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판타지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수험생이었던 아들이 목표하던 점수가 나오지 않아 결국은 재수라는 멀고 험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의 인생에서 크던 작던 수많은 실패와 위기가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테지만 재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열화 된 대학들. 그냥 확 떨어졌더라면 갈등이 덜했을 터인데...........

이 선택은 앞으로 남은 기간 내내 우리 가족을 괴롭힐 것이다. 아들 자신은 더욱 그러하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아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차라리 그 때 그냥 그 대학에 보낼 것을 하는 후회가 왜 없겠는가.

이제 스무 살의 문턱에 들어선 아들.

18~9년을 그 아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후 최대의 혹은 최초의 좌절감을 맛보게 된 사건이다. 그리고 가족, 혈연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온순하고 밝은 성격 덕분에 별 말썽 없이 지나가 준 아들의 사춘기에 감사한다하면서도 나름 그 온순한 성격을 핑계로 내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성숙하고 트인 엄마인척하면서 아들을 한쪽 방향으로만 몰아대지는 않았는가?

그러한 와중에 읽게 된 책이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 [가족 판타지]이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성격이 꼭 나와 닮아 있어(그것도 아주 못된 점만 말이다.) 더욱 나와 가족의 인연으로 묶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아이의 머리통을 갈기면서,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강박증 때문에 아이에게 혹독하게 굴면서,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엄습하는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가장 나쁜 육아법으로 손꼽히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서, 짐짓 관대하고 자유로운 듯하나 사실은 규범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아이를 몰아세우면서, 나는 내가 들고 있는 ‘무거운 가방’을 결코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229쪽)

 

[가족 판타지]를 읽다보면 전체적인 구성원으로서의 가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페미니즘적인 측면에서 가족 내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가족’이라는 단어가 붙은 제목만으로 상상하게 하는 가슴 절절한 사연이나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좀 더 전투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점이 무엇보다도 맘에 든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빠르게, 홀로 걸어간다.](267쪽)

 

수많은 가족들의 모습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가족이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가족은 존재하고 존재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족에게서 독립되어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 혹은 홀로 걸어야 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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