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 파트너
한정희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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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마이티’라는 게임에 중독이 되어 지낸 적이 있다.

잠을 자면서도 카드가 날아다닌다는 무아지경에 빠져 말 그대로 자나 깨나 마이티 생각뿐이었다. 초보 시절엔 게임에 실수를 해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이를 갈며 게임을 연구하기도 했다.

많이 알려진 게임이 아니고 소수의 마니아층만이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많게는 열 몇 시간씩을 함께 보내게 되곤 한다. 마이티에 중독되어 있던 몇 년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구들은 마이티 동료들이었다. 자연스레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져 실마를 하기도 한다.

초보 시절 눈물까지 흘려가며 이를 갈고 연구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새로운 게임을 배우고 싶어져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져보니 ‘브리지’라는 게임이 있었다.

게임방식을 보니 ‘마이티’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 게임을 배우는 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4명이 모여야 게임이 이루어지는데 도무지 네 사람이 모여지지가 않아 게임을 시작할 수가 없었고 가까스로 게임을 시작하면 일명 나의 ‘닭질 플레이’에 사람들이 말없이 나가버리는 것이다. 왜 그런식으로 플레이를 하느냐는 질책도 없다. 지금은 그 사이트마저도 없어졌다고 한다.

 

한정희 작가는 지금은 아주 옛날로 느껴지는 90년대 초반에 ‘불타는 폐선’이라는 작품집으로 만난 적이 있는 작가이다. '불타는 폐선‘은 지금도 나의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브리지 파트너]란 소설집으로 한정희 작가를 다시 만나니 마치 여고 시절 그리 친하지 않아 기억이 흐릿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의 사슬만으로도 충분히 반갑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옛 친구의 모습처럼

그렇게 [브릿지 파트너]는 나에게 왔다.

표지 안쪽 작가의 사진은 그 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 더욱 그러한 느낌이 짙어지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

 

너무 뻔해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중년 여성들의 삶.

우리는 왜 그녀들의 삶을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불타는 폐선‘을 읽을 때 어떠한 느낌을 받았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지만 [브릿지 파트너]는 편하게 읽히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한다.

고단하고 힘든 일상의 와중에도 타인을 따뜻하게 보듬을 줄 아는 주인공들. 자신의 상처로 상대의 상처를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함.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찰나적인 슬픔을 조용히 포착해내는 예리함으로 한정희 작가는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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