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다 보면 심심찮게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곁눈질하게 된다. 젊은 층일수록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특이한 것은 누구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의 저자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견한 빨리 감는콘텐츠 시청 습관은 크게 눈이 뜨이지 않는다. 실제 20대 초반의 자녀들에게 n배속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느냐 물었더니 도리어 왜 그래야 하냐 되물으며 자신들은 강의 동영상 이외에는 정주행을 선호한다고 답한다.

 

일단은 약간의 낭패감부터 맛본다. 젊은 층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행에 민감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인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에서는 매우 일반화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매우 다양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영상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빨리 감기 기능이 제공되기에 가능해 졌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일일이 감상할 여유가 없으며, 정액제로 구독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관행이며, 마음에 드는 강렬한 장면만을 모아 보는 게 피곤한 감정 읽기보다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집중력 없이 대충 보았다 하더라도 한 번 더 보면 그만이고, 영상을 보고 싶다가 아닌 알고 싶다는 자극을 충족하면 또 그만이다. 이들 소비층은 특정 감독이나 작가의 팬이라기보다는 작품의 내용에만 치중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석적인 접근법 보다는 잘못 해석하는 것조차도 관객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개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기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어 그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인터넷에만 연결되면 불가능한 일이 손에 꼽힌다. 음식 주문이나 식당 예약부터 항공기 이용과 여권 발급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소불위다. 모든 것이 편리하니 굳이 불편을 감수해야 할 필요성마저 무뎌진다. 깊고 좁은 전문성에서 넓고 얕은 대중성으로 시대의 척도가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현대적 소비 성향은 리퀴드 소비로 지칭되며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소비되는 기간이 짧고 다음 소비로 금방 이동하며 둘째, 액세스 베이스로 대여나 공유처럼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셋째, 같은 정도의 기능을 얻는다면 물질을 덜 소비한다.

 

각각의 특징에 대하여 아마도 저자는 일본인들의 속성을 잘 발견해 낸 듯한데, 과연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세계적인 사조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 경우와 일치한다는 법은 없을 테지만, 어쨌든 빨리 감기라는 추세의 핵심은 매우 잘 짚어내고 있다. 예컨대 콘텐츠를 구독하거나 소비하는 추세는 분명히 인정할 만하지만, 타인과의 대화에 끼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시험공부 하듯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상물 시청을 빨리 감고 건너뛰는 습관이 현대사회에 나타난 이유로 영상 작품의 과다 공급,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성,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해주는 영상 작품의 증가를 들고 있다. 또한, 원인의 배경으로는 영상 공급 미디어의 다양화 및 증가, SNS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는 흐름을 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일찍이 2000년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서서히 기술적 토양이 준비되어 온 셈이다.

 

저자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습관을 주제로 최근 인류의 생활 양상에 변화를 가져온 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친 데 대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한편, 이는 단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는 해 주었으면 싶은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비록 대동소이한 결과가 예측되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일본과 달리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개인의 취향을 쉽게 무시하지도 않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시간 가성비를 정의로 받아들이는 Z세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프란스 드 발은 평생 유인원, 원숭이, 그리고 영장류 집단과 함께 일해온 영장류 동물학자이다. 자신의 연구 외에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영장류 학자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전 세계 다양한 서식지를 연구한 결과물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영장류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성격, 능력, 활동, 약점, 문화를 발견한다. 영장류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연구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영장류가 다른 많은 종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진실을 알려주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우리 인간종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언어와 몇 가지 다른 지적 이점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 정서적으로는 철저하게 영장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자연은 항상 틀리는 법이 없으며,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들이 현재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환경과 군집에 적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눈에 비친 그들의 차이점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컨대 일부 과학자들은 침팬지들의 공격성을 심하게 비난하는 한편 보노보의 여성성을 비웃기 좋아한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연이 성별에 따라 차이를 부여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수컷에게는 왕성한 에너지와 거친 주거 환경으로, 젊은 암컷에게는 인형, 유아, 아기 돌보기에 대한 이끌림 등으로 나타난다. 이 전형적인 성별 차이는 쥐, , 코끼리에서 고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포유류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뚜렷한 성별 차이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별은 적어도 인간들 사이에서 성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중첩이다. 일반적으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모든 사람에게 양도와 교환이 불가능한 측면이다. 성역할(gender)은 문화적으로 할당되지만, 타고난 성(sex)은 양식으로 할당된다. 그들은 선택할 수도 없고, 비이성적이지도 않고, 치료로도 되돌릴 수 없다. 몸속에 숨은 성 정체성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자연적으로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약물과 수술 등의 외압을 겪어야 한다. 미국만 해도 인구의 약 1%, 즉 최대 2백만 명의 인구가 이 트라우마를 겪는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것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람의 게놈은 성적 지향성을 말해주지 않는다.

 

저자는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장난감 실험에서 어린 수컷들은 항상 밀고 끌 수 있는 바퀴 달린 장난감을 선택하는 반면, 어린 암컷들은 들고, 껴안고, 돌볼 수 있는 인형을 선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 어떤 어린 침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상상 속 장난감을 발명하고 가지고 노는 것이 관찰된다. 이것이 상상력을 지닌 영장류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아기들이 부모가 원하는 어떤 성별로도 성형될 수 있는 빈 서판(tabula rasa)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어 한다. 지속적인 훈련, 디프로그래밍, 호르몬 치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으며, 그와는 다르게 믿었던 사람들의 사례로부터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아이들에게 성별 선호도에 따른 장난감을 강요하거나 성별을 의식한 장난감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는 장난감 가게의 성별 구분법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존중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염원한다.

 

유인원은 인간 못지않게 본능적이지만 본능 역시 학습이 필요하다. 영장류는 상대를 평가하고, 성격을 가정하고, 필요에 따라 상대를 조종하는 오랜 학습 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만큼 계산적이고 정치적이다. 예컨대 모성애의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측면은 선천적인 것이 아닌 학습의 결과이다. 나이 든 암컷들은 어린 암컷들이 유능한 엄마가 되도록 훈련하며, 공동체는 이들을 돕는다. 저자는 무리와 격리되어 성장함으로써 자연히 유능한 돌보미가 되지 못했던 침팬지의 예를 들면서, 출산과 육아 과정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빠 침팬지의 경우, 새끼의 출생은 그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증가시키고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켜 육아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실험 결과, 암컷과 한 방에 있을 때 수컷은 암컷에게 거의 전적으로 양육을 맡기지만, 암컷이 없는 상태의 새끼들과 함께 있을 때는 수컷이 양육 의무를 자동으로 대신하게 된다. 저자는 이것이 우리 종의 생물학적 특성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의 세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속임수가 일어난다. 질투, 권력 암투, 훈련, 양육, 자리매김, 그리고 섹스가 있으며 순서는 상관없다. 콩고강 건너에 사는 침팬지의 사촌인 보노보는 훨씬 덜 호전적인 사회로 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침팬지가 싸우는 곳에서 보노보는 짝짓기를 한다. 이들은 비교적 주의 깊고, 책임감이 있으며, 공동으로 양육하고, 위계적이다. 바람기가 더 많고 짝짓기에 훨씬 더 적극적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침팬지 무리는 알파 수컷이 이끄는 반면 보노보 무리는 알파 암컷이 이끈다. 알파 수컷이 젊고, 강하고, 모험심이 많다면 알파 암컷은 나이가 많고, 현명하고, 인기가 있다. 알파 수컷이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협적으로 무리를 통치하는 반면, 알파 암컷은 암수 모두에게 완전한 존경을 받으며, 평생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무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느냐, 아니면 동맹을 맺느냐 극명한 방법상의 차이를 보인다.

 

포유동물들 사이의 성의 진정한 기능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유인원, 고양이, 고래, 설치류 중 어느 종도 그것이 알을 수정시키는 정자를 옮겨 임신과 신생아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인간조차도 이 과정을 알고 후대에 교육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짝짓기의 일차적 의미는 집단의 번식을 위한 추진력이다. 만약 동물이 그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면, 매번 의식적으로 성관계를 하려 노력할지도 모른다.

 

보노보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짝짓기는 집단 전체를 위한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보노보는 하루에도 수없이 갖은 방법으로 섹스를 하는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의도적인 생식 이외의 모든 성행위를 억제하려는 것은 오직 인간의 종교뿐이다. 동물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저자는 섹슈얼리티가 다른 영역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헌신과 분노로 지켜지는 금단의 열매라고 말한다.

 

알파 수컷의 암컷에 대한 지배적인 소유권에도 불구하고, 암컷들은 다수의 파트너를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많은 수컷은 최근 몇 달 동안 암컷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자신이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이는 수컷이 잠재적 경쟁자가 될지 모를 영아 살해를 방지하고 다른 수컷이 곁에 있을 때 흥분을 진정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암컷에게 훌륭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왜냐하면 다른 수컷과 함께 있는 순간을 알파 수컷에게 들킨다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 사회에서 강간과 같은 매우 구체적인 행동이 유전되기에는 인간 종이 너무 느슨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강간은 상황의 결과이며 인간 남성에게 내재한 본성이 아니므로 남자들을 잠재적 강간범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연 선택이 강간을 선호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남성은 자신을 성적 포식자로 만드는 유전자 코드를 가져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강간범들은 그들의 유전자를 퍼뜨리려고 해야 할 터인데,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강간은 이제 일반적으로 생식이 아닌 폭력 행위로 평가된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동성애자 강간은 분명히 생식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이 모든 질문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조상들을 방문할 것이고, 요술 거울이 말해주지 않는 한두 가지 요령을 배울 것이다. 성과 성별은 엄연히 다르면서도 한편으로 평등하다. 이들은 삶에서 맡아야 할 특정한 역할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연성이 매우 제한되거나 역할이 중첩되기도 한다. , 그럼 성과 성별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저자가 이처럼 다루기 까다롭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 데 대해 우선 찬사를 보낸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발견물 세 가지를 추려본다.

 

첫째, 신중한 정량 분석의 결과 유인원 무리는 생각처럼 수컷이 이끄는 것이 아니며 암컷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암컷과 수컷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수컷은 체격이 크고 힘이 세 물리적 우위를 차지하는 반면 암컷은 정치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다.

 

둘째, 알파 수컷은 가장 크고 강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장 비열하지 않다. 오히려 알파 수컷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관대함과 친구나 친척을 편애하지 않는 공평함을 보여준다.

 

셋째, 과거 우리의 유인원 조상대한 대중적인 설명은 공격적이고 크고 시끄러운 수컷이 특징인 침팬지 사회에 치중되었으며, 평화로운 암컷이 주도하는 보노보 사회를 무시해왔다. 인간은 이들 두 집단과 거의 동등하게 가까운 사이이며, 진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도록 이끌어온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성은 생물학에 의해 주도된다. 거의 예외 없이 우리는 한 가지 성으로 태어나며, 성별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없고 잘 확립된 해부학적, 생리학적, 호르몬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반면, 성별은 더 복잡하고, 심리적이고 사회적이다. 성별은 한 성별 또는 다른 성별과 동일시하는 주관적 경험이나 성별이 사회에서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적 역할과 행동을 모두 지칭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질문은 성 역할과 경험이 생물학 대 문화(유전학 대 환경)에 의해 어느 정도 형성되는지이다. 여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어느 한쪽의 상대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우리가 아마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어느 방향으로든 극단적인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전적으로 생물학적 판단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주로 생물학으로 유리한 사회 역학을 합법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도 완전히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며, 각 성의 선천적 선호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천적인 차이점들은 무엇이며, 문화가 아닌 생물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어떤 행동이 선천적이며 생물학에 의해 주도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러한 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첫 번째는 행동적 보편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인간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문화인류학). 두 번째는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유아와 어린이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다(발달 심리학). 세 번째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영장류 동물학)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들 행동 평가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문화적 변형에 더 저항적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분명히 세 번째 접근법을 선호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방법을 어느 정도 활용하며, 동시에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생물학이 주도하는 성별들 사이에 사실 몇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꽤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첫째, 저자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도덕적 실패를 정당화하거나 여성 혐오에 관여하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생물학적 경향이나 선호가 사회의 특정 부분에 불공평한 불이익을 줄 때 이러한 경향이 우리의 생물학적 경향이나 선호도를 무시할 수 있고, 종종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물학의 포로가 아니며, 우리의 철학적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할 수 없으며, 또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특히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 대한 예속과 관련될 때는 더욱 그렇다.

 

둘째, 그는 영장류 행동에 대한 최근의 이해는 특히 보노보에서 여성들에게 더 두드러진 역할을 보여주며, 남성 우위의 인간 문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체로 사회적 구성이라고 지적한다. 침팬지가 남성 지배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여성 지배적이고, 평화롭고, 성적으로 자유로운 보노보들과 그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때 이 집단을 인간 행동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셋째, 저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유형이라고 묘사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그리고 어떤 직업에서는 남성들보다 더 잘하며 동등한 기회와 급여를 줘야 하지만, 그것이 일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추측하듯 남자들이 본질적으로 사악하고 열등하거나 혹은 서열이 낮아서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백인 남성이 사회에서 지위나 지위를 잃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성보다 우월하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성별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비록 이 책이 성과 성별에 대한 우리의 다양한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동물 사촌들의 재미있고, 따뜻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유산과 수유 부족으로 깊은 우울증을 겪고, 무리로부터 뒤처진 암컷 침팬지에게 젖 먹이는 법을 가르친 결과 성공적이고 헌신적인 엄마가 되게 하였다. 그는 또한 아무 연고가 없는 암컷들의 2차 자매결연이 보노보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준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알파 암컷 지도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리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의 차이를 새롭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성애자는 0점을 주고 동성애자는 6점을 주는 킨제이 성적 지향 척도에 대한 독자의 견해가 어떻든 간에, 모든 보노보가 완벽한 3점을 받으리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끝으로, 이 책의 묘미는 한번 읽게 되면 우리 종족을 더 이상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유전적, 호르몬적, 문화적으로 추동됐는지를 알게 되고, 우리의 현재 지식 상태를 생각하면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자연의 질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분명하며, 충분히 용감한 독자라면 밑천이 마르지 않는 토론의 소재로 두 팔 들어 환영해줄 것 같다

 

#과학 #차이에관한생각 #프란시스드발 #세종 #영장류동물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성에 대하여 우월하다는 오해는 넣어두길 권하는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자가 꿈이지만 돈 공부는 처음입니다 - 부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돈의 시그널을 읽는 법
윤석천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자 같은 유리 지갑 월급쟁이라면 응당 (매일) 한 번 정도는 부자가 되는 꿈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월급 통장을 볼 때마다 난 언제나 돈 걱정 좀 안 하고 사나 한숨만 쉬지 않으시는지. 그렇게 늘 재정적 압박에서 벗어나는 꿈을 꾸면서도 막상 부자가 되고픈 꿈을 야무지게 가져보거나 제대로 된 부자의 개념이나 정의를 돌아보지 않는 이는 비단 나뿐만은 아닐 듯하다. 갖고 싶은 것 다 가져보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돈 걱정하지 않는 상태를 경제적 자유라고들 하는데, 일견 동의하면서도 이거야말로 유일한 부자의 정의는 아닐 것이라 자신을 위로하면서.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 자신의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겁니다. 경제적 자유는 독립적 인간이 되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공부를 하며 자신만의 원칙을 세운 독립적 투자자가 마침내 성공합니다. (55)

 

우리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감당하면서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마주한다. 별다른 과소비는 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돈 쓰는 습관이 잘못 들어 그리되었다고 이따금 자신을 옹호해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용카드 사용금액 결제와 주택담보 대출이자를 갚느라 살아온 달품팔이 신세가 벌써 30년을 넘어간다. 오랜 세월 잘도 버텨온 건 참으로 용하지만, 살림살이 좀 나아질 법도 한데 수입은 일정하고 돈 쓸 일은 늘 줄을 선다. 몸이 아프거나 다쳐서, 혹은 불시에 구조조정이라도 당해 수입에 지장이 생긴다면 이런 날벼락이 따로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노동 수입 이외의 자본을 확보할 줄 모른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카던데. 그래도 어떻게든 근근이 버텨왔다는 것으로 다시금 자신을 변론해본다.

 

인내심은 현명한 투자자의 가장 큰 덕목입니다. 시장을 맥없이 주종하는 투자자와 자신이 원하는 가격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투자자 중 누가 성공할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124)

 

사실, 돈에 관한 감각이 영 젬병인 자신을 느낄 때마다 자본에 대해 어찌 이리도 무지할 수 있나 후회스러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바로 진출한다는 전제하에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돈 공부와 노사관계 등 사회생활의 기초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려서 돈 공부를 제대로 했더라면 직장생활 초기부터 착실히 자금을 모았을 터이고 그런 세월을 수십 년 반복했다면 투자가 가능한 종잣돈이 아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못한 지금은 수입이 지출을 초과해서 수중에 돈이 넘쳐나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행복한 비명을 질러보고픈 욕구에 늘 시달린다. 진정 나는 돈과는 인연이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모든 시장이 그렇듯 가상자산시장 역시 준비가 되지 않은 투자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투자 세계에서 모두가 돈을 버는 시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준비하고 공부한 자에게만 수익을 줍니다. 최소한 이것만 기억해도 실패의 빈도와 정도를 줄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55)

 

가장 기본적으로 돈을 대하는 자세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투자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시도해 볼 마음이 들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필요한 내용을 배울 수 있어 고마운 마음과 함께 돈을 대하는 자기 민낯을 발견한다. 투자가 시대정신이 된 현대사회에 살면서 투자는커녕 한 달 버텨내는 최소한의 요령만 겨우 터득했을 뿐인 자신을 확인하기도 한다. 20대 후반 사회에 진출한 이후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노동 수입으로 생계를 보장받아왔으나 그 보장된 기한의 끝이 뻔히 보이는 시점에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부양, 자녀의 학업과 혼사,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과 대책 없는 노후 등 건너야 할 출렁다리가 곳곳에 널렸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금니 악물고 체중 감량을 위해 운동하듯 없는 돈을 쥐어짜 투자에 필요한 종잣돈부터 마련해야 하나 싶은 중압감도 다가온다.

 

빚은 오히려 부자들에게 좋은 무기가 됩니다. 서민들은 충분히 좋은 투자 기회가 있더라도 종잣돈이 없거나 빚을 낼 수 없어 포기하게 되죠. 반면, 부자들은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때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들이 돈을 쉽게 불려나가는 이유입니다. (194)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이유야 무엇이든 여의찮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이 책으로 투자 실행을 위한 돈 공부부터 시작할밖에. 결국, 이 책은 투자의 경험이 없는 독자라면 실전을 대비한 마음의 준비서가 될 것이고, 한 번 투자했다 낭패를 본 독자라면 두 번째 실수를 막아줄 뼈아픈 반성문이 될 것 같다. 나는 돈에 젬병이더라도 이제 갓 성인이 된 내 자녀에게 반드시 권해주고픈 돈 공부 입문서로 추천해 드린다. (2022-11-03)

 

#부자가꿈이지만돈공부는처음입니다 #윤석천 #갈매나무 #경제평론가 #재테크 #투자 #주식 #투자입문서 ##독서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석과 참고 문헌만 150쪽이 넘고 본문은 600쪽이 넘는다. 대학교 한 학기 교재처럼 두꺼운 이 벽돌 책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왜 유럽은 인류 역사상 그토록 큰 역할을 했을까?“ 하버드 대학의 인류 진화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 조지프 헨릭은 그의 최근 저서인 이 책에서 색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는 인류학자로서 경력을 쌓아왔지만, 현재는 문화 진화론자라고 소개한다. 다윈이 그의 진화론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자연 선택을 통해 적응의 경로를 따르는지를 설명하였듯, 문화적 진화도 수많은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인간의 단일한 문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문화적 진화가 인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세대를 초월하는 깊은 이해와 가치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적 진화의 중심에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관계와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기 자신, 다시 말해 자신의 특성, 성취, 열망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이고자 하며 다른 사람의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유연함이 아니라 위선으로 여긴다. 동료나 권위적인 인물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자신의 믿음이나 관찰, 선호와 상충될 때면 좀처럼 남들에게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공간과 시간을 가로질러 펼쳐진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한 하나의 구성원이 아니라 독특한 존재라고 여긴다. 또한 행동할 때 자신이 통제하고 선택한다는 느낌을 선호한다. 이들의 특징은 현재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도 상당 부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정보통신의 발달 덕분에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이 이상한 가치들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 결정되고 구체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시사하듯, 그는 능력주의, 대의 정부, 신뢰, 혁신, 심지어 인내와 자제 같은 현대 세계의 많은 핵심 가치를 이상한문화 진화의 펌웨어(하위 실행 프로그램)’라 믿는다. 이들은 매우 특이한 유럽적인 환경의 산물일 뿐 아니라, 기독교 교회가 내렸던 처방과 단절은 좁은 범위에서의 권력의 산물이다.

 

우리는 교회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는 범위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했는가에 관한 이 책의 흥미로운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주제는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 ,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같은 인기 도서와 대등한 위치에 오를 만하다. 하라리의 질문은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을까?’였다. 다이아몬드의 질문은 문명 간의 차이와 불평등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각각의 답변은 협력, 그리고 지리, 기후, 동식물로 대표되는 환경이다. 이제 조지프 헨릭은 특히 서구 세계가 다른 사회들보다 더 번영하는 이유와 그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문화의 진화라고 답변한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는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인다. 하버드대 인류진화 생물학부를 총괄하는 저자는 문화진화 이론가인데, 이는 그가 전통적인 생물학자들이 유전학자들에게 주는 것과 동등한 무게를 문화유산에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 세대는 그들의 DNA를 자손에게 물려주면서 다른 영향력 있는 역할 모델인 기술, 지식, 가치, 도구, 습관도 함께 전달한다.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천재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화를 배우고 축적한다는 것이다. 유전자만으로는 한 집단이 오래 살아남을지 사라질지를 결정할 수 없다. 문화유산은 선대 문명의 정신, 습관, 제도 등을 후대에 이어주는 연결통로인 셈이다.

 


서기 1500년경부터 서구가 유난히 우세해졌는데, 그 이유는 서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난 5세기 동안의 놀라운 지적, 기술적, 정치적 진보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온 서양의 특징은 무엇일까? 고대 말기의 유럽인들은 세계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부족 사회를 이루고 살았으나, 교회의 등장으로 인해 친족 기반 사회가 해체되었다. 아마도 저자는 서구의 오만을 과소평가하면서 특수성을 설명하기가 까다로웠을 것이다. 그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이론은 인류가 처한 피할 수 없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 종족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적인 제도 중 하나인 친족관계(pair-bonding, 친족 이타주의)는 원초적 본능에 기초한 것으로, 결혼 상대와 배우자의 수가 규칙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 구조였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결혼은 일반적으로 가족의 개념과 인접해 있었다. 사촌 간 결혼이라는 행위는 친족간의 유대감을 돈독히 했다. 대개 아버지를 통해 이어지는 혈통은 또한 씨족을 공고히 하며 재산의 축적과 세대 간 이전을 용이하게 했다. 종교뿐 아니라 정부와 군대 등 상위 기관들은 친족 기반 기관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다. 혈족에서 부족, 족장 왕국, 왕국으로 규모가 확장되면서도 그들은 과거로부터 탈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형태의 관계, 결혼, 혈통 위에 새롭고 더 복잡한 사회를 계층화했다. 각 문화의 독특한 풍미는 초기 친족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저자가 명명한 결혼 가족 강령은 사실은 결혼과 가족에 반대하며 친족 기반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다. 이쯤에서 교회가 결혼 가족 강령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묻게 된다. 문화 진화적 관점에서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으나 저자는 결혼 가족 강령이 제대로 작동하고 진화, 확산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공동체를 떠났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기독교의 고집은 확장된 가정을 핵가족으로 갈라놓았다. 교회가 뿌리 뽑은 수평적, 관계적 정체성은 제도 자체를 지향하는 수직적 정체성으로 대체되었다. 교회는 결혼 정책에 대해 엄격했다. 신도가 규칙을 위반하면 성찬식을 미루거나 파문하기도 했으며, 불법을 저지른 자손은 상속이 거부되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예전 같으면 거의 항상 가족 구성원에게 돌아갔던 재산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동시에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하도록 유도하고 그 대가로 천국에서 그들의 위치를 보장받도록 촉구하였다. 이렇게 하여 결혼 가족 강령은 사람들의 충성을 얻고 주요 경쟁자를 제거함과 동시에 수익의 흐름을 창출하고 있었다. 그 결과 교회는 풍요로워졌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뿌리에서부터 느슨해져 친분 없는 이방인들로 북적이는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소위 비인격적 친사회성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도시 헌장을 쓰고 전문 길드를 만들었으며 오늘날 보편화된 대의 민주주의의 초기 형태로 지도자들을 선출했다. 상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거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새로운 여건에서 상거래에 성공하려면 좋은 평판이 필요했고, 이는 공정성과 같은 새로운 규범을 수반했다. 낯선 사람을 속이고 친척에게 호의를 베풀어 성공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개신교가 생겨났을 때, 사람들은 이미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내재화했다. 저자가 가장 이상한 종교라고 부르는 개신교는 앞서 가톨릭교회가 시작한 가족 해체 과정에 부양책을 제공한다. 신앙이 교리에 집착하기보다는 개인적 투쟁을 수반한다는 생각은 종교개혁에 필수적이었다. 성경의 자국어 번역은 사람들이 성경을 좀 더 특이하게 해석할 여지를 주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는 곧 읽고 쓰는 능력과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그 후 하나님이 주신 자연(개인) 권리와 입헌 민주주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정치 조직의 법칙을 밝혀내려는 노력은 자연법칙, 즉 과학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적 방법은 세계를 분류하는 인식론적 규범을 범주로 성문화하고 추상적 원칙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심리·사회적 변화는 전례 없는 혁신, 산업 혁명, 경제 성장을 촉진했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저자와 동료들의 기여가 상당한 인류학, 이문화 심리학 등 역사 이외 많은 분야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친족 강도 지수는 가톨릭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에 사람들이 노출된 기간과 이상한특징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기별로 교회에 노출된 정도에 따라 사촌 간 결혼 비율은 거의 60%까지 감소한다. 또한 결혼 가족 강령에 천년 넘게 노출된 지역에서는 친구를 위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30% 낮다. 이 현상은 이탈리아의 수수께끼라고 불린다. 오랫동안 가톨릭교회에 노출된 북부 이탈리아는 금융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이슬람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남부 이탈리아는 북부보다 사촌 간 결혼이 10배나 높다. 헌혈자와 헌혈량도 북쪽이 현저히 많다. 유럽이 처음으로 법전을 편찬하는 동안, 중국은 친척 이외에 대해 저지른 범죄를 친척에 대한 범죄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어른이 저지른 범죄에는 엄격한 처벌이 유보되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중국의 아버지들은 아들을 죽이고도 경고 처분만을 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귀족 살해에 대한 처벌은 엄격했다. 이와 같은 처벌의 비대칭성은 유교적 원칙과 연장자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될 수 있었다.

 

저자의 가장 놀라운 주장은 이상한사람들의 이상한 인지 방식이다. 이들은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고 분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더 분석적이다. 그에 비해 친족 집약적 문화권 사람들은 더 총체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범주보다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Triad Task로 알려진 실험에서 피험자에게는 토끼, 당근, 고양이의 세 가지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실험의 목표는 목표 객체인 토끼를 두 번째 객체와 연결하는 것이다. 고양이와 토끼를 일치시키는 사람은 두 객체가 동물이라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토끼와 당근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토끼의 먹이가 당근이라는 점을 근거로 물체 사이의 관계를 찾는다. 한편, 이와 유사한 실험에서 칠레 원주민 마푸체(Mapuche)족은 개와 돼지를 일치시킨다. 그들의 환경에서는 개가 돼지를 보호하므로 완벽하게 말이 된다. 돼지를 보호하는 개와 함께 자라지 않은 서양의 대학생에게 개와 돼지는 그저 같은 동물일 뿐이다. 이는 문화가 피실험자의 근본적으로 다른 인지적 굴절이나 개인적 경험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좋은 사례다.

 

유럽 사회가 발전하는 데 기독교가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어느 역사가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교회의 관점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독교가 적어도 중세부터 사촌 간 결혼에 대해 유난히 적대적이었음을 지적한다. 이는 유럽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 조직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왔다. 인류학자들을 항상 매료시키는 용어인 친족관계는 이 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친족관계는 공동체의 내부 결속을 유도하는 한편 특정 씨족 외부인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자세를 갖게 하였다.

 

저자는 서기 1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교회가 유럽 내 혈연관계를 크게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사촌 간 결혼에 대한 금지가 가족 이외의 결혼을 강요했던 유럽 지역에서, ‘이상한문화는 이방인들에게 더욱 수용적이었다. 수도원, 대학, 무역 조합, 법원, 주식 시장, 입법부, 커피점, 신문 등은 기업, 신뢰, 이동성과 함께 결혼에 대한 교회의 칙령에 따라 만들어진 비인격적 친사회성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한편, 같은 유럽 지역의 이상한사람들이 아닌 외부인들은 천연자원과 강한 지역 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반면, 사회 발전의 토대가 된 역동성과 개방성이 부족한 상태를 이어갔다. 역사학자들은 이 지점에서 논쟁거리가 많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들은 중세 시대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효과가 시공간적으로 매우 불균등했음을 지적하면서, 당시 개신교 교회가 경쟁 관계였던 가톨릭보다 사촌 간 결혼에 훨씬 덜 적대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종교개혁은 헨리 8세가 전처의 사촌과 결혼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결정적인 힘을 얻었다. 현대 역사가들은 사촌 간 결혼이 19세기에 다시 오명을 얻기 전에 17세기와 18세기 많은 유럽 사회에서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혁신에 대한 이상한열정에도 불구하고 찰스 다윈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유명 인사들이 사촌들과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독자들은 유럽 문화의 진화를 다루는 이 책이 제국주의, 환경 재앙, 개인주의, 식민지 지배 등 유럽 제국들이 저지른 흑역사는 어째서 거의 다루지 않느냐 지적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노예제도, 인종차별, 약탈, 대량 학살 외에도 위에 나열한 주제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지만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음을 인정한다. 사실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은 이미 수없이 출간되었다. 그런데도 그의 주장이 희석되어 보이는 것은 위어드가 문화의 아바타로서 수용과 번영, 혁신의 키워드로 제시되는 한편 유럽인들이 유럽 밖 세상으로 모험을 떠날 때 비인격적 친사회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에 의해 숙청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친족주의가 유럽인들의 새로운 인종 이론에서 제국의 폭력과 파괴로 다시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위어드의 주인공인 유럽 백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수억 명 비유럽인들의 재능과 미래를 무시해온 전력을 기억할 것이다.

 

이상한사회에 정착한 비유럽인들, 즉 이민자들의 경우를 보자. 수 세기 동안 모든 인간 지식의 영역에서 이질적 문화 간 사고에 적응한 그들은 나름의 생각과 관행을 가지고 있다. 저자에게 이런 과정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민자의 경험을 정의하는 동화와 융합의 형태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대신, 그는 대륙과 세대를 초월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이상하지 않은사고가 지속되고 있다는 모종의 증거를 제시한다. 영국으로 이주한 파키스탄 이민 2세들의 높은 사촌 간 결혼율과 유럽 전역의 유색인종 이민 2세들의 저조한 정치적 활동성을 언급하면서, ‘이상한사회에서 성장하더라도 문화-심리적 혈통의 암흑 물질을 없앨 수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저자가 위어드에게 주목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기독교 성서를 읽는 데 필요했던 문해력이다. 수 세기에 걸친 문화의 변화는 인류의 뇌 구조와 행동을 변화시켰고, 그 결과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특히 당시 서양인들에게 주요하고 결정적인 활동이 되었다. 같은 유럽이라도 기독교가 뒤늦게 전파된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심리학자들은 서양인들(주로 대학생들)을 인간 본성에 관한 학문과 결론에 대한 표준으로 매우 심하게 편향적으로 사용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리학과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가 나섰다. 서양 사람들은 인간 사회, 문화, 심리학의 표준이 아닐뿐더러 그냥 이상할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믿음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그의 유명한 95개 논문을 전달한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개신교 개혁의 폭발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기 시작했다.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같은 지역에 걸쳐 개신교가 확산하면서 문해력을 갖춘 인구가 급증했다. 영원한 구원에 동기부여를 받은 부모와 지도자들은 아이들에게 읽기 능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따라서 저자의 논제는 문화의 변화가 우리 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문화의 변화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이런 방식을 문화와 두뇌의 공진화(共進化)라고 설명한다.

 



서구 특유의 문화적 변화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친족과 부족 사회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속도로 증명되었다. 다시 말해, 중세 가톨릭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은 사촌 간 결혼을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정착시킴으로써 기존 서구인들의 정신을 친족 관계로부터 해방시켰으며, 문맹 퇴치에 기반을 둔 독립, 이동, 교육, 기업가정신, 혁신의 길을 걷게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는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인간의 심리적, 문화적 발전에 대한 진화적 견해에 몰두하는 한편, 때때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다소 많은 내용을 가정하기도 한다. 원시 종교가 친족과 부족 사회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양을 할애한 이후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아마도 다음 단계로는 종교의 발전을 다루지 않을까 싶다.

 

교회 평의회는 역사적으로 많은 토론, 성경 검색, 기도, 문서의 초안 작성 및 재작성 등의 일을 담당했다. 저자는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진화 과정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많은 기독교인이 동의하는 것으로 진화는 곧 사회적, 문화적이란 말로 대체된다. 이처럼 평의회 문서와 기독교 역사의 전체 기록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기독교가 현재의 유럽 세상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다른 많은 방법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문화적 진화론은 다른 모든 결정론만큼 강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조상을 둔 유럽 사람들에게 그들이 현재 보유한 전 지구적 주도권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많은 자발적 비적합주의자를 낳았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의 호기심 많은 역사는 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사회과학적으로 중립을 고수하는 저자의 활약은 일부 서구인들의 죄책감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상한사람들의 특성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 어느 사람이든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다고 말한다.

 

두껍고 인상적이며 흥미로운 주제의 이 책은 광범위한 분야의 학자들에게도 알려져야 한다. 역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교회 역사학자, 심리학자, 문화 역사학자, 교육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많은 생각을 할 것 같다. 서구 사회가 어떻게 승리의 역사를 써왔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 세계를 다른 모든 문화에 비해 뚜렷하게 달리 보이게 만든 단 하나의 열쇠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야기는 매혹적이고 유용하며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분량도 방대하지만, 대단히 매혹적이기도 하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유럽 사회에 미친 기독교 신앙의 영향력과 해당 민족에게 축적된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이익에 대한 긍정적인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일독을 넘어 필독을 권해드린다.

 

#위어드 #인문 #문화적진화 #21세기북스 #진화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