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어원 80일간의 세계 일주 - 지구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1,000개의 영어 어휘가 저절로 쌓였다
폴 앤서니 존스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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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일반 사전을 나침반 삼아 떠나는 세계 일주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언제나 가성비 최고의 여행 수단이다. 진짜 여행을 떠나기 힘들 때, 책 한 권만 펼치면 순식간에 낯선 이국의 땅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매력을 가장 극적으로 살려낸 작품이다. "지도나 지명 사전 대신, 일반 사전을 나침반 삼아 세계를 여행하면 어떨까?"라는 신선한 질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는 지명에서 따온 영단어들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북미 대륙까지 65개국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여정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단연 저자의 탁월한 말솜씨와 지적 유희다. 빌 브라이슨이나 마크 포사이스 같은 세계적인 대중 교양 작가들이 떠오르면서도, 과하거나 느끼하지 않은 특유의 경쾌한 유머를 보여준다. 참고문헌에 제시된 고전 속어 사전부터 현대 전문 사전까지 15권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음에도, 마치 친한 친구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어체로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책을 읽다 보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너 이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 하며 배운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릴 정도다.



* 단어 하나에 담긴 역사와 인간의 아픔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에 얼마나 깊고 다양한 세계사가 숨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온 '포트와인', 벨기에 스파에서 유래한 '스파(Spa)', 체코 야히모프에서 나온 '달러' 같은 직관적인 단어들은 가벼운 몸풀기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은 영국군 사령관의 이름에서 나온 '라글란 재킷', 태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전 세계를 돌았던 창과 엥 벙커 형제에게서 비롯된 '샴쌍둥이' 이야기는 단어 하나에 얽힌 개인과 시대의 아픔을 묵직하게 보여준다.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던 마셜 제도의 비키니 환초가 어떻게 수영복 '비키니'가 되었는지, 19세기 인도 데올랄리 주둔지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정신병 사태가 어떻게 일시적인 광기를 뜻하는 '둘랄리(doolally)'가 되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흥미진진하다. 독일의 호전적인 태도가 싫어서 독일 멧돼지 사냥개가 '그레이트 데인(덴마크 개)'으로 국적을 바꿔야 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언어가 가진 정치적 속성까지 보여준다.

 


* '80개 단어'라는 즐거운 속임수와 출판사의 정성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80개의 단어'라는 제목이 사실 즐거운 속임수라는 점이다. 저자는 하나의 목적지에서 연상되는 또 다른 단어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낸다. 각주마저 본문 못지않게 알차서 캘리코, 덤덤탄, 방갈로, 타마린드 같은 단어들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160~200개 이상의 어원을 배우게 된다. 단어를 단순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어원 탐구의 방향을 뒤집어 지명에서 파생된 기원을 찾아가는 '발굴'의 대상으로 접근했기에 학습 효과가 배가된다.

 

특히 출판사 현대지성의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편집 기획이 빛을 발한다. 원서에는 없는 풍부한 시각 자료(컬러판 사진)를 공들여 대거 가득 채워 넣음으로써 지리적 배경과 단어의 맥락을 시각적으로 훌륭히 보완해 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의 이해도를 대폭 높였을 뿐만 아니라, 표지 역시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단어들로 구성하여 자칫 진입 장벽이 높을 수 있는 책을 한층 친근하고 매력 있게 내놓았다.

 


* 아쉬운 점과 한계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영국의 언어 연구자가 학술적·교양적 어휘 위주로 집필했기 때문에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라 할지라도 실생활 활용 면에서는 체감도가 낮고 낯선 단어투성이로 느껴졌다. 지명과 어원을 매끄럽게 연결해 읽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독자 자신의 세계 지리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요구되기도 한다.

 

또한 챕터 제목과 실제 핵심 내용이 겉도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덴마크가 그레이트 데인의 어원이라면 굳이 코펜하겐을 제목으로 삼을 이유가 없고, '리마 증후군'을 다루는 장에서는 정작 스톡홀름 증후군 설명이 훨씬 많아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편입 연도를 틀리는 등 일부 사실 확인이 누락된 점이나, 완독 후 전체 내용을 되짚어볼 수 있는 '어휘+의미' 형태의 표제어 색인 목록이 책 뒷부분에 따로 마련되지 않은 점은 엄밀한 지식을 기대한 독자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 그런데도 추천하는 이유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이 책 본연의 매력을 가리지는 못한다. 애초에 이 책은 무거운 학술서가 아니라,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오마주로 런던에서 시작해 런던으로 돌아오는 쾌활한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자버니즘, 앰프스터 같은 생소한 단어부터 쥐라기, 칠면조, 보드빌까지 다채로운 단어의 성찬을 즐기다 보면 굳이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계 역사와 문화가 머릿속에 녹아든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짧은 비행, 혹은 휴가지에서 가볍게 읽을거리나 지적 자극을 찾는 이들, 그리고 언어가 가진 마술 같은 맥락에 빠져보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기꺼이 일독을 권한다.

 

#아마존베스트셀러 #현대지성 #폴앤서니 #핵심영어어휘 #영어어원80일간의세계일주 #신박한어휘학습법 #왜아는단어가없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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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어원 80일간의 세계 일주 - 지구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1,000개의 영어 어휘가 저절로 쌓였다
폴 앤서니 존스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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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영단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추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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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너머의 금융 - 21세기 화폐금융론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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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수능 영어 지문을 막힘없이 해독하고 관계대명사를 설명할 때면 제법 유능한 교사가 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교무실로 돌아와 대출 원리금 상환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이 얕은 지적 자만심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영어 어휘나 문법에는 훤할지언정 숫자와 돈의 생태계 앞에서는 세상에 이런 초짜가 없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금전 감각에 젬병이었던 이유는 돈이라는 존재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주체적이고 지혜롭게 쓰며 경험을 쌓아볼 기회조차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산이라고 해봐야 은행 대출을 쥐어짜 마련한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이고,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각종 공과금과 이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일쑤다. 재테크는커녕 노후 준비조차 손대지 못한 채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조 섞인 한숨뿐이었다.

 

이런 답답한 인간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냐며 대책 없이 자신을 위로하던 중 이 책을 만났다. 전문서와 교양서의 경계에 있는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단편적인 투자 기술 대신, ‘화폐금융론이라는 기술적인 주제를 통해 금융의 근본적인 뼈대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경제 뉴스를 알아듣고 당장 경제 활동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감기약 같은 금융 상식이라기보다, 금융 감각을 키워주는 보약이라 하겠다.

 

저자는 무거운 동전을 대신하려 만든 당나라의 '비전'이나 유성 잉크로 양면 인쇄를 가능케 한 송나라의 어음 '교자'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돈이 어떻게 모습을 바꾸어왔는지 들려준다. 특히 어음의 환금성을 보장하는 '배서'라는 장치는 부도 시 연쇄 위험을 낳기도 하지만 그만큼 담보력을 높여준다는 어음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수표의 한 종류인 여행자수표가 식당이나 상점에서 서명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부서(countersignature)' 절차 덕분에 현금보다 안전할 수 있었고, 이것이 조건부 지급을 이행하는 현대 스마트 계약(이더리움)의 원조였다는 대목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1825년 금융위기 때 영란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며 자금 경색을 완화했던 역사를 통해 중앙은행이 '최후의 구원자' 역할을 하게 된 진짜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뱅크런을 막는 예금보험제도가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전액 보호 대신 부분 보호를 원칙으로 삼게 된 과정, 1978년 미국의 '전자자감이체법'으로 은행이 독점하던 송금 영역에 ATM이나 카드사 같은 제삼자가 개입하게 된 흐름도 흥미롭다. 최근 우리나라의 티몬·위메프 사태 역시 현행법상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이 고객 자금을 잠시 보관하고 정산하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뉴스 속 복잡한 사건들이 비로소 하나의 맥락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비트코인 같은 최신 디지털 화폐를 바라보는 시각도 한결 명쾌해진다. 처음엔 기존 화폐를 대체할 혁신으로 홍보되었지만, 예산이나 세금 집행에 쓰이지 못하며 결국 기존 금융권이 투자하는 '암호자산'으로 자리 잡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짚어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책에서 당장 내일 대출금을 다 갚는다거나 부자로 만들어주는 기적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움직이는 돈의 흐름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뜰 수는 있다. 둔감했던 금융 감각도 돈의 작동 원리를 익히며 조금씩 기지개가 켜지는 느낌이다. 돈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세상을 읽는 하나의 언어로 바라보게 된 것만으로도 문과 감성 충만했던 나에게는 커다란 진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자산 증식 기법에 피로감을 느끼며 돈의 근본적인 생태계를 알고 싶었던 보통의 월급쟁이들과 금융 초보자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나아가 비트코인이나 핀테크 등 쏟아지는 최신 기술의 역사적 맥락이 궁금하거나, 돈과 지급수단의 진화 과정을 흥미롭게 탐구하고 싶다거나, 실제 금융 제도의 구조적 과제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세상을 해석하는 명쾌한 안목을 얻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나의 노후 대비는 어쩐다지?

 

#메디치 #차현진 #은행너머의금융 #경제상식 #금융지식 #화폐금융론 #문과라숫자싫어 #고마해라걱정 #돈마이까뭇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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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언론 자랑 - ‘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
윤유경 지음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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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낮 1210, "빰빠빠 빰빠 빰~~" 경쾌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시작되던 국민 예능 <전국노래자랑>. 윤유경 작가의 전국 언론 자랑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자마자 그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책의 목차를 살피면서 작가가 왜 하필 수많은 제목 중에 이 친숙한 프로그램의 이름을 빌려왔는지 무릎을 '' 치며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전국노래자랑> 활자판 같다.

 

솔직히 요즘 TV나 포털 사이트 뉴스를 보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많다. 매일 같이 싸우는 정치인들, 자극적인 사건 사고, 서울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같은 이야기들만 가득할 뿐, 정작 사람들이 하고픈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뉴스는 십중팔구 우울한 소식뿐이다. 인구가 줄어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라는 이른바 '지방 소멸'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처음엔 '언론'이라는 단어 때문에 좀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역 소멸이라는 알맹이 없는 말 대신 우리는 서울 중심주의’, ‘실패한 지방 분권’,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의 불균형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수도권을 중심에 둔 우리의 시선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언론과 기자를 불신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정보를 요구하고, 기사에 오류나 왜곡이 있어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73)

 

<전국노래자랑>의 진짜 매력이 화려한 가창력을 뽐내는 가수가 아니라, 우리 앞집 세탁소 아저씨, 뒷집 반찬가게 할머니가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춤추는 그 '사람 냄새'에 있는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동네 신문과 지역 방송의 주인공들 역시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다. 전북 진안의 동네 신문 이야기는 흡사 <전국노래자랑> 진안군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전국노래자랑> 무대 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스타가 되듯, 진안신문에서는 80대 할머니도, 발달장애가 있는 동네 청소년도 직접 펜을 들고 자기들의 일상을 기사로 써낸다. 할머니가 쓴 삐뚤빼뚤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그걸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읽으며 왁자지껄 웃는 모습은, 동네 할아버지가 방송에 나와 엇박자로 트로트를 부를 때 객석의 주민들이 다 같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풍경과 완벽하게 겹쳐 보였다. 주류 언론에서는 절대 마이크를 주지 않을 사람들에게 기꺼이 멍석을 깔아주고 마이크를 쥐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동네 언론의 진짜 역할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지역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지역민들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것, 그들의 삶을 지역의 역사로서 보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단독이나 속보 경쟁, 조회 수 올리기에서 벗어나 지역 언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87)

 

그런가 하면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 프로젝트는 송해 씨의 따뜻한 진행을 똑 닮아 있었다. 부산의 가파른 산동네에 작은 무료 빨래방을 차린 기자들은 취재 수첩을 들이밀며 딱딱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진행자가 참가자들의 손을 꼭 잡고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묻듯이, 기자들은 어르신들의 무거운 이불을 대신 빨아드리며 자판기 커피 한 잔과 함께 그분들의 팍팍하고도 눈물겨운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노래 대신 삶의 애환을 듣고 그것을 기사로 써 내려간 이들의 모습에서, 뉴스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따뜻하게 어루만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충남 태안, 당진과 충북 옥천의 동네 신문들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노래자랑>이 그 동네의 특산물을 자랑하고 동네 사람들의 소소한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인 것처럼, 이곳 기자들은 서울에서 일어난 큰 사건보다 주민들의 삶에 찰떡같이 붙어있는 진짜배기 뉴스들을 찾아다닌다. 동네 버스 노선이 갑자기 바뀌어서 할머니들이 시장에 가기 힘들어졌다, 옆집 철수네 강아지를 잃어버렸는데 같이 찾아보자, 동네에 들어오려는 냄새 나는 공장을 막아보자, 그리고 무려 18년 동안 발로 뛰는 취재를 멈추지 않고 보도하는 전대미문의 기자 정신 이야기까지. 중앙 뉴스에서는 '!' 하고 탈락시킬 사소한 이야기들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삶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딩동댕' 같은 소식들이다.

 

지역은 다 버릴겁니까. KBS, MBC 등 공영 방송은 좌도 우도 아니고 아래고 가서 주민들과 어떻게 접촉면을 넓히고 필요한 방송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148)

 

그런데, 돈도 별로 못 벌고 늘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이 동네 기자들은 대체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 그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사를 써서 동네에 작은 변화가 생기는 걸 보는 기쁨, 그리고 길을 가다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이 "김 기자, 그 기사 잘 읽었어!"라며 건네는 박수갈채. 그것이 이들을 계속 뛰게 만드는 힘이었다. 무대 아래서 쏟아지는 동네 이웃들의 환호성과 응원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출연료였던 셈이다.

 

우리는 4만 인구도 안 되지만, 그 사람들도 사람이지 않나요. 우리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사람,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지역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172)

 

서울깍쟁이 같은 차가운 주류 뉴스들은 통계와 숫자를 들이밀며 이제 지방은 끝났다고, 소멸할 거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전국 언론 자랑이 비춰준 동네의 진짜 모습은 달랐다. 그곳에는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돕고 살아가는 '뜨거운 사람들의 삶'이 요동치고 있었고, 그 곁에는 우리 이웃들의 삶에 경쾌한 '딩동댕' 실로폰 소리를 울려주는 다정한 동네 기자들이 있었다.

 

가짜인데다 자극적인 뉴스 제목에 낚여 늘 신경이 곤두서고 질려있던 참에, 오랜만에 일요일 낮 <전국노래자랑>처럼 사람 냄새가 폴폴 나고 훈훈한 책을 만났다. 문득 내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지역 신문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일은 출근길에 동네 구석에 놓여 있는 지역 신문 가판대를 한번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한 곳이고, 우리 주변엔 좋은 이웃이 참 많다고 믿으며, 억압당할지언정 폐간도 무릅쓰던 정론직설 시절이 그리운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귓가에 "~! 언론 자랑~!" 하는 정겨운 외침과 딩동댕 실로폰 소리가 맴돌지도 모른다.


#사계절 #윤유경 #미디어오늘 #전국언론자랑 #진짜언론 #정론직설 #지역신문 #민초이야기 #구독자가곧주주 #주류언론반성하라 #전국노래자랑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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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국내여행 맵북 KOREA MAP BOOK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이정기.타블라라사 편집부 지음 / 타블라라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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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국 어디든 길을 찾고 맛집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종이 지도책은 어떤 매력을 지녀야 할까? 타블라라사에서 출판한 에이든 국내여행 맵북은 이 질문에 대해 '압도적인 정보량'이라는 해답을 내놓았다. 친근한 일러스트 표지를 넘기면 디지털 화면의 좁은 프레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방대한 맞춤형 정보 잔치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과도한 친절함 때문에 '지도'라는 매체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이 책의 특징, 정보 전달, 지도 가독성, 편의성 그리고 장단점에 비판적(?) 시각을 더해 분석해 보았다. 참고로 순수 한국어 전용을 원했으나 외래어화된 용어가 너무 많은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

 

1. 특징 및 정보 전달: 지리를 넘어선 '여행 백과사전'

이 책의 가장 큰 무기는 단연 정보의 밀도와 알찬 맞춤형 정보다. 목차를 보면 '봄꽃편', '여름꽃 향연', '역사지도' 188개에 달하는 테마를 제공한다. 제주도 애월 지역이나 경주 일대의 지도를 보면, 단순한 행정구역이나 도로망을 넘어 핫플레이스, 노포 맛집, 뷰 포인트, 심지어 역사적 사건의 발생지까지 텍스트와 아이콘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지리 정보와 인문, 트렌드가 한 장에 융합되어 있어 여행의 영감을 얻고 목적지를 발굴하는 '정보 전달 매체'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2. 지도 가독성: 배경화면으로 전락한 지도, 텍스트에 잡아먹힌 지리(地理)

하지만 바로 그 장점이 이 책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낳았다. 명색이 지도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전달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텍스트가 지도를 완전히 덮어버린 형국이다. 지도의 본질은 지형의 형태, 도로의 연결성, 지역 간의 물리적 거리와 공간적 맥락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상세 페이지(: 제주, 경주 등)를 보면, 수많은 상호명과 설명 텍스트, 다채로운 아이콘들이 공간을 빈틈없이 점령하고 있다. 그 결과 산맥, 해안선, 도로망 같은 진짜 '지도 정보'는 마치 텍스트를 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깔아둔 '배경화면'처럼 흐릿하게 후퇴해 버렸다. 지형적 맥락은 사라지고 정보의 나열만 남아, 공간의 구조를 파악하고픈 독자에게는 시각적 피로도를 유발할 수 있다.

 

3. 사용자 편의성: 시스템은 훌륭하나 시각적 여백이 부족한 UI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는 아날로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영리한 시스템이 돋보인다. 전국 지도를 격자(Grid)로 나누어 상세 페이지 번호를 명시한 '전국 인덱스 지도'는 독자가 원하는 지역을 매우 직관적으로 찾게 해 준다. 또한 서울 지도의 경우 복잡한 골목 대신 구()별 덩어리로 단순화하고 상세 지역을 상자로 유도하는 방식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찾아 들어간 상세 페이지에서는 숨 막힐 듯한 텍스트 밀도 때문에 편의성이 크게 떨어진다. 글자의 크기가 주요 관광지의 이름은 크지만 설명은 작아 시력이 좋지 않은 필자에게는 해독이 쉽지 않으며, 텍스트 간의 여백이 적어 네비게이션처럼 직관적인 경로 탐색용으로는 사실상 활용하기 어렵다.

 

4. 장단점 요약

* 장점

* 경이로운 정보 밀도: 인터넷 검색 수십 번을 대신할 압도적인 양의 여행 정보(맛집, 카페, 유적, 자연경관 등)가 하나의 뷰에 담겨 있다.

* 테마별 큐레이션: 188개의 테마 등 기획력이 돋보이며 동선을 짜고 여행의 목적을 설계하는 기획 단계에서 훌륭한 브레인스토밍 도구가 된다.

 

* 단점

* 주객이 전도된 가독성: 텍스트와 아이콘이 지형과 도로보다 우선순위로 보여, 정작 '지도'로서의 공간 인지 기능은 약한 편이다.

* 시각적 피로감: 작은 폰트와 여백 없는 정보의 나열로 인해 눈이 쉽게 피로해지며, 원하는 목적지를 빠르게 훑어내기 어렵다.

 

결국, 에이든 국내여행 맵북을 전통적 의미의 '지도책'으로 접근한다거나, 네비게이션이 상용화되기 전 지도책을 보고 길을 찾아 다니던 중년층 운전자라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옛날식으로 어느 명승지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느냐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대한민국 지도 모양의 캔버스 위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간 방대한 여행 카탈로그'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과거의 기준으로 이 책의 쓸모를 깎아내려서는 안 되겠다. 이 책은 현장에서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 전 거실에 펼쳐두고 수많은 선택지 중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내는 '여행 설계용 백과사전'으로 사용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정보의 과잉이 낳은 아쉬운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집요하게 전국 방방곡곡의 매력을 한데 긁어모은 제작진의 노고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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