명 한 때 존재했었으나 그 흔적도 없는 무수한 것들 사이에서 몇백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온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

오늘 그러한 화가가 나에게로 왔다. [렘브란트 반 라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법이며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나되 어둠은 결코 빛을 제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4쪽




렘브란트 본인의 젊은 날의 자화상을 표지로 사용한 이 소설은 요즘 보기 드물게 550쪽이 넘는 두께로 주로 뒹굴거리면서 누워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진 나에게는 손목보호가 필요하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묵직한 두께에 역시 묵직한 인물을 다루고 있는 소설. [렘브란트 반 라인]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렘브란트 본인의 일기가 한 축이고 작가 지망생인 피터르 블라외의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이다.

렘브란트의 일기에는 그림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나 열정,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연스레 묘사되는 스케치 기법 등이 설명되어 있다. 특히 연극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인물에 몰입하여 스케치하는 과정의 묘사는 이래서 거장이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그는 모든 사물엔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믿고, 하나하나에 완벽을 기하는 사람이야. 터번 하나를 그릴 때도 마음에 들 때까지 이틀을 소비하고, 지붕에 떨어지는 빛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두 달도 기다리지! 이런 그를 비난할 수야 없지...........] 173쪽




[인간은 뭔가를 옳게 인식했다고 생각하면 동시에 그게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감각만으로 인식된 것들에서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175쪽




액자틀에 해당하는 피터르 블라외의 서술로 이루어지는 다른 한 축에서는 피터르 블라외의 눈으로 바라본 렘브란트의 사생활이 그려진다. 지나간 혹은 진행중인 렘브란트 연인들과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의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다. 그리고 실존했던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실명을 사용해 가끔은 소설이 아닌 자서전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지는 재미도 독자에게 선사한다.




[수치는 우리의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게 되는 슬픔입니다. 후회는 과거의 어떤 일이 우리가 바랐던 것보다 더 나쁘게 드러나는 슬픔입니다. 그러나 결핍에서 더 큰 완벽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인간은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448쪽




[내가 만약 남은 인생을 어떤 비범한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런데 그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지방에서 서성거리던 상자 속의 그 남자처럼, 그 일을 끝까지 철저하게 따라갈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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