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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우리에겐 현재진행형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을 예견했다고 하여 전 세계 역주행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책을 만나보았다. 중국 우한 시 외곽의 RDNA 연구소에서 유출된 높은 치사율의 인공생성 바이러스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2차대전 이후 여전히 세균전 실험과 국비 경쟁 같은 냉전 분위기가 남아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가적 상상의 산물이자 소설 속 설정이며 아무래도 장르의 특성상 흥행을 의식하여 다분히 상업화된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딘 쿤츠라는 걸출한 서스펜스 작가를 이제라도 접하는 계기가 된 점은 고마워할 만하다.
정확히는 1981년에 출간된 이 초기작의 줄거리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불행이 닥치기 전 무려 16회나 동계 산악 야영 여행을 무사고로 이끈 노련한 지도자에게 아들을 딸려 보낸 엄마가 사고 이후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온갖 역경을 헤쳐가게 만드는 모성에 있다. 녹음기, 디스켙과 같은 추억 속의 단어들이 40년의 세월 격차를 알려주는 점 외에는 미국 국내 텔레비전의 드라마 각본으로 기용될 만큼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읽어나가는 속도감 또한 경쾌한 작품이다.
작품 도입부는 야영 지도자와 참가자 전원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들의 시체조차도 확인할 수 없어 갈수록 슬픔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주인공 크리스티나 에반스는 칠판 글씨, 인쇄기의 출력물 및 다양한 신호를 접하고 엄마만의 감각을 통해 생존 사실을 알려오는 아들의 생존을 확신하게 된다. 이혼 이후 절치부심하여 성공한 공연 제작자로 거듭나면서 알게 된 인생의 친구이자 연인인 변호사 앨리엇 스트라이커와 함께 아들의 소재를 찾아 나서면서 서스펜스 장르 특유의 빠르고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줄거리 스포일러 대신(?) 등장인물을 간략히 소개해본다.
크리스티나 에반스 – 대니의 엄마, 이혼녀이자 주인공.
마이클 에반스 – 대니의 아버지이나 이혼남. 판도라 프로젝트의 1호 희생자.
앨리엇 스트라이커 – 육군 정보부 출신의 변호사, 티나의 연인이자 동반자
대니 – 티나의 아들. 인공 바이러스 노출의 생존자이자 피실험 대상
빈센트 – 판도라 프로젝트에 고용된 암살자
알렉산더 – 판도라 프로젝트의 책임자
코로나19는 예견되었다?
South China Morning Post에 의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생물학 무기는 애초 1981년 원전에서는 러시아 지명인 고르키-400으로 명명되었으나 1989년 재출간 시 우한-400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한 것은 사실이나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이러스에 대한 발상은 출처 미상의 SNS에 의한 음모이론이며 중국 당국과 서방세계 과학자들이 극구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2003년 대유행했던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의 사촌격이며 박쥐를 숙주로 하는 이 바이러스의 정확한 출처를 밝히려 애쓰고 있으나, 인간 감염의 전 단계인 중간숙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다른 점?
최근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 후 5일부터 증상이 발전되고 14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본격 발병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주요 사인은 폐 세포 괴사에 의한 호흡곤란이다. 우한-400 바이러스는 노출 즉시 하루 만에 사망하며 주요 사인은 뇌세포 감염에 의한 기능 부전이다. 기저 질환자와 노년층에 집중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치사율은 3~4%인 반면, 우한 바이러스는 100%이며 인체 밖에서는 생존 불가로 설정되어 있다.

옥에 티 지적질?
개인적으로 외국 작품을 접할 때마다 아무래도 번역물이다 보니 번역체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되는데 이 작품의 상황 전개, 심정 표현, 배경 설명 부분의 번역은 상당히 매끄럽다. 그러나 은어와 욕설 또는 명령형이 더 어울릴 듯한 긴급하고 적대적인 상황에서 ~하오, ~했소, ~입니까? 와 같은 어색한 경어체 표현은 서스펜스 장르의 특성을 흐리게 하며 빠른 내용 전개를 따라가는 재미를 떨어트린다. 예컨대, 판사에게 대니의 무덤을 열어 볼 권한을 요청하는 앨리엇과 그를 제거하기 위해 판사가 파견한 비밀경찰 암살자들은 목숨이 오가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격식 차린 공손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그러하다.
독특한 소재?
저자는 현실적인 공포를 초자연적인 현상 속에 녹여내는 독특한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하며, 이 작품에서는 대니에게 투여한 바이러스 주사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염력(psychokinesis)을 액션의 주요 소재로 사용한다.
돋보이는 조연?
최악을 피하되 차악과 공존하는 법을 설파하는 톰비 박사는 의사로서의 생명윤리 의식을 지키려 애쓰는 인물로 그의 인도주의적이고 양심적인 언행은 인상적이다.
차기 흥행작의 모태?
대니의 존재는 이후 등장하여 유명한 생물학적 위협(bio-hazard)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유일 생존자의 항체가 해독제로 쓰이는 플롯을 연상시킨다.
추천사?
서스펜스 장르의 애독자라면 코로나바이러스를 예견했다는 심령술사의 예언서 같은 광고 문구에 현혹되지 마시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매혹적인 저자의 작품 세계에 딱 두 시간만 빠져 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