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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 내면 심리에 관한 글에 흥미를 느낀다. 무의식 저 안쪽에 갇혀 있다가 불숙 튀어나와 우리를 조종하는 불가사의한 어떤 힘. 정상의 정신상태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뜻의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작가의 장편소설 [광기]는 표지부터 매혹적이다. 감은 눈에서 표현되는 인상 또한 보는 나의 심리상태에 따라 때론 평화롭게 때론 극도로 불안하게 극과 극을 오가는 느낌이랄까.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5쪽)
소설 [광기]는 아길라르, 아구스티나, 미다스, 블랑카등 네명의 등장인물이 각각을 장을 교대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총 6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야기의 순서가 규칙적이지는 않다. 각각의 화자가 서술하는 방식 또한 일인칭과 삼인칭을 수시로 바꿔가며 사용해 처음 몇 쪽을 읽을 때는 혼란이 오기도 했다.
개인의 광기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적인 광기 모두를 다루고 있는 소설 [광기].
아구스티나는 개인의 광기를 극명하게 설명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가족과 사회의 광기에 의한 가련한 희생물이라 하겠다.
아길라르는 아구스티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착하고 충실한 남편이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일 수밖에 없음을 아길라르를 보면서 실감한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어쩜 저리 한 점의 실망이나 후회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놀랍고도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전처 엘레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자식뻘 되는 젊은 여자에게 빠져 가정과 자식을 버린 무책임하고 나쁜 남자인 것이다.
미다스는 마약 거래, 돈세탁등 부정부패로 이루어진 사회적인 집단의 광기를 표현한다.
아구스티나의 외할머니 블랑카를 통해 할아버지 포르툴리누스의 생을 보여줌으로서 작은 집단의 광기 즉 가족력을 설명한다.
[삶이란 어차피 그 자체로도 위태롭거니와 반칙을 일삼기 때문이다] (45쪽)
아구스티나의 삶을 보면 5쪽에 나오는 글귀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로서 아버지의 부정은 그녀의 광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모두 정신을 놓는 것은 아니다. 잔인하게 들릴지라도 최종적인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닐까.
아구스티나 자신 또한 아길라르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고 그의 전처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 자신이 폭력,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폭력, 바로 그것이므로.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가했던 그 정신적인 폭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