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천줄읽기)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4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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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책은 읽으면서 나의 은밀한 약점을 건드려 불편해지기도하고, 어떤 책은 읽다보면 지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책은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아가 행복해짐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나에게는 제인 오스틴의 책이 후자에 속한다. 시대도 많이 다르고 풍습마저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도 의아하다.

제인 오스틴이나 E. M. 포스터의 작품을 읽고 이리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나는 영국문학을, 그들의 조용한 수다를, 더 나아가서는 그 책들에 나타나 있는 그들의 도덕성을 좋아하는듯하다.



제인 오스틴의 전작읽기를 준비하면서 다른 책들은 완역본으로 준비했는데 [에마]는 지만지의 발췌본으로 선택했다. 주인공 에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원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라 하니 좀 많이 축소된 느낌이다. 청소년의 경우 발췌본을 먼저 읽고 완역본으로 넘어가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에마]는 결혼 적령기의 부유하면서도 신분이 높은 아가씨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에마는 계층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교양과 매너에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아가씨로서 본인은 별반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도 주위 사람의 결혼을 주선하는 것이 가장 큰 소일거리이다.

이런 전형적인 속물적 유형의 성격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그녀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라는 대작가가 가진 글의 힘이 아닌가 싶다.

자신보다 못한 신분의 사람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그녀는 열린 사고를 배우고 자신의 마음과도 정면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제 완역본을 만나 에마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만날 일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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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사는 곳 - 정인 소설집
정인 지음 / 문학수첩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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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이 참 공평치가 않다.

우리네 삶이 공평해야만 한다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정인 작가의 소설집 [그 여자가가 사는 곳]은 참 사람을 쓸쓸하게 만든다. 슬픈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 우리네 삶을 제대로 들여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허망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냥 저 혼자 내버려두어도 세상살이는 고단하고 외로운 일 일터인데 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에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 여자가 사는 곳]은 그 여자가 사는 곳, 도시의 밤, 타인과의 시간, 늪에서 졸다, 새벽이 올 때까지, 나의 아름다운 마차, 비수, 잔인한 골목, 너는 모른다, 블루하우스. 등 총 10편의 소설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표제작 <그 여자가 사는 곳>을 비롯해 10편의 소설 모두가 음지에 선 현대인의 비정한 삶을 다루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휘둘리는 인생들의 단면을 불편하게 보여준다.

그 중 <그 여자가 사는 곳>, <타인과의 시간>, <블루하우스>는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 그리고 중국 조선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중 화자를 그들로 설정함으로서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 사회의 폐쇄성, 잔인함과 더불어 천박하기까지 한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도시의 밤>, <새벽이 올 때까지>, <나의 아름다운 마차>, <비수>, <잔인한 골목>은 주류에 편승되지 못하고 낙오된 도시 하층민의 비루한 삶을 묘사하는데 작가는 끝까지 그들에게 한줌의 햇빛도 선사하지 않는다.

거짓된 위로, 거짓된 약속에 속지 말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야 한다는 것. 걷다보면 나를 잡는 것은 고지가 아니라 푹푹 발이 빠지는 함정뿐이라는 것, 그 잔인함의 반복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

 

[그 여자가 사는 곳]은 정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라 한다. 2003년에 발표했다는 첫 번째 소설집 [당신의 저녁]을 찾아 읽으려 한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정인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에서는 그래도 인생을 굽이굽이 돌다보면 따뜻한 햇살도 있음을,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는 관계만은 아닌, 가끔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관계도 있음을 들려주시길.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위로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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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캠핑 it's camping - 초보 캠퍼를 위한 캠핑 가이드&캠핑지 100선
성연재 외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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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 불편한 것을 기피하고 편안한 것, 안락한 것만을 쫓게 되었는지. 여행을 해도 집에서부터 승용차를 이용해 움직이고 잠자리도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콘도나 팬션 만을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여행의 묘미는 걸으면서 흘리는 땀, 눈앞을 스치는 풍경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끔은 꿈을 꾸기도 한다.

낡은 버스가 터덜터덜 움직이는 시골길. 하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지는 버스의 뒷모습.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낯선 기차역. 어깨에 멘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걷다가 흘리는 땀방울......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고.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로 떠나 등에 가득 짐을 지고 오르던 산길, 찌개 한 가지, 김치 하나만을 놓고도 정신없이 먹었던, 설익은 줄도 모르고 달게만 느껴지던 한 끼 식사.

지나가 버린 20대 초반의 추억이라서 더 그리운 것일까. 그 때 이후로는 여행다운 여행을 못해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 나름 여행을 좋아해 기회만 주워지면 짐을 꾸려 가족여행을 떠나긴 하는데 이 여행 역시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일상생활의 연장일 뿐이라는 것. 이러한 여행에만 길이 든 아들은 약간의 불편함이나 힘이 드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하고, 떠나고, 텐트 치면 끝! 콘크리트 숲에서 벗어나 자연에 취하는 캠핑의 모든 것’ 이라는 책 표지의 문구는 정말 매혹, 그 자체였다.

바로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책. [잇츠 캠핑].

책의 시작을 장식한 ‘도대체 캠핑은 왜 하는 거지?’란은 내가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자도 틀리지 않게 내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유명한 캠핑지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장비에서부터 유용한 사이트, 그리고 생생한 사진 찍기 등은 초보 캠퍼들에게 ‘너도 떠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파트 3에 나와 있는 캠핑요리 20가지는 캠핑의 즐거움을 완성시켜 준다고나 할까.

 

머릿속에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 떠나는 일만 남았다. 짐을 꾸리면서 배낭의 옆 주머니에는 잊지 않고 [잇츠 캠핑]을 넣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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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김영아 / 삼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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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을 옆에 두고 살지만 어느 책이나 술술 잘 읽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독 읽기가 힘이 들어 첫 몇 장만 반복해서 읽다가 잠시 항복하는 경우도 있고, 손에 잡자마자 빨려들듯 속도가 붙어 그 자리에서 한권을 뚝딱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다.

김경아 작가의 독서치유 에세이라는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그러한 현상들이 생기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독서습관이나 독서능력의 부족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재미가 있건 없건, 또는 술술 잘 읽어지든지 전혀 안 읽어지든지 간에 일단 손에 잡은 책은 끝까지 봐야 한다는 신념 아닌 신념으로 전혀 의미 없는 책읽기를 하던 버릇을 이제는 과감히 버릴 수 있게 되었다.

10년쯤 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면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동안 살았던 삶의 무게가 책읽기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정말 나와 인연이 있는 책이라면 지금은 안 읽어지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정확하게 정리가 된 생각은 아니지만 어떠한 책들은 읽으면서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는 그것이 독서의 즐거움중의 하나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를 읽고 보니 해결되지 못한 나의 억눌린 감정들과의 만남, 즉 책 속의 상황에 자신을 투시해서 치료로 이끌어가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 도대체 왜 이리 내 마음이 아프지...’하는 의아함.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 대목에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하는 당황스러움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상처의 객관화>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내 것처럼 느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상처가 아물어진다는 이론이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는 김경아 작가가 독서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의 사례들을 편안하게 조근조근 들려주는 에세이집이다. 총 15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 하나 하나가 숨은 사연을 담고 있어 읽는 사람에게도 아프게 다가오는데 독서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감춰졌던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생긴다.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의지 하나로만 넘어서는 게 치료가 아니다. 책이든, 강이든, 종교든, 사람에게는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그 길에 동행해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내가 아플 때 약을 사러 달려가주는 사람이 있으면, 약을 먹지 않아도 이미 상처는 낫기 시작한다.](87쪽)

 

책의 말미에 독서 치유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면서 내담자들과 함께 읽은 16권의 책 목록이 소개되어 있는데 의외로 내가 읽은 책의 권수가 적어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이제 무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차분한 마음으로 김경아 작가가 소개해준 16권을 한권, 한권 따라가 보려 한다. 그래서 미처 만나지 못한 내면의 상처받은 나와의 해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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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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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 날카로운 감각이 번득이는 소설 [타워].

누가 읽더라도 배명훈작가의 연작소설 [타워]는 우리 사회의 특수층을 겨냥한 소설이라는 것을 훤히 알아볼 것이다.

내가 연작소설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조세희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서였다. 당시 너무 어렸던 탓으로 최하층민의 처참한 생활모습이라던가 주거환경, 근로조건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책읽기를 하지는 못했었다. 그 뒤로 읽은 것은 배명훈작가가 이제 막 열 살이 되었을 무렵인 1988년도 양귀자 작가님의 작품인 [원미동 사람들]이다. 이제는 원로중의 원로가 되셨지만 양귀자 작가님도 [원미동 사람들]을 집필할 당시는 30대 초반이셨다.

[타워]와 [원미동 사람들]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공통점을 들자면 비교적 젊은 작가의 초기 창작집이라는 점,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세 편 모두 그 당시의 사회를 풍자하는 소설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당시 사회의 최하층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면 [원미동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소외된 서민들을 풍자하고 있다. 그에 반해 [타워]에는 대한민국의 1%만이 살고 있다는 초호화 부촌이 모습이 등장한다.

서로 역설적이고 반대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싶지만 나는 믿고 싶다. 세 작품 모두 우리에게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고.

 

[타워]는 <동원 박사 세 사람(개를 포함한 경우)>/ <자연예찬>/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광장의 아미타불>/ <샤리아에 부합하는> 등의 소제목을 가진 여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집이다.

풍자가 가장 통렬하기로는 <동원 박사와 세 사람 (개를 포함한 경우)>을 들 수 있겠다. 뇌물, 상납, 청탁, 촌지와는 다른 개념의 또 다른 화폐, ‘술’의 이동 경로를 통해 가상의 공간 빈스토크 내의 미세권력 분포를 연구하던 중 그 권력의 중심에 개가 등장한다. 별명이 아닌 실제 동물 ‘개’ 말이다. 여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동원 박사와 세 사람>이 통렬한 풍자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그래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희망을 얘기한다. 우리 사회도 한 때 떠들썩했던 ‘외주 용역업체’의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서로 얼굴도 모르는 수백만의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힘을 합쳐 사막에 버려진 개인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다.

 

날카로운 지혜가 번득이는 풍자소설을 읽고도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한 그 무엇이 앙금처럼 마음에 남는다. 우리사회가 나아지기는 아직도 멀고멀었다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처럼 똑똑하고 건강한 작가 덕분에 희망을 꿈꾼다. 상식이 허락되는 사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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