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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토마스 만의 단편선 중의 하나인 '토니오 크뢰거'.
다른 책들을 읽다가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토니오 크뢰거'만 읽기로 함). 사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토니오 크뢰거'가 처음이다. 몰라서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끼느라 일부로 읽지 않은 것인데, 나만 그런가 기대되는 작가의 작품은 정작 사놓고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서재에 꽂아 놓고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읽어버리면 뭔가 아쉬워!'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마지못해 읽고 말지만 다 읽고 나서는 역기 읽지 잘했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한다 ㅎ 아무튼 이 토마스 만의 작품을 읽었을 때도 같았다. 읽기 전에는 침울하다가 막상 읽으면 기쁜 이 기분. 나도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토니오 크뢰거는 본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로 내 기준상 매우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수업보다는 자신만의 시적인 몽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고 승마나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또래 애들과 달리 문학 작품을 읽으며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는, 한 마디로 예민하면서 섬세한 영혼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크뢰거는 이런 자신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매우 다르며, 본인이 세상과 잘 융화할 수 없는 예술적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때문에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꺼리지만 동시에 강렬한 애정을 가진다. 그는 '금발에 강철같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서 예술이 아닌 자신 본연의 삶을 아름답고 충분히 즐기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한스'와 짝사랑 상대인 '잉에'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위와 같은 괴리감에 방탕한 생활을 하던 크뢰거는 조력자와 마찬가지인 '리자베타'에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리자베타는 그가 '길 잃은 시민'이라고 충고한다. 예술인이니, 일반인이니, 결국에 크뢰거는 그저 '길을 잃은 시민'일 뿐인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서도 크뢰거는 리자베타의 충고를 인정하지만 '삶'에 대한 사랑 없이는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열망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나는 이 작품에서 뭔가 특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문학에서의 '예술'과 '삶'은 서로 앙숙인 사이나 마찬가지다(물론 예외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말하는 보통의 문학은 조금 오래된 문학들을 말한다). 예술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과 그런 무지한 사람들을 마음껏 경멸하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예술가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큰 틈이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는 천성 예술가임에도 예술을 자신의 인생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의 말 역시 들어보면 예술가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게다가 크뢰거의 아버지는 북쪽의 이성적이고 점잖은 성격이고 어머니는 남미의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이다. 그사이에 태어난 크뢰거.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크뢰거의 괴리감은 '예술은 삶에 종속되어야 한다' '예술보다는 삶이 먼저다'라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예술은 삶에서 느끼는 많은 경험과 감정을 통해 창조되어야 하며, 삶 역시 예술이 창조해낸 작품을 접함으로써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즉 예술과 삶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본 작은 예술가적인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크뢰거의 말대로 '본연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감상처럼 예술과 삶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예민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추천해 드린다. 언젠가 크뢰거가 바라는 데로 삶이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이 삶을 이해하는 날이 오는 날을 기대하는 바이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저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 P107
나는 위대하고도 마성적인 미의 오솔길 위에서 모험을 일삼으면서 ‘인간‘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냉철한 자들에게 경탄을 불금합니다. 그러나 난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한 문사(문학과 시을 짓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나의 이러한 시민적 사랑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07
내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가 물었다. 아니, 결코 없었다! 너 한스도 잊은 적이 없고, 너 금발의 잉에도 결코 잊은 적이 없어! 정말이지 내가 작품을 써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너희들이었어. - P98
한스 한젠, 네 집 정원 문 앞에서 약속한 대로 너 이제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마라! 난 너한테 더 이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넌 우울한 시 나부랭이를 보다가 네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기게 해서는 안된다. 너 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겁고 순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하느님과 세계의 동의를 얻으면서 자라나서, 악의없고 행복한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으면서,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와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해야 하고 창작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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