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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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호정

2부 자꾸만

3부 사랑

4부 침몰

5부 호수의 일

주인공 호정은 호수 같다. 기억을 감정을 호수속에 가두어 두고 모든 색을 집어삼킨 어둠처럼 호정은 어둠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물을 비워버린 호수가 더이상 호수가 아닌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 더이상 그녀 자신이 아닐 것이므로 그녀는 의사에게 다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여러 달이 지났지만 그녀의 기억속에 펄럭이는 은기. 어지럽고 잊고 싶었던 것들이 튀어나오듯, 수면에 떠오르는 그것들이 어지럽다.

키가 큰 전학생 강은기, 등하교에 자전거를 타는 그는 호정에게 길을 묻고...

아빠와 엄마는 호정이를 갖기 전에는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나란히 발탁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성했지만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호정일 갖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생명으로 젊은 부부는 갑자기 인생이 바뀌어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 어린 호정이는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와 고모와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친척집에서 자란 아이가 흔히 겪듯이 호정이는 친가식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할머니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신은 언제나 안쓰러운 더부살이 존재, 눈칫밥을 먹었다.

만두집을 운영하며 둘째 동생을 가질 즈음 엄마 아빠는중국에서 태권도가 잘 될거라는 믿음을 팔아 할머니의 한국에서의 재산까지 고모,삼촌의 미래까지 담보잡아 철저히 망하게 되고, 미운털 호정이는 그렇게 애증의 존재로, 엄마 아빠의 실패를 불러온 아이로까지 시선을 받으며 상처를 입는다.

그는 어딘가 달랐고 야자 시간에 책상앞에 앉았지만 그 자리에 붙잡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지도 않고, 뒤에서 바짝 쫓지도 않고, 발 구르기조차 하지 않는 아이.

아무래도 상관없을 만큼 그런 분위기에 호정은 자신의 느낌을 혼자서 간직하고. 은기도 그런 호정에게 관심을 보이며 살며시 다가온다.

청춘이란 첫사랑이란 무릇 그런게 아닐까? 시나브로 신경쓰이고 묻고 싶었으나 묻지 못하고, 호숫가에 앉는 것처럼 별거 아닌듯하지만 매우 섬세한, 힘껏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일...

호정은 친구들과의 우정을 시험하는 여러 일들을 겪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부모에게 까칠하게 하면서도 가족애를 되찾게 될 것인가?

첫사랑 그를, 그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 이후를 어떻게 기억할까? 한뼘 성장한 호정과 그녀의 친구들의 호수는 어떤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을지 들여다 보면서 그때의 마음들을 기억해준다면 독자로서 할 일은 다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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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22 세계대전망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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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코로나19가 출현하고 개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까지, 전세계가 팬데믹에 빠져 2022년 새해를 다소 우울하게 맞기까지의 변화의 양상을 매우 다각도로 거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2022 세계대전망(The Economist, The world head2022)>가 번역 출간되었다.

팬데믹 이전의 행동 방식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오늘의 우리는 시작하고, 불투명한 그 코로나19라는 놈의 꽁무니를 하루 뉴스와 안전알림 문자로 내내 쫓기만 하며 어떠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인가?

<이코노미스트>는 정상화 지수 즉 교통량(항공, 도로 및 대중교통)의 세가지 방식 그리고, 영화관람과 프로 스포츠 경기 참석, 집 밖에서 보낸 시간을 활용한 여가의 변화 마지막으로 상점과 사무실에 오간 인원으로 상업활동을 포착해 세계를 기준으로 각 나라의 가시적 그래프를 제시했다.

2020년 초 곤두박질 쳤던 글로벌 정상화 지수는 2021년 부터 상승하고 10월 중순까지 팬데믹 이전의 약 1/3수준을 회복했다고 한다. 백신 접종에 성공을 거두고 정부의 통제가 더 완화 되는 국가들은 대부분의 지수를 회복할 것이라 전망되지만, 이제 재택근무는 흔해지고 감염률이 감소해도 사무실 사용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며 영화관을 찾지 않는 변화 등은 유지될 것이라는 거다.

올해 주요 비즈니스 트렌드만 보아도 방대한 자료들을 일일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의 예측을 참고할 수 있다. 의료체계는 계속적으로 코로나 변이에 대비해야 하고 백신 생산량을 계속 늘릴 것, 온라인 소비 비중의 가파른 증가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제한이 풀리면 오프라인으로 이동, 관광업을 여전히 여행 금지 조치로 어려울 것이며 석유가의 인상과 6G 시범 운영, 조 바이든과 중국 시진핑의 인프라 관련한 막대한 지출이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방위 대결구도로 지출 또한 상응해 늘게 된다.

요즘 수소차 개발이니 뭐니 하는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의 수요와 공급으로 상승을 지속할 예정인데, 전기차 비율이 증가할 때 충전 시설과 배터리 원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는다면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특히 유럽 중국이 전기차 판매를 주도하고 있고 우리나라 도로에서 많이 보이는 차들은 완전 수소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들이 자율주행차 개발 출시를 자주 얘기하곤 하는데(만화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듯) 유럽연합은 자율주행 기계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로교통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예정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금융 분야에서는 '행복하지 않은 식사'식량문제의 사설이 인상깊었고, '암호화폐는 통화보다 많은 것이 있다'의 블록체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되어 흥미로웠다. 금융 분야와 마찬가지로 국제 분야에서도 어려운 부분은 기후변화가 화두이다. 2010년 글로벌 기후 협약의 실행은 요원하였고 2015년 피리 기후 협약의 목표(산업화 이전보다 1.5도 기온 상승을 막는)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행동을 시급하게 여겨야 한다. 앞으로 10년 치의 온실가스량에 대한 책임을 각 정부와 민간이 직면한 과제로 놓여있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넷제로(탄소배출0) 를 약속하지만 진짜 데이터를 확인할 수가 없기에 전방위 압박과 정치권과 시민의 감시가 필요할 것이다.

'빈곤과 팬데믹'에서 어린이들이 겪은 코로나 후유증은 심각해 보인다. 외출 금지된 아이들은 운동량 감소와 가공식품의 과도한 섭취로 소아비만에 노출되는데,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아동들이 상대적으로 선진국보다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것이다. 많은 빈곤 국가들이 영양실조와 비만의 이중 유행병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도 상황은 빈곤층 가정에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비만 유도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보건당국의 노력과 함께 일반 가정에서도 주시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문화적 충격(사람들이 말하는 트사회적 트렌드)보다는, 기후위기 의료산업 (바이오테크) 기업이나 정부의 방역시스템, 건강식품과 면역력에 대한 중요도가 다른 것에 비해 우선순위에 놓게 되었다.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한해 한해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신중하게 내딛어야만 한다. 미래는 우리 아이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현재를 책임지는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리뷰는 한국경제신문 한국BP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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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좀! 살자 - 사춘기 자녀 때문에 미칠 것 같은 엄마의 아우성 또 다른 일상 이야기
김민주 지음 / 지성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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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 때문에 미칠 것 같은 엄마의 아우성_엄마도 좀 살자!

저자 김민주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워킹맘으로 살다 딸이 사춘기가 오며, 같은 경험을 하는 부모들을 위한 모임(네이버 카페)와 힘든 사춘기맘 마음세움연구소를 세울 정도로 실제 경험과 대처 방안에 대한 일을 하게 되셨다고.

사춘기 자녀가와 폐경기 엄마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항간에 폐경기 여성의 심리변화가 더 우세하기에 사춘기를 이긴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이제 아이들의 사춘기는 통과의례이기도 하고 그 양상과 반응들이 워낙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심하지도 더 낫지도 않을 것이다. 큰 아이의 사춘기의 문이 열리기 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웠다.


누구의 일도 아닌 내 일이 되었을 때 내 자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정말 큰 일(?)이 되어, 인생의 큰 위기가 되어 오는 것 그리고 부모가 사춘기였던 시절을 생각하며 전혀 다른 개체인 자신들의 자녀를 향한 걱정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사. 춘.기.

우리는 누구나 겪지만 모두 똑같이 겪지 않는 시기이기에 한 인간으로서 태어나기 위한 성숙의 과정으로 그만큼, 그들은 도움도 필요하고 어른들은 세심하게 살펴줘야 하는 것이다.

엄마들은 대체로 불안으로 인한 근심 걱정이 많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에게 거절감을 안겨준다고 한다.

불안이 많은 엄마는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엄마에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이의 아픔 억울함, 분노를 엄마가 받아주지 못해 계속 거절한다면 엄마를 향한 마음 문을 닫아버리거나 분노를 폭발시킨다. 엄마는 영문을 모르고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나빠졌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구의 문제인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아이가 학교를 안 간다고 했던 것은 그냥 푸념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현명하게 해결할 실마리를 <왕이 된 자녀, 싸가지 코칭>(이병준, 2020, 피톤치드)의 한 구절에서 찾았다고 했다.

'학교 가기 싫다'라는 문제의 소유자는 아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안이 많은 엄마는 그것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어쩔 줄을 모른다...

학교를 가게 할 수는 없어도 아이와의 관계 아이가 부모에게 받아들여지는 마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도록 받아주어야 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면 불안해하며 아이를 잡거나, 너무 비굴해지는 것 대신 담담하게 아이에게 걱정되는 바를 전하며 너를 믿는다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정말 믿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우리 나라 부모들이 특히 아이들과 자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여기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유아 시기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었다면 걱정은 덜할 것이지만 그래도 사춘기에서 어떻게 부모와의 관계를 충족시켜 줘야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점검하고 서로의 관계를 망치지 않고 덜 다치게 할 수 있을거란 희망을 보았다.


 

이 리뷰는 지성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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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다 - 예술에 담긴 죽음의 여러 모습, 모순들
이연식 지음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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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죽음을 잊고 사는 시대다. 사람들은 우울, 불안, 외로움 같은 죽음이 관장하는 감정들을 껴안고 살아가면서도 사후 세계는 믿지 않는다.

죽고 싶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갈팡질팡한다.어린아이가 노인이 되듯 시간의 섭리에 따른 일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인간사는 예상치 못한 무수한 죽음과 죽음의 여러 양상으로 이루어져 왔다.그동안 죽음을 다룬 책들은 삶에 있어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모색하거나, 죽음에만 깊은 무게를 두거나, 죽음이 주는 메시지에만 집중했다. 켜켜이 쌓기만 한 죽음의 무게와 위압에서 우리들은 자연히 그것을 마주하기보다는

회피하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이연식은,서양화 를 전공하고 현재 미술사를 살펴보며 예술의 정형성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시각으로 저술, 번역, 강연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울 것만 같은 주제를 이번에는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미지'를 빌려 전승되었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조각 등으로 관련된 죽음에 관한 이미지는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한다. 인간사의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사연, 그리고 죽음의 안팎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넘나드는 시선 속의 유령의 존재로 함께 언급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그림 중 가장 유명한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정부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자 유명한 저널리스트의 자코뱅파의 지도자였던 장 폴 마라가 칼에 찔려 숨진 사건의 장면을 여러 화가들이 그렸는데 마라가 욕조에 널판을 놓고 서류를 검토하며 일하는 중에 방에 들어선 코드데 라는 여성이 저지른 살인 장면이다. 자코뱅파와의 정쟁에서 밀려난 지롱드파를 옹호했던 지적인 여성이었던 그녀는 '공포 정치'를 주도하고 수많은 사람을 반혁명 분자라며 단두대에서 죽였기에 코르데 그녀가 직접 처단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한다. 혁명 정부 당시의 그림인 자크 루이 다비드 이후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샤를로트 코르데1860>작품은 마라의 암살을 코르데의 입장을 대변하듯이 그렸다. 암살자인 그녀는 사형에 처해졌지만 말이다.

장 조제프 베르츠의 <마라의 암살,1880>또한 같은 맥락에서 누군가는 암살자, 누군가는 순교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상복은 검은색으로 오랜 세월 굳어져온 전통과 같은데,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죽음을 지켜보는 이들은 스스로 죽음에 벗어나기 위해 검은 천으로 한껏 가리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검은색은 덮어 가리는 행위이며 보티첼리의 <아펠레스의 비방>에서 긍정적인 가치인 진실이 알몸의 여성으로, 참회를 검은 두건을 쓴 나이든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를 향해 출발할 때부터 무시무시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살아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테세우스의 아버지이자 아테네 왕이었던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었다면 출발할 때처럼 검은 돛을 무사하다면 흰 돛을 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살아 귀환하면서도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다는 것을 잊어버렸기에 아이게우스는 검은 돛을 단 배가 보이자마자 낙심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검은 돛은 윌리엄 터너 <평화-수장>에서도 빛과의 선연한 대비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형체는 빛을 가두고 빛은 갇히다 파열하여 형태를 내부로 집어 삼키는 모습으로 데이비드 윌키라는 동료이자 친구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연에 검정이 없기에 피하려고 애썼던 것과 달리, 마네는 '검정으로 빛을 냈다'는 평가도 받을만큼, 신비롭고 확실하게 그 매력을 잡아내었다.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라는 작품이 그 한 예이다.(죽음은 검정)


또다른 인상주의 화가 중 지금도 사랑받는 클로드 모네는 죽음을 어떻게 그렸을까? 아내 카미유가 오래 앓다 암으로 숨을 거두자 그런 죽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리는 것이 어색했던 것일가? 모네의 붓질은 망설임 그 자체로 보인다. 당혹감과 난감함이 뒤섞여 결국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서명을 하지 않았다. 모네 사후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서명을 도장으로 만들어 찍었지만, 그래도 혼란스러운 화가의 고심이 느껴지는 <죽은 까미유>는 그의 그림에서의 변곡점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구스타브 클림트의 제자 에곤 실레는 젊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그렸는데 <은둔자들>에서 그 자신과 스승을 그렸는데 그때보다 나이가 들면서, 의지하던 클림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실레는 공허한 죽음을 캄캄한 심정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는 실레가 <죽은 클림트,1918>를 그린 것이라고 하니 그의 상실감이 어떨지 짐작이 갈 만하다.

찰스 디킨스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유령들의 방문을 받아 스크루지가 과거, 현재의 유령과 함께 밤새도록 돌아보고 미래의 비참한 유령을 맞닥뜨리면서 현재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암담할 것이라 예고한다. 책의 삽화에 나타난 유령 말리는 스크루지처럼 탐욕스러운 삶을 살았고 천국으로 가지 못한 채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방황하다 옛 동료이자 아직은 기회가 남아있을 때 개심하라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꿈일 뿐, 유령이 우리 곁에 머물러 산 자들에게 말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의 입을 빌어 산 자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지, 단편의 삽화 하나로 우리가 지혜를 깨닫기를 바라고 있다. 죽은 이는 돌아올 수 없고, 돌아와서도 안 되는 존재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파블로 피카소는 실제 여자 관계가 복잡하고 오래 살았던 열정적인 화가의 인생을 살았지만, 여성이나 주변 인물들의 자신의 세계의 부속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을 취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거라는 공포를 담은 <상처 입은 미노타우로스>는 그림에서조차 자신같은 괴물도 손내미는 여자들로부터 구원을 받기를 원했다니...이제와서 실소가 나올 만한 일이다. 독특하고 열정적인 그림 세계와는 별개로 인간적으로는 본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자신이 곧 죽음의 세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죽음으로부터 마리아를 멀리 두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온전히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사실, 나의 종교적 지식이 한없이 부족해, 예수와 관련한 그림에 대한 해석은 이해하기에 좀 어려웠고, 죽음이라는 맥락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 성경의 설정들이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를 그린 그림, <나를 만지지 마라> 제목의 일련의 작가들의 작품들의 해석은 꽤 믿음직했다.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가 자신을 만져 반가움과 친근함을 표하려 하자, 죽음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고자 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남편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오늘 날씨도 꾸물한 가운데 책을 읽다가 나는 뭔가 작은 파문을 느꼈다. 누군가의 죽음, 그것도 피가 섞이지 않은 자의 죽음이지만, 마음속으로 애도하게 되고그래도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깨달음 말이다. 20대에 피붙이가 돌아가셨을 때의 모습이 소환되기도 했고, 지금 40대에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의 무게가 결코 삶이라는 무게보다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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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희열 - 우리에게는 좋은 대화가 필요하다
KBS &대화의 희열> 제작진 외 지음 / 포르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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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좋은 대화가 필요하다_

송해, 한혜진, 서장훈, 안정환, 표창원, 천종호, 인요한, 호사카 유지, 강수진 님이 유희열이 진행하는 KBS교양프로그램에 나온 인터뷰와 대화를 엮어낸 책이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모델로서 살아온 한혜진, 그녀는 사실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모습을 비추고 있고 대중들에게 친숙한데...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며, ‘힘들어도 내가 모델을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의 출마와 당선, 그리고 짧은 정치 경력을 스스로 끝내고 본업인 프로파일러로 돌아온 표창원은, 그가 왜 철밥통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갑자기 정치를 하게 되었는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전한다. 그의 성정이 불같아서 안티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가족들에게 미안함도 함께 이야기 한다.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성과를 일구어낸 농구인 서장훈과 축구인 안정환, 발레리나 강수진은 운동선수, 무용수의 숙명인 ‘부상’이라는 인생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역경 앞에서 어떻게 견디고 극복했는지 경험을 들려준다. 특히 강수진은 타 유명무용수들과는 달리 중학교1학년 때 시작한 한국무용과 발레가 그녀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훌륭한 스승에 의해 발탁되어 유학길에 올랐으나 언어장벽, 실력에 대한 회의와 고민으로 긴 세월을 무명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연습, 노력이 뒷받침 없는 재능은 무용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한국 유니버셜발레단 단장을 오랜기간 해오며 차근차근 그녀가 쌓아온 가치들로 후배들을 이끌고 있음에 감사하고, 큰 울림을 주었다.

청소년을 위하는 만사소년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분에 대해서는 몰랐다. 대화의 희열 프로그램을 찾아보지도 않았기에 그의 행보와 가치관이 더 새롭고 희망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앰뷸런스를 만들어 수많은 목숨을 구한 의사 인요한은1895년 전라도 중심의 선교활동을 전개했던 진외증조부님 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을 맺었는데,그의 할아버지는 교육자이면서 항일운동가였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한국말을 배우고 영어는 따로 홈스쿨링을 해야했다. 순천에서 자라온 그는 외국인 학교에서의 부적응 외국문화가 한국과는 달라 오히려 문화충격이었다고. 의예과에 다니던 때는 1980년 민주항쟁으로 휴학을 했어야 했고 직접 광주로 가서 시민군을 도와 통역을 맡아 외신기자회견에서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으니,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 중의 하나였고 남북관계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미래까지도 언급할 정도로 뿌리깊은 애정을 보였다.

각 분야의 명사 9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대와 성별, 직업을 뛰어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성인들과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KBS <대화의 희열> 출연자들의 인세는 아동학대피해예방기금으로 기부됩니다 라는 문구가 표지에 자그마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출간의 목적이 이익에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삶에 대해 들여다보고, 또 나와 닮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 연출자 신수정 PD와 작가들, 참여한 명사들의 한바탕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이 리뷰는 포르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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