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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단편소설집은, 2003년에 발표되고 올해 재발간되었다고 하니 벌써 19년 전 작품인데, 생소할 정도로 오랜 기억인 20여년이 훌쩍 지난 내 여고생 시절 마음과 감성마저 재소환해야 했다.
교실이란 그런 곳이다, 학교는 세계의 요모조모를 전하는 지구촌 뉴스를 생산한다. 어떤 나라들의 전쟁 어떤 나라의 한파, 알몸에 가까운 모습에 구슬 장식을 한 사람들처럼... 기쿠코는 엄마와 살며 아빠를 종종 만나게 될 때,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어색함( 틈)을 느끼는 중이다.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아빠는 엄마를 울게 한 이유로 따로 살게 되었고 그런 아빠가 그녀 자신과는 가까웠던 기억, 놀랍도록 따뜻한 손길이었던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그런 기쿠코에게 전철에서 만난 치하루.혼란스러운 여고생 기쿠코의 호기심은 그녀를 같은 곳에서 마주치며 더해간다. 치하루와 대화하며 느낀건 그녀의 손가락이 정겨운 느낌, 엄마 손의 감촉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빠와 별거하듯이 치하루 씨는 남편과10년 전 별거하며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 남녀의 결혼과 부모와 함께 있을 때의 감정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없으며, 누구 한 명을 이해하기보다 그 속의 자신의 존재만이 남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치하루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신학기가 되자 자리바꿈이 있었고 기쿠코와 그녀의 친구들은 각자의 일상에 바쁘다.
3년 동안 같이 놀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는 12월 여고시절을 함께 즐기던 친구 에미는 둘도 없던 모에코를 멀리 하고 있었다. 에미는 이전의 살갑던 아이가 아니었고 외톨이가 되어 모두들 피했고 비정상으로 여겨졌다. 신학기가 되자 에미는 입원을 하고 휴학을 예고할 정도로 이상증세를 보였다. 모에코는 에미를 따돌리며 단독행동자,고타로라고 부르는 동급생들의 말을 신경쓰지 않았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여기는 다른 친구란 존재는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모에코의 엄마는 둘만 붙어다니지말고 모두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걱정을 하지만,
유치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대체 '모두'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두' 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따돌릴 때 외에는.'
동창생의 의미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학교 특히 교실에서 둘도 없이 가까워 매일 안보면 어떻게 될 것 같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멀어지고, 때로는 오해가 쌓이기도 해서...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혼란스러워하며 견디어 간다. 중학교란 공간이 계속될 것 같지만 고등학교라는 새 세상에서는 누구도 그 자리에 있지 않은거다. 기대했던 사이일 수록 그 관계는 어느덧 희미해져가는 일도 부지기수인거다.
신학기가 되기 전 어두운 풍경들, 관계들을 희석하는 일들이 동급생 친구들(마미코, 유즈, 다케이, 카나 등등)의 일상을 힘들게 한다. 그래도 새로운 인연들이 있고 항상 나쁜 일만은 아니며 관계를 정리하면 감정은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한다.
그녀들의 교실 안 새로 앉는 자리에서, 창밖이 보이거나 안보이거나, 혹은 길이나 사람들이 보이거나 하는데, 아마 각자의 시선을 바꾸게 할 작가의 의도였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지적해주었듯, 옮긴 김난주가 후기에서 사라질 감정들이지만 기억은 남듯이. 나도 예전의 딸이었던 시절에 매달렸던 힘겨운 일들이 엄마가 되어 이제는 희석되었으나 또다시 딸이 마주하게 될 순간들로. 나보다는 좀더 현명해지기를 바라게 되는 소설이었다.
이 리뷰는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