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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청포도 - 이육사 이야기 ㅣ 역사인물도서관 4
강영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저항시인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해에 대한제국의 운명은 (제 1차 한일 협약)일제의 내정 간섭 시작되었고 러시아 세력을 몰아낸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 연이어 을사조약으로 실질적 일본의 지배에 놓이게 된 슬픈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그는 안동 원촌에서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선진 학문을 배워 일본이 만세 운동 때 총칼로 군중을 학살했던 일본에 맞서기 위해 대구로 옮겨 19세가 될대까지 일본어, 물리와 화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일본을 거치지 않고 뒤쳐지지 않는 고급 지식을 익히기 위해 일본을 가야 일본을 넘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논어나 중용같은 유교가 신학문과 결합한다 해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는 쉽지 않고 시대가 바뀌었기에 더 큰 세상, 더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다음으로 나아가려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부모님의 걱정을 만류하고 나이 어린 아내에게도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지역학교를 세우시는 일을 하셨고, 원록에게 죽은 나무에도 정성을 다해 보살피면 언젠가 잎을 틔울거라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온 바다를 휘젓더라도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씨앗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은 부산항에서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향하는 갑판 위의 그의 심정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이육사가 일본 유학을 갔을 때 박열은 재판 중이었고, 아나키스트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김태엽의 증언이 있었지만 1923년 불령사, 1922년 흑우회 등의 단체의 등장인물들과의 만나는 일화 등은 강영준 작가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했다고 한다.
일본은 근대적인 법이 있었지만 천황은 법 위에 있었다. 천황이 일본이고 일본이 곧 천황인 살아있는 신을 섬기는 비합리적인 미신의 나라가 일본임을 깨닫기까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사무라이(군대)와 자본가들이 떠받치고 있는 천황은 일본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존재였기에, 민주주의가 꽃필수 없는 그렇다고 사회주의도 아닌 봉건 국가보다 더 봉건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같이한 아나키스트들. 박열이 대역죄로 사형을 구형받고 독립선언이나 만세를 불렀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조선인들에 비해, 같은 조선인을 멸시하고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친일 유학생들을 직접 겪게된 원록은 도쿄에서 처음으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박열>, <밀정> , <아나키스트> 등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그린 것들을 본 적이 있다면 좀더 상상하기 쉬웠을거라는 아쉬움이 들긴 했지만,최대한 상상하며 작가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갈 수 있었다.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
다 썩은 들보와 무너진 성채의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의 왕자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잣집 곳간으로 도망했고
대붕도 북해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의 상장이 갈가리 찢어질 기-ㄴ 동안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박지여! 고독한 유령이여!
-<편복> 중에서, 이육사.
작가의 짐작대로, 그의 몸이 약해졌을 때 이 시를 썼을까? 원록의 어머니, 허길 여사는 본인이 독립운동 의병장의 여식으로 차남인 원록 외에도 6형제를 모두 독립투사로 길러낸 강한 어머니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들 모두 우애있게 서로 의지하며 독립운동가의 길을 갔고,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께 사랑을 받으려 경쟁적으로 글을 지어 글솜씨가 뛰어나 시대의 문학평론가, 신문사 기자등 주요 문인들이기도 했다.
일본 유학에서 21세에 돌아온 그는 대구 조양회관에서 시민 혁명과 인민 주권, 아나키즘 등 근대정신사를 청년들에게 교육했고 원록의 운명은 중국으로 향한다.
이원록이란 이름 그리고 이활이란 필명을 썼던 그가 이육사로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해 나오는데 1927년 대구 조선은행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체포되어 들어간 감옥에서,이제 원록이라는 이름처럼 복록을 누릴 수 없으니 가슴속에 묻고 언젠가 싹이 트면 그때 이름을 되찾겠다고 하여 사용하게된 죄수 넘버 264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이다.
만주사변을 계기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가들이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난징에 세운 군사학교, 즉 조선 혁면 군사 정치 간부학교를 다니고 이듬해 졸업한다. 그곳에 남아 직접 독립전쟁을 하려고도 고민했을 그가 서울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글로써 노동자와 농민의 삶으로 들어가 의식을 개혁하고자 했던 루쉰의 글에도 영향을 받았고, 이후로 본격 시 창작활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37년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는 등 수많은 조선의 인력과 물자가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본격적으로 수탈당하던 와중에 1939년 이육사의< 청포도>가 발표된다.
1940년 <절정>,<광인의 태양> 등을 발표하고 39세 베이징에서 국내로 무기 반입 계획이 발각되어 베이징 주재 일본 경찰에 구금되어 이듬해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로 모진 고문받았으며 지하 감옥 안에서 폐결핵이 악화되어 40세 사망하게 된다. 육사와 일을 도모해 옥에 갇혔다 먼저 풀려난 이병희가 육사의 시신과 <꽃><광야> 를 동생들에게 전하였고, 사후 육사의 유서나 다름없는 이 시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1945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힘없이 스러져간 그의 생명은 저항 정신으로 살아 1946년 동생 원조의 손에 의해 육사 시집으로 묶여 출간되었으니, 그의 40평생은 일제 강점기의 시작과 끝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현해탄의 검은 바다와 같은 세계 정세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낳았다.
'검은 세기'에 광명을 잃은 동굴과 같은 곳에 숨어들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조선인들을 일깨운 그와 같은 문인들이 있었기에 '글도 잃지 않고' 우리가 한글로 책을 읽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말처럼 이육사 박물관이나 이전의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소설식으로 각색한 내용들이지만 읽는 내내 적재 적소에 애정어린 시와 이육사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이 리뷰는 북멘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