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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 인생의 판을 바꾸는 무의식의 힘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1년 4월
평점 :
무슨 색깔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보라색이라 답한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질문에 평범한 답변일 수 있습니다. 흔한 심심풀이라면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의사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할 수 있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표지와 속지, 소주제와 강조하고픈 문단이 모두 산뜻한 보라색입니다. 정신 상담을 받는 편안한 의자에 누운 듯 문단의 편집과 구성면에서 눈이 시원하고 집중이 잘 됩니다.
이 책은 제목보다도 ‘인생의 판을 바꾸는 무의식의 힘’이라는 부제에 더 눈길이 갑니다. 인생의 판을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여러 조건과 제약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삶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이를 바꾸는 힘은 의식적 노력보다는 무의식에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수동태였던 ‘내가 모르는 나’를 능동태로 표현하면 ‘내가 숨기고 있던 것들’이 됩니다. 처음 접하는 정신분석의 세계도 생소하지만 이를 전공한 전문의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그래서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쉽게 읽히면서도 수려한 저자의 문체를 접할수록 이러한 선입견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 있는데, 필연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복잡한 관계의 상호작용을 하며 살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얽히고 결국은 구속당하는 모순을 겪습니다. 이에 저자는 상실감, 환상, 자기애, 정체성, 초자아, 열등감, 공격성, 외로움이라는 여덟 가지 인생의 매듭을 잘 풀면 인생의 새로운 판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백 세 인생의 전반부를 지나고도 여전히 나를 잘 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 나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라며 위로 삼아 중얼거려도 봅니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 늘 애쓰는 우리에게 저자는 가슴 따뜻해지는 위로의 말과 함께 세상을 읽는 요령과 살아가는 처세술, 그리고 우리가 미처 원인조차 알지 못했던 마음속 고민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좁은 우리 같은 직장에 몸과 마음이 갇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자양강장제 같은 글입니다.

한편 저자는 흥미롭게도 정신분석학 세계에 몸담은 의사의 여러 현실적 면모 또한 분석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숨긴 것을 꺼내지 못해 결국은 상담에 실패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의 어려움이나 이를 잘 타개하는 연륜이 묻어나는 대응 방법 등을 통해 그 또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시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끝으로, 우리는 재미있는 은유와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여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함으로써 자신을 좀 더 깊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우리가 책을 읽는 순간조차 자신의 안위와 무탈함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움직이는 힘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온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다음에 제시하는 발췌문처럼 통찰력 넘치는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 세계의 탐구를 도와줄 안내서가 필요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여덟 가지 분야별 발췌문>
-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는 ‘코끼리 더듬기’입니다. 코를 만지면 코, 몸통을 만지면 몸통, 꼬리면 만지면 꼬리라고 합니다. 그때그때 기분의 영향을 받습니다. (30쪽. 퇴직하는 이들을 위한 심리학. 상실감)
- 현실만 보는 삶은 메마르고, 환상에만 젖어 있는 삶은 질척거립니다. 환상과 현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삶이 윤택합니다. (78쪽. 대리만족의 달콤함이 영혼을 잠식한다. 환상)
- 지나친 공감은 내 삶은 물론이고 남의 삶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몰입해서 돕다가 남이 사는 방식과 내용을 침해합니다. 나만을 위한 공감이 된다면 상대방 삶의 정체성을 무너뜨립니다. 이념이나 종교를 내세운 공동체에서 이런 문제가 쉽게 자주 생깁니다. (99쪽.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기애)
- 건강한 관계는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세운 두 기둥 위에 같은 지붕을 얹는 것입니다. 두 기둥을 무리하게 가까이 옮기면 건물은 무너집니다. 내 정체성을 존중하는 사람이 진정한 동반자입니다. 무시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사람은 나를 자기의 노예로 만들려는, 자기애의 중독자입니다. (123쪽. 매력 뒤에 숨어 움직이는 자기애)

-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고 서술하는 바를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기억이 얼마나 취약한 기능인지는 이미 밝혀진 바 있습니다. (157쪽. 서술적 진실과 개인사적 진실. 정체성)
- 팔자를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집을 버리고 융통성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181쪽. 고집불통의 껍질을 깨는 힘. 초자아)
- 현실보다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가 큽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불안한 것입니다. (239쪽. 망설임과 신중함. 열등감)
- 블랙리스트의 폐해가 심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위가 잘못되었다면 그것만 책임을 물으면 되는 데 사람 전체를 매장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263쪽. 내 마음속 블랙리스트. 공격성)
- 외로움은 남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고 고독감은 나와 내가 관계를 맺은 상태입니다. (299쪽. 부정적인 외로움, 긍정적인 고독감. 고독감)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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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