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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인류 - 메타버스 시대, 게임 지능을 장착하라
김상균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평점 :
- 게임과 요즘 아이들
새 학년 새 학기 첫 시간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해보도록 했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열에 아홉은 꼭 자신이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을 언급하면서 게임에서 만나자는 말로 인사를 맺는다. 이미 학교에서도 친구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새로운 모습의 인물로 나타나 또다시 친구 관계를 맺는다. 같은 남자이고 게임이라면 어릴 때부터 해보았기 때문에 이 녀석들의 게임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요즘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게임의 할아버지 격인 프로그램을 언급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 스스럼없이 게임 친구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들과 대화의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모험심을 채우고, 인공 지능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AI 융합 교육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지 않아도 이들은 이미 다양한 게임을 통해 인공 지능의 세상에 살고 있다. 컴퓨터가 아예 없던 시절을 살던 아날로그 세대와 태어난 직후부터 스마트폰을 쓰며 자란 디지털 세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자란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산업 현장에서 인공 지능을 설계한다면 세상은 또 달라질 수 있다. 배워서 익히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적응력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19세기 건물에서 20세기 교사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응용 도입할 수 있을지 이래저래 고민만 깊어진다.
- 게임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
게임을 좋아하거나 할 줄 아는 사람들은 타인의 게임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게임 세상이라는 대화의 소재를 공유한다. 반대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다. 상대를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정당화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면서 게임은 발전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게으른 사람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일거리라고 말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의 대상을 배척하는 인간의 본능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러한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게임이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욕구를 이해는 하지만 자연히 학교 현장이니 학습권 보호를 위해 마냥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게임의 폭력성 또한 부정적 시각에서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의 내재된 폭력성이 게임 안에서 소비된다는, 다시 말해 게임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해소돼 실제 사회에서 안 좋은 쪽으로 분출될 수도 있는 나쁜 에너지가 상쇄된다는 긍정적인 시각에 공감한다. 한편, 학생들이 어릴수록 프로 게이머와 게임 스트리머가 진로 방향의 대세인데, 학업성적으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 고교에서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맞추어 이들의 진로를 상담해주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 메타버스의 세계
제4차 산업혁명은 이미 진행 중이며 세상은 메타버스로 넘어가고 있다.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가 합쳐진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현실보다 진보된 개념의 3차원 가상 세계로, 경제 활동이 일어나고 사회적 활동이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이다. 이미 익숙해진 사이버스페이스는 1세대 인터넷과 2세대 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3세대인 메타버스로 확장되고 있으며,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머릿말을 합친 GAFA가 세 번째 온라인 물결인 메타버스 시대를 이끄는 주류 기업들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노동의 종말과 노동 시장에서의 도태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오히려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이기도 하다.
메타버스를 자세히 구분하자면 첫째, 포켓몬고 게임처럼 메타버스가 현실의 공간과 상황에 가상의 이미지와 스토리 등을 덧입힌 현실 기반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의 증강현실Augmented Rality. 둘째,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자신의 삶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며 공유하는 세상을 뜻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 셋째, 각종 지도 서비스와 길 찾기, 음식 배달 앱처럼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의 모습과 정보, 구조 등을 가져다 복사하듯 만든 세상인 거울 세상Mirror World. 넷째, 가상세계 현실과는 다른 공간과 시대적 문화적 배경, 등장인물, 사회 제도 등을 디자인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메타버스로 구성된다.

- 게임의 순기능
저자는 또한, 게임 전공자답게 게임의 순기능을 역설한다. 게임을 통해 발생 가능한 상황을 예측하고 함께 고민해 행동 규칙을 만들어 본 경험으로 재난에 훨씬 잘 대처할 것으로 예측한다. 인류 역사에 게임이 없었다면 규칙을 정하고 행동 규범을 정리하는 일에 인류는 지금보다 서툴렀을 것이고 상상력도 물론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과정에 상상력이 총동원되기 때문이며, 게임 세계는 곧 현실과 연결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을 지속시키는 임무-되먹임-보상체계는 거의 모든 게임의 기초적인 구조이다. 뇌 과학적 측면에서 뇌는 지배-자극-균형을 갈망하는 한편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는 탐험-소통-성취 과정에 매력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인간은 성장을 경험하며, 능력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이러한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서도 게임을 찾는 이유는 어떤 이유로든 성취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대해 인정을 받았을 때라고 하니,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컨대 비디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새로운 과제에 더욱 잘 적응한다고 한다. 비디오 게임이 주변의 변화를 더 빨리 감지하도록 두뇌를 훈련시키고, 인공 지능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게임을 하면서 서로 돕는 능력이 향상되며, 게임에서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집중력이 일상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생각의 지도인 메타 인지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아는 것인데, 놀랍게도 게임을 하다 보면 메타적인 시각이 게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한다.
- 게임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게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기업들이 프로 게이머 구단을 거느리며 e-스포츠 대회에 출전한다. 게임 대회로 인한 부가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장래 희망이 프로 게이머라는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게임은 산업 현장도 바꾸고 있다. 제조업체의 조립공정에 투입되는 신입사원을 곁에 두고 일일이 가르치는 대신 튜토리얼 가상 현실로 마치 어린아이가 블록 쌓기를 배우듯 일주일 걸릴 일을 단 두어 시간에 마친다. 일터는 게임이 되고 작업자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된다. 외국의 어느 로봇 제조기업을 인수한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업체가 제작한 광고에는 최신 유행 음악에 맞추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 댄스팀이 등장하는데, 박자에 맞추어 움직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도 자유로이 선보인다. 드라마 웨스트 월드에서는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춘 로봇에게 자아가 생겨나 새로운 인간종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실제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하면 기분이 오싹하다. 게임을 단순한 놀이나 시간 죽이기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너무나 빨리 와 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과연 게임 같은 세상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게임과 더불어 성장하기
마지막으로 저자는 게임의 형식을 수업에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비록 학업성적 위주로 서열이 정해지는 학교이지만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잘하는 것이 다 다를 뿐이라는 얘기를 해 달라고 말한다. 그래야 공부 못하는 아이도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편향된 엘리트 의식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고 가슴 따뜻한 교육자로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전하고 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백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써낼 수 있었던 개인적 경험과 같이, 게임에 쏟아붓던 열정과 관심을 발전적인 특정 주제로 돌려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교육자라면 학생들의 성장 동력을 어느 방향으로 잡아주느냐에 따라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향한 변화의 변곡점을 게임이라는 핵심어로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일독을 권해드린다.
사족 : 이 책에 등장하는 최신 게임 용어가 제법 많은데,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게임용 영어만 따로 모아 단어장을 만들었다는 모 선생님의 일화처럼 부록으로 게임 용어 설명을 곁들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2021.04.15.)

#미래예측 #게임인류 #인공지능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