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원칙 - 인간 역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무기
카민 갤로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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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자리에서 단 한 차례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을 뿐, 수년간 별다른 교류도 없던 사람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몸에 그렇게 좋은 건강 보조식품을 소개할 테니 20분만 허락해 달라 부탁한다면?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호의적으로 받아넘기기란 매우 쉽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로부터 자신보다는 호주머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약장수라는 인상을 받을 테고 필자 역시 그러한 생각에 더 이상의 대화를 흔쾌히(?) 거절하고 말았다. ‘는 필자를 상대로 이득을 취할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명분이나 친분을 쌓아두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수사법적 수단인 logos(논리적 구조), ethos(인격과 품성), pathos(감정적 유대)를 활용하여 주장을 뒷받침했어야 한다. 그는 뛰어난 약효와 안전성을 부각한 로고스만 호소하였을 뿐, 서로 알고 지내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에토스와 약효의 경험담을 공유하여 공감을 일으키는 파토스를 갖추지 못했다. 그 결과 돌아오는 것은 날 언제 봤다고 어디서 약을 팔아?’라는 반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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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을 상대로 다단계 약을 팔든, 거창한 사업을 하든, 괜찮다는 아이디어가 저절로 팔리는 법은 없다. 기업이라는 이름의 세계화 집단, 시스템 자동화 그리고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거의 모든 영역의 직업군에 교란을 초래하는 이 시대에,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상대가 이에 감화 감동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남들보다 앞서가며 탁월함을 성취하려면 역설적이게도 예부터 전해지는 고전적 설득술에 통달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술을 풀어쓰며 오늘날 청중에게 더 나은 의사소통을 위한 영감 방법을 제시한다. 문명의 발달로 일의 본성 자체가 변화하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전 세계의 사물들을 순식간에 교류할 수 있게 되면서 의사소통 기술은 더욱더 중요해졌다. 그는 또한 신경과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억만장자 그리고 구글, 나이키, 에어비앤비 같은 세계적 기업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미래의 꿈에 불을 지르는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선 남다른 언변으로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돌아보고(1), 과학자와 사업가, 금융인, 의사와 병원 등 실제 세상에서 나타난 설득의 성공사례들을 소개하며(2), 설득에 통달한 인물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말의 기술을 상세히 알려준다(3). 특히 각 하위 장의 끝에 파이브 스타 원칙소제목으로 요약본을 제시하여 가독성을 높여놓았으며, ‘상위 1퍼센트가 사용하는 독보적인 말의 기술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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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토스 원칙을 기억하라. 설득에는 감정에 호소하는 파토스가 있어야 하며 이를 구축하는 최고의 언어적 수단은 이야기이다. 개인적 경험, 자신이 겪은 변화, 나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이야기를 활용하라.
  2. 설정-갈등-해소의 3막 구조를 따르라. 긴장-고난-행복한 결말이 있는 영웅의 이야기가 전수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3. 단 한 줄로 승부하라. 하나의 주제를 영화의 로그 라인처럼 한 문장에 담아 15초 안에 핵심을 제시하라.
  4. 최소한의 단어만 써라. 청중의 집중력은 기껏해야 15분이다. 요점 제시는 신속하게, 어려운 내용은 쉬운 말로 다듬어 전달한다.
  5. 비유로 요리하라. 언어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유추를 적절히 제시하면 대개 원하는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한다.
  6. 잠든 뇌를 깨워라. 세상을 다르게 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뇌에 쏟아붓는 것이다.
  7. 두려움을 조절하라.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다. 자신과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재해석과 반복적 연습인 리허설을 통해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의사소통은 마치 다섯 개 만점의 별점 매기기와 비슷하다. 별의 개수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좋아져도 인간인 이상 우리는 의사소통을 중단하거나, 거부하거나, 인류가 최첨단기술로 개발한 결과물인 인공지능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읽는 법을 배울 수는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지식의 시대에는 정보 보유량이 우리의 가치였으나,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설득술의 재발견과 적용을 통해 우리가 평범과 비범 사이의 격차를 좁히고 자동화 시대에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는 의사소통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 애플 부사장 안젤라 아렌츠의 말처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손을 만질 때 받는 느낌을 대체할 수는 없으므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적 유대를 이루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독자라면 특히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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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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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상경한 듯주머니에 단돈 10만 원뿐인 초라한 행색의 사내가 강남 버스터미널에서 전화로 택배 일자리를 얻는다그가 맡게 된 택배 구역의 동네 이름을 따 행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된다.


- 사실 이 바닥이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이 많이 오긴 하죠.

- 바닥이 있다면 아직 진짜 바닥은 아닌 거죠. (16p)

택배기사를 구인하던 택배업체 사장 바나나 형님과의 첫 통화를 보면 그는 몸을 팔아 살아가는 삶의 바닥까지 내려온 것 같다그러나 자신을 건사할 만한 능력과 생각을 지닌 그로서는 적어도 정신세계만큼은 아직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이 일에서 배운 게 있다면 버나드 쇼의 말이 맞다는 거다돼지와 뒹굴어서는 안된다는 것함께 더러워질 뿐이고 심지어 돼지가 그걸 좋아한다는 사실.(70p)

비 오는 날 배송 물품의 포장이 물에 젖었다며 안 받겠다고 갑질하는 옷가게 사장을 그는 이런 생각으로 바라본다갑과 을을 지나 병이 정을 하대하는 환경에서도 그는 스스로 돼지와 동급이 되기를 거부하는 장면에서 작품이 점점 흥미롭게 다가온다.


- 하지만 감정노동에 대한 대가 따위는 없다이런 걸 착취라 하고눈 뜨고 당하고 있는 걸 바보라고 한다가난하게는 살 순 있어도 바보로 사는 건 싫다. (75p)

배송한 물품을 창고 안쪽으로 옮겨달라며 갑질하는 다단계 회사 안내 여직원에게 배송과 운송의 차이점을 참교육하는 장면에서자존심은 이렇게 지켜야 한다는 듯한 매력을 발산한다우리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접어두고 퇴근해 집에 와서야 겨우 꺼내 확인해보는 그 자존심 말이다.




- 현대 교육의 핵심은 야성의 제거에요노예에게 야성이 있으면 다루기 힘드니까집에서 기르는 개와 마찬가지죠먹이를 주고 쥐꼬리만 한 안정감을 쥐여주면 나머지는 원하는 대로 부려 먹을 수 있죠교육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요경쟁을 시키고 서열을 주면 알아서 서로를 증오하며 끌어내리고 밟고 올라서기 바쁘죠그러면서 태연한 얼굴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건 자유라고 말하죠자유가 어떤 건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223p)

한 달간 택배 업무를 대신 뛰어준 보답으로 술을 사는 남현동과의 대화를 통해약자를 밟고 올라서야 약자 취급을 받지 않는 학습된 권력 구조의 모순과 이에 순응하도록 의도된 제도권 교육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들추고 있다경쟁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상기시킬 수 있다니.


- 되도록 사람과 연은 맺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이 맺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지어야 편해지는 성격이다이상한 데 결벽증이 있고 역시 다른 성격처럼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84p)

-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그럴 땐 포기하면 편하죠정말 그래야 할 일은 살면서 한두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 (189p)

- 사람이란 한계치에 다다르면 나뭇잎 한 장이 얹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법이다한계치는 사람마다 다르며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타인이 그 무게를 어찌 알겠는가설명 부부라고 해도 말이다. (204p)

이 부분은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 독백으로 뽑았다인연은 물론 부부와 같은 최소 가족 단위에도 기름기 뺀 미니멀리즘적 태도를 보인다특수한 상황에 이르는 인간의 한계치를 경험해 본 이력을 엿볼 수 있으며어떠한 대인관계도 언급되지 않는 데 대한 우회적인 설명으로 읽힌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작품에 영향을 준 소설영화미드팝에 대한 오마주를 표방하였음을 밝히면서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는 인생관을 가졌다고 한다그러나 우리 인생이 어디 그런가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경우는 물론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인데 마주해야 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한 번 만날 때마다 백만 원을 받고 시키는 대로 하자고 제안하던 억만장자 회장님의 손녀인 춘자수학 천재였지만 동네 바보가 되어버린 마이클과 경제철학 강의를 고집하는 그의 할아버지세상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며 폐지를 줍는 마스크도박 중독으로 택배기사들 월급을 들고 달아난 바나나 형님동료 기사인 아파트와 청림술만 마셨다 하면 사고 치는 주창이와 시비 거는데 도가 튼 조 따거게이 바 코카인의 마약 유통업자인 제니관악 경찰서 강력3계 형사인 유도 등이 그러한 인간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침입자들인가 생각해 보았다하고 싶지는 않지만 단지 생계를 위해 택배기사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주인공 행운동은 택배기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어쩔 수 없이 엮여야만 한다본인이 선택할 여지도 없이 그는 주변인들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배송 물품의 수화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 속으로 먼저 침입해야 한다그를 맞이하는 주변 인물들 역시 행운동의 일상 속으로 침입하게 된다저자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침입자들의 세계에서는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의 예의와 불친절하지 않은 선에서의 친절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행운동은 타인에게 무례하지도 않지만 무례한 일을 당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때로는 냉소적이고 자조적이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물질과 권위 등 타인과의 관계에 쉽사리 영향을 받아 자신의 본 모습을 기만하거나 잊어버리는 굴욕감을 맛보아야 하는 데 반해그는 마약밀매 조직에 납치를 당해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무척 당당하고 초연한 농담으로 자신을 객체화할 줄 안다무척 남다르다경호원의 넥타이를 순식간에 잘라내는 칼솜씨와 knife의 줄임말인 K라는 별명티모센코라는 교관의 이름 등으로 고도로 잘 훈련된 전직 특수전 요원임을 암시하기도 한다그의 주변인들이 의외로 신선한 호감과 매력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의외성에 있으며일상에 찌들어 관계성에 무감각해진 독자들은 물질과 권위를 가볍게 조롱하며 털어버리는 행운동에게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는 저자의 이력으로 보건대 택배기사도 그 가운데 하나이리라 충분히 짐작된다낯선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었으나 웬만한 외국 스릴러 작품보다 더 흥미롭고 전개가 빠른 데다 택배 세계를 소재로 한 찰진 소설이란 점이 더욱 신선하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에 오른 데에는 다 그만한 저력이 있었음을 공감하며 하드보일드 소설 장르라면 엄지 척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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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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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현재진행형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을 예견했다고 하여 전 세계 역주행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책을 만나보았다. 중국 우한 시 외곽의 RDNA 연구소에서 유출된 높은 치사율의 인공생성 바이러스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2차대전 이후 여전히 세균전 실험과 국비 경쟁 같은 냉전 분위기가 남아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가적 상상의 산물이자 소설 속 설정이며 아무래도 장르의 특성상 흥행을 의식하여 다분히 상업화된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딘 쿤츠라는 걸출한 서스펜스 작가를 이제라도 접하는 계기가 된 점은 고마워할 만하다.

 

정확히는 1981년에 출간된 이 초기작의 줄거리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불행이 닥치기 전 무려 16회나 동계 산악 야영 여행을 무사고로 이끈 노련한 지도자에게 아들을 딸려 보낸 엄마가 사고 이후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온갖 역경을 헤쳐가게 만드는 모성에 있다. 녹음기, 디스켙과 같은 추억 속의 단어들이 40년의 세월 격차를 알려주는 점 외에는 미국 국내 텔레비전의 드라마 각본으로 기용될 만큼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읽어나가는 속도감 또한 경쾌한 작품이다.

 

작품 도입부는 야영 지도자와 참가자 전원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들의 시체조차도 확인할 수 없어 갈수록 슬픔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주인공 크리스티나 에반스는 칠판 글씨, 인쇄기의 출력물 및 다양한 신호를 접하고 엄마만의 감각을 통해 생존 사실을 알려오는 아들의 생존을 확신하게 된다. 이혼 이후 절치부심하여 성공한 공연 제작자로 거듭나면서 알게 된 인생의 친구이자 연인인 변호사 앨리엇 스트라이커와 함께 아들의 소재를 찾아 나서면서 서스펜스 장르 특유의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줄거리 스포일러 대신(?) 등장인물을 간략히 소개해본다.

크리스티나 에반스 대니의 엄마, 이혼녀이자 주인공.

마이클 에반스 대니의 아버지이나 이혼남. 판도라 프로젝트의 1호 희생자.

앨리엇 스트라이커 육군 정보부 출신의 변호사, 티나의 연인이자 동반자

대니 티나의 아들. 인공 바이러스 노출의 생존자이자 피실험 대상

빈센트 판도라 프로젝트에 고용된 암살자

알렉산더 판도라 프로젝트의 책임자

 

코로나19는 예견되었다?

South China Morning Post에 의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생물학 무기는 애초 1981년 원전에서는 러시아 지명인 고르키-400으로 명명되었으나 1989년 재출간 시 우한-400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한 것은 사실이나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이러스에 대한 발상은 출처 미상의 SNS에 의한 음모이론이며 중국 당국과 서방세계 과학자들이 극구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2003년 대유행했던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의 사촌격이며 박쥐를 숙주로 하는 이 바이러스의 정확한 출처를 밝히려 애쓰고 있으나, 인간 감염의 전 단계인 중간숙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다른 점?

최근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 후 5일부터 증상이 발전되고 14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본격 발병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주요 사인은 폐 세포 괴사에 의한 호흡곤란이다. 우한-400 바이러스는 노출 즉시 하루 만에 사망하며 주요 사인은 뇌세포 감염에 의한 기능 부전이다. 기저 질환자와 노년층에 집중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치사율은 3~4%인 반면, 우한 바이러스는 100%이며 인체 밖에서는 생존 불가로 설정되어 있다.

 


옥에 티 지적질?

개인적으로 외국 작품을 접할 때마다 아무래도 번역물이다 보니 번역체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되는데 이 작품의 상황 전개, 심정 표현, 배경 설명 부분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다. 그러나 은어와 욕설 또는 명령형이 더 어울릴 듯한 긴급하고 적대적인 상황에서 ~하오, ~했소, ~입니까? 와 같은 어색한 경어체 표현은 서스펜스 장르의 특성을 흐리게 하며 빠른 내용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를 떨어트린다. 예컨대, 판사에게 대니의 무덤을 열어 볼 권한을 요청하는 앨리엇과 그를 제거하기 위해 판사가 파견한 비밀경찰 암살자들은 목숨이 오가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격식 차린 공손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그러하다.

 

독특한 소재?

저자는 현실적인 공포를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 녹여내는 독특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며, 이 작품에서는 대니에게 투여한 바이러스 주사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염력(psychokinesis)을 액션의 주요 소재로 사용한다.

 

돋보이는 조연?

최악을 피하되 차악과 공존하는 법을 설파하는 톰비 박사는 의사로서의 생명윤리 의식을 지키려 애쓰는 인물로 그의 인도주의적이고 양심적인 언행은 인상적이다.

 

차기 흥행작의 모태?

대니의 존재는 이후 등장하여 유명한 생물학적 위협(bio-hazard)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유일 생존자의 항체가 해독제로 쓰이는 플롯을 연상시킨다.

 

추천사?

서스펜스 장르의 애독자라면 코로나바이러스를 예견했다는 심령술사의 예언서 같은 광고 문구에 현혹되지 마시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매혹적인 저자의 작품 세계에 딱 두 시간만 빠져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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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스페이스 - 나를 치유하는 공간의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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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우리 주변의 산만함과 왜곡, 괴상한 색상과 소음 등이 우리 마음속 치유 작용을 자극할 수 있다면, 우리를 치유할 힘 역시 지니지 않았을까? ‘힐링 스페이스의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놀랍도록 풍부한 몸과 마음, 인식과 장소의 관계에 관한 연구로 화답하고 있다.

 

저자는 감각과 감성, 면역체계 사이의 복잡한 작동 관계를 밝혀주는 발견물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그 첫 사례는 1980년대에 유려한 풍광을 갖춘 병원의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빨리 치유됨을 발견한 연구자의 이야기다. 어떻게 좋은 경관이 치유를 가속할까? 저자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디즈니 놀이공원, 프랭크 게리 센터, 미로 정원 등 감각의 신경생물학을 탐구하는 일련의 장소와 상황을 통해 주변 환경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유발 또는 감소시키고 불안을 유도하거나 평온을 심어주는가를 탐구한다.


 

물리적 공간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제시하며 저자는 앞날이 매우 밝은 신경건축학 분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도입부에서는 환경과 치유 사이의 연계성을 탐구하는 연구의 소개를 시작으로 감각의 작동방식과 신체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알려주는 생리학적 용어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어 다음 장을 감각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특정한 연구 분야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시각, 음성, 감각과 후각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오랫동안 쾌적한 환경이 치유에 미치는 영향을 연관 지어 생각해오기는 했지만, 마침내 과학자들이 두뇌와 면역체계 사이의 연관성을 확립하여 신경학과 면역학 분야에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제는 과학적 자료를 확충함으로써 치료의 공간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 역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새로운 증거들을 속속 발견하고 있다.

 

다음 전개부에서는 공간이 감성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감각은 공간 인식 능력을 키워주는데 이는 곧 감성의 생성을 의미한다. 예컨대 미로를 지나는 동안 짜증이 유발되는 반면 미궁을 걷는 동안에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차분해지는 경험이 그러하다. 또한, 특정한 장소가 기분을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디즈니 월드의 중심지에서 루르드의 치유 동굴까지, 번잡한 도시의 거리에서 밝게 색칠한 방까지,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감성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치유의 속도까지 좌우한다. 저자가 양질의 연구 결과와 이야기를 적절히 잘 버무린 덕분에 독자들은 장소와 신경생물학 그리고 감성의 복잡한 연결 관계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결말 부에서는 치유 명상과 기도, 질병의 진화와 감염 통제, 병원과 치유 공간 등을 포함한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역사 속 명소를 과학적으로 관찰하면서 스트레스, 고립, 신념, 명상과 습관적 동작 등이 치유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한편으로 저자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과거를 주제로 하여 우리의 행동이 미래의 건강한 사회 형성에 도움 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에 관여했던 집단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도시 계획, 가구 설계, 병원 건축 같은 치유 요소의 일상생활 도입을 말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물론 건강과 장수를 위함이다.

 

과학적 연구와 생리학적 작용의 조합, 그리고 탁월한 디자인의 독특한 표본과 흥미로운 역사의 조합으로 이 책은 과학자와 건축가뿐만 아니라 보건 산업 관련자나 심지어는 문외한에게도 훌륭한 읽을거리이다. 공간과 생리학 그리고 전반적인 건강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논의를 제공하는 다양한 주제가 정교하게 잘 엮여있다.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치유의 장소로 이끄는 것이라면, 우리가 처한 자연적 입지는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환경의 건강은 개인의 건강에도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이 책에 서술된 발견물들은 치유의 촉진과 모두의 건강을 위해 병원과 지역사회의 설계 가능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감성과 물리적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건강과 치유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깨달음으로써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로운 환자들을 이롭게 하자는 것으로, 치유 공간을 마련하는 연구를 통해 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건강과 치유 면에서 신경건축학이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은 굉장히 매력적인 한편, 병원과 요양원, 연구소 등을 건축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저자는 이를 현실화하려면 건축 관련 정책 결정권자들을 설득하여 건강한 공간의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에 치유 공간을 만들어 낼 여력이 있음을 믿는다는 말로써 글을 맺고 있다.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을 치유하는, 여러분의 공간은 어디인가?

내가 머무는 곳이 나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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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사회 - 어설픈 책임 대신 내 행복 채우는 저성장 시대의 대표 생존 키워드
전영수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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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하다.

 

지금보다 더 세상 물정에 어수룩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제법 규모와 형식을 갖춘 직장인 영어공부 모임에서 결혼제도를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만만치 않은 영어 구사력과 탄탄한 논거로 어쭙잖은 상대는 당차게 물리치는 모습에 호감을 느끼던 중, 기회를 보아 차 한잔의 대화를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결혼이란 개인의 선택이기는 하나 두 집안 간의 새로운 만남이니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필자의 의견과는 달리, 이 동년배 여성의 발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네 가게에서 생필품을 사더라도 유통기한 제조원 영양성분표를 따져보기 마련인데 하물며 그토록 중차대한 인륜지대사를 결정하려면 상대와 동거 기간을 가져보고 난 후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이 당찬 여대 졸업생의 주장을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어물쩍 긍정으로 넘어가고 말았지만, 아무리 동시대를 살더라도 외형적 매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시대를 앞서가던 그의 생각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자신을 발견하였다. 20년도 더 지난 오늘날이야 동거 후 결혼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추세이지만 당시 필자의 생각은 반복 학습의 결과로 대가족을 우선하는 아버지 세대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족 제도의 급격한 세태 변화에 둔감하였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나라는 가정의 결성부터 구성원의 재생산 및 생을 마감하는 단계, 즉 사회 통념상의 순서와 과정이 포함된 생애 주기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 사회구조이자 바람막이로 인식되던 ‘41가구가족 형태가 흔들리면서 행복의 원천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짧은 기간 내에 재정의되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각자도생 출현의 바탕에는 저성장 기조의 사회 분업구조와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 합리적이고 진지한 선택이라는 인식 변화가 한 몫 거들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가족 재구성을 유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례로 혼밥, 혼술, 혼영 등의 용어들은 점점 단세포 화하는 1인 가구 세태를 반영하고 있으며 본인다운자아를 찾아가려는 현대인들의 적극적인 인생 실험으로 해석된다.


 

전체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 사람의 위기가 전체의 위기가 되는 사회구조 취약성의 배경 설명을 시작으로(1) 세대 불문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개인화 추세를 들여다보고(2) 결혼이란 이름의 가족 구성 제도의 급격한 변화상을 말하며(3)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가족 제도의 발전적 해체와 재구성 사례들을 살펴보고 있다(4).

 

저자는 해외의 각자도생 공존법사례들을 제시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가족 제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책의 분량은 적은 편이지만 다양한 인구 통계와 날카로운 세대 분석으로 이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사회학자답게 저명한 학자들과 이론들을 쉽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한편 저자는 각자도생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연령대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청년층 (10~39, 36.4%)

대부분 부모보다 가난해질 미래가 사실상 확정된 최초 세대이다. 돈벌이조차 힘든 현실이므로 졸업-연애-결혼-출산-양육의 표준적인 삶의 경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으며 효도는 본인의 형편이 나아지는 훗날로 연기한다. 부모 세대에 추구하던 산업화 민주화도 끝났으므로 후속 세대인 청년을 설명하는 건 다양화뿐이다.

 

2. 중년층 (40~69, 44%)

고용, 가족, 심리, 질환, 사업의 다섯 가지 위기에 직면하였으며 아무리 평범한 중년이라도 한두 가지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데 한 가지라도 걸리면 나머지로의 전염은 시간문제다. 자녀 양육과 부모 공양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다. 늦은 출산으로 50대에도 사교육비에 휘청이고 독립이 늦는 자녀의 생활비 지원과 부모의 간병 문제를 피할 수 없다.


3. 노년층 (70~ , 10.5%)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유투버 박막례 여사, 시니어 모델 김칠두, 할담비로 불리는 춤꾼 지병수 등의 사례처럼 늙음에 맞서 스스로 인재임을 증명하고 생산성을 증빙함으로써 노년=도전의 새로운 신노년층 등식을 완성하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사회의 흐름은 각자가 행복을 추구하고픈 본능에 충실한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주의가 앞서 발달한 해외 국가들로부터 대한민국이 가장 급진적으로 개인화된 국가라는 평을 듣는 오늘날, 나와 가족의 행복이 보장되어야 사회 전반이 고루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역설을 통해 한국 사회의 행복 실험은 건강한 동시에 적극적이며 확장적임을 엿볼 수 있다.

 

결국, 행복의 추구란 우리는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의 답을 사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려면 경쟁 위주보다 다양성 인정을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성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앞으로 각자도생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실험이 더욱 퍼져나가리라 예측하는 한편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커지기를 열렬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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