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시사회
강이헌 지음 / 호킹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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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흔하게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아무 느낌이 없던 말.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억들은 다 잊어버리고 시시콜콜 쓸데없는 에피소드들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봄’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봄에는 특히 우울증이 심해지는가 싶기도 하다.

막상 밖에 나가면 매섭기만 한 꽃샘바람도 이렇게 창 안에서 바라보면 그저 포근하게만 보인다.

풋풋한 20세 초반의 어느 봄날, 아직은 철 이른 빨간 딸기를 사서 씻지도 않고 서로 경쟁하듯 먹으며 내려오던 하교 길. 그 친구들.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었을까. 배를 잡고 까르르거리던 추억.

최승환 작가의 [사십구재 시사회]는 나에게 잊고 있던 20대 초반의 봄날을 기억하게 한다.

모든 것이 시작이고 희망이던 그 시절.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준비하던 그 때. 미완이어서 더욱 빛나고 자신만만했던 내 인생의 지나가 버린 봄날.

다은과 서준의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 같은 느낌이다.

무작정 마음이 쓸쓸해지는 햇빛 환한 봄날, 아무도 없는 조조상영의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마음껏 울고 나온 느낌. 그리고도 제어되지 않는 슬픈 마음 때문에 영화관 밖으로 선듯 나서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하는 막막함이 느껴진다. [사십구재 시사회]는.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찌르는 듯한 환한 햇빛과 노란 꽃잎의 영상을 의식해야 했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내 눈을 괴롭히던 밝은 햇빛. 그 때문이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슬픈 내용임에도 끊임없이 봄날을 연상해야 했던 것은.

[사십구재 시사회]를 다 읽고 잠을 청했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망막을 괴롭히는 햇빛의 환영 사이로 슬그머니 정호승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그렇다. 다은과 서준은 스스로가 사랑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한없이 걸어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들여다본다. 이제 걷기를 멈춘 듯한 나를.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다만 사랑은 단지 환상이었다고 도리질만 하고 있는 나를. [사십구재 시사회]의 다은과 서준에게서 위로 받고 다시 일어서 한 발짝 떼려 하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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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 파트너
한정희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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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마이티’라는 게임에 중독이 되어 지낸 적이 있다.

잠을 자면서도 카드가 날아다닌다는 무아지경에 빠져 말 그대로 자나 깨나 마이티 생각뿐이었다. 초보 시절엔 게임에 실수를 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이를 갈며 게임을 연구하기도 했다.

많이 알려진 게임이 아니고 소수의 마니아층만이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많게는 열 몇 시간씩을 함께 보내게 되곤 한다. 마이티에 중독되어 있던 몇 년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구들은 마이티 동료들이었다. 자연스레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져 실마를 하기도 한다.

초보 시절 눈물까지 흘려가며 이를 갈고 연구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새로운 게임을 배우고 싶어져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져보니 ‘브리지’라는 게임이 있었다.

게임방식을 보니 ‘마이티’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 게임을 배우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4명이 모여야 게임이 이루어지는데 도무지 네 사람이 모여지지가 않아 게임을 시작할 수가 없었고 가까스로 게임을 시작하면 일명 나의 ‘닭질 플레이’에 사람들이 말없이 나가버리는 것이다. 왜 그런식으로 플레이를 하느냐는 질책도 없다. 지금은 그 사이트마저도 없어졌다고 한다.

 

한정희 작가는 지금은 아주 옛날로 느껴지는 90년대 초반에 ‘불타는 폐선’이라는 작품집으로 만난 적이 있는 작가이다. '불타는 폐선‘은 지금도 나의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브리지 파트너]란 소설집으로 한정희 작가를 다시 만나니 마치 여고 시절 그리 친하지 않아 기억이 흐릿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의 사슬만으로도 충분히 반갑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옛 친구의 모습처럼

그렇게 [브릿지 파트너]는 나에게 왔다.

표지 안쪽 작가의 사진은 그 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 더욱 그러한 느낌이 짙어지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

 

너무 뻔해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중년 여성들의 삶.

우리는 왜 그녀들의 삶을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불타는 폐선‘을 읽을 때 어떠한 느낌을 받았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지만 [브릿지 파트너]는 편하게 읽히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한다.

고단하고 힘든 일상의 와중에도 타인을 따뜻하게 보듬을 줄 아는 주인공들. 자신의 상처로 상대의 상처를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함.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찰나적인 슬픔을 조용히 포착해내는 예리함으로 한정희 작가는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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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1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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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사용해 해야 하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는 탓으로 (이것은 아마도 유전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하나뿐인 아들 역시 운동에는 영 젬병이니 말이다.) 우리 가족이 함께 즐기는 취미 생활은 가끔 하는 여행을 제외하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르므로) 영화감상이 유일하다 할 수 있겠다. 다행이 가족 모두가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주로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 주말을 보내곤 했다. 한 4~5년을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자니 자연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공상과학물이나 판타지 종류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봐도 좀처럼 친해지기 힘든 장르가 나에게는 공상과학 종류이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느낄 수 없는 그 무엇, 나와는 영 소통이 되지 않는듯 한 느낌.

제프 롱 작가의 [디센트]도 모처럼의 휴식기간이 끝나가는 아들과 공통의 책을 읽고 서로 대화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선택해 읽게 된 책이다. ‘나는 흥미가 없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디센트] 1. 2. 권을 모두 읽고 책을 덮은 지금은, SF 라든가 모험, 스릴러란 단어를 보고 느끼는 나의 감정 반응이 180도 달라져 있다. 결론은 그동안 나는 제대로 된 SF물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디센트]는 첫장부터 긴장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한 때 아들과 소통의 통로로 생각하고 억지로 읽었던 판타지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글의 한 줄 한 줄 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순수문학의 힘이 느껴진다. 쉽고 편한 마음으로 몇 장을 넘기던 나는 자세를 고치고 앉아 다시 처음부터 집중하며 다시 읽어야 했다.

초반의 잔잔함은 없다. 중요 인물들의 등장으로 각각의 장을 시작하는데 그중 ‘아이크’를 서두에 둔 것은 정말 탁월한 작가의 구성력이라 하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영어를 우리말로 해석했을 때 전달되는 뜻의 한계를 느껴본다. 소설 속에 동화되어 그토록 강하게 다가오던 [디센트]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강하, 하강, 전락 정도이다. 도무지 그 강렬한 느낌을 찾을 수가 없다.

주로 침대에서 자기 전에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분들은 조심하시기를. [디센트]를 읽는 동안은 숙면은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제프 롱 작가가 보여주는 존재하는 지옥을 생생하게 느낄 것이므로. 그리고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구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프 롱 작가가 보여 준 지옥들로 하여금 며칠 밤을 악몽에 시달린다면 당신은 그 악몽으로 하여 멋진 SF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당신은 드디어 제프 롱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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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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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험생이었던 아들이 목표하던 점수가 나오지 않아 결국은 재수라는 멀고 험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의 인생에서 크던 작던 수많은 실패와 위기가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테지만 재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열화 된 대학들. 그냥 확 떨어졌더라면 갈등이 덜했을 터인데...........

이 선택은 앞으로 남은 기간 내내 우리 가족을 괴롭힐 것이다. 아들 자신은 더욱 그러하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아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차라리 그 때 그냥 그 대학에 보낼 것을 하는 후회가 왜 없겠는가.

이제 스무 살의 문턱에 들어선 아들.

18~9년을 그 아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후 최대의 혹은 최초의 좌절감을 맛보게 된 사건이다. 그리고 가족, 혈연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온순하고 밝은 성격 덕분에 별 말썽 없이 지나가 준 아들의 사춘기에 감사한다하면서도 나름 그 온순한 성격을 핑계로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성숙하고 트인 엄마인척하면서 아들을 한쪽 방향으로만 몰아대지는 않았는가?

그러한 와중에 읽게 된 책이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 [가족 판타지]이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성격이 꼭 나와 닮아 있어(그것도 아주 못된 점만 말이다.) 더욱 나와 가족의 인연으로 묶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아이의 머리통을 갈기면서,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강박증 때문에 아이에게 혹독하게 굴면서,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엄습하는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가장 나쁜 육아법으로 손꼽히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서, 짐짓 관대하고 자유로운 듯하나 사실은 규범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아이를 몰아세우면서, 나는 내가 들고 있는 ‘무거운 가방’을 결코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229쪽)

 

[가족 판타지]를 읽다보면 전체적인 구성원으로서의 가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페미니즘적인 측면에서 가족 내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가족’이라는 단어가 붙은 제목만으로 상상하게 하는 가슴 절절한 사연이나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좀 더 전투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점이 무엇보다도 맘에 든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빠르게, 홀로 걸어간다.](267쪽)

 

수많은 가족들의 모습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가족이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가족은 존재하고 존재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족에게서 독립되어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 혹은 홀로 걸어야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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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추리 퍼즐 - IQ 148을 위한, 개정판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캐롤린 스키트, 데이브 채턴 지음, 멘사코리아 감수 / 보누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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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단어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나 괴도 뤼팡 시리즈가 그토록 오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랜 세월 홈즈는 추리의 또 다른 이름인 것처럼 우리의 머리에 각인되어 수많은 아류들을 탄생시키고 있지 않은가.

또한 ‘추리’ 라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매일 하는 행위이자, 필수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바둑을 둘 때, 일을 할 때, 공부를 할 때, 심지어 tv 광고를 볼 때까지도 책의 내용을, 상대방의 다음 수를, 그리고 숨은 뜻을 찾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추리하는 것이다. 그 ‘추리‘라는 단어의 매력에 빠져 [멘사 추리 퍼즐]을 선택하게 되었다.

[멘사 추리 퍼즐]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을 쓴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모든 추리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지만, 이러한 퀴즈 또는 퍼즐들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몹시 대단하게 느껴진다. 작가들이 직접 이러한 퍼즐들을 만든 것이라면 한번 만나서 어떠한 연상 작용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상상해내는지 그러한 센스를 배워보고 싶다. 읽고 문제를 푸는 것과는 많이 다른 창작의 영역. 그 기발함을 말이다.

 

머리를 사용하는 행위를 좋아하는 아들을 둔 까닭으로 우리 집에는 이러한 추리 책이 몇 권 있는데 대부분은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수학적인 것들은 수학적인 것들만, 넌센스는 넌센스만, 그리고 사건 관련 내용들은 사건 관련 내용들만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멘사 추리 퍼즐]은 이 모든 것들은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난이도 높은 문제도 있고, 조금은 황당하다 싶은 문제들도 있었는데 읽으면 나름 재미가 있다. 잠깐 잠깐 짧은 시간을 활용해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무엇보다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만약 지하철 같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읽는다면 기발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답을 보고 크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리거나, 문제 풀기에 흠뻑 취해 내릴 역을 지나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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