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 나다움과 교사다움 그 사이에서
강은우 외 지음 / 에듀니티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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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요즘 샘들의 안부가 궁금하네요 읽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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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바이러스 - 잊혀졌던 아군, 파지 이야기
Tom Ireland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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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실린이 발견되기 10여 년 전인 1910년대, 자칭 미생물학자 펠릭스 드허렐르는 실험실에서 설사를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배양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인지, 벨기에인인지, 캐나다인인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신분이 불확실한 과학자였던 그는 멕시코의 골칫거리 메뚜기떼를 전염시켜 박멸할 수 있기를 원했다. 치명적인 미생물 수프를 배양하던 중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박테리아가 만든 얇은 막 중 하나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구멍을 낸 것이었다. 그는 그 구멍에서 샘플을 채취하여 다른 박테리아 접시에 뿌렸고 같은 효과를 얻었다. 구멍은 더 늘어났다. 분명 그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체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범인은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바이러스의 일종인 파지(phage)였다. 이 책은 종종 무시되어 왔지만 엄청나게 풍부한 파지에 대한 다채로운 구원 이야기이며, 과학자들이 2050년까지 연간 최대 천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할 것으로 추정하는 항생제 내성의 실존적 위협을 잠재울 수 있는 파지의 잠재력을 말하고 있다.


드허렐르와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파지는 콜레라 퇴치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페니실린을 상용화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항생제 시대'가 열리자 유럽과 미국에서는 파지 치료법이 돌팔이로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파지와 달리 항생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틀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본가들은 특허를 좋아한다. 특허 제도의 재미있는 점은 자연물 전체에 특허를 줄 수는 없지만, 그 부산물을 추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특허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곰팡이의 분비물인 최초의 항생제는 전체 바이러스인 파지보다 미국에서 특허받기가 더 쉬웠다.


초기 미생물학자들은 종종 한 환자에게서 파지를 채취하여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투여했지만, 다른 모든 가능한 오염 물질로부터 착한 바이러스를 분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없었다. 또한 파지는 특정 종의 박테리아에만 효과적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병원균을 공격할 수 있는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보다 효과가 떨어졌다. 특히 강대국들의 경쟁으로 서구의 페니실린 생산 방법이 냉전의 비밀이 된 후, 소련에서는 이데올로기적 악감정으로 인해 파지 치료법이 더 좋은 평판을 얻었다.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는 파지 물약이 번성했는데, 드허렐르의 연구 덕분에 연구자들이 국영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스탈린그라드 포위 공격 중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훔쳐 온 독일군 시체에서 채취한 파지가 소련군이 나치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파지는 서양 일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파지의 영부인'이라 불리는 생물학자 베티 커터(Betty Kutter)는 워싱턴주 올림피아에 있는 파지 머리 모양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1996년 트빌리시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커터는 디스커버(Discover) 잡지의 기자에게 소련식 파지 치료의 효과를 극찬했다. 이 치료법은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조지아는 절망에 빠진 미국과 서유럽 감염 환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이 연구소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수백 명의 파지 과학자들이 파지 머리 조형물이 거리에 늘어선 트빌리시에서 학회를 열기 위해 모인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파지 치료는 여전히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지만, 과학자들은 파지 칵테일을 정제하는 데 더 능숙해졌고 파지의 운명은 반전되었다.


파지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저자는 특정 박테리아 병원균과 싸우기 위해 파지를 신중하게 조합했을 때 놀라운 의료 사례와 기적의 치료법을 설명하면서 파지 치료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에서 지구상 최악의 박테리아로 지정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에 감염된 남편을 위해 파지 치료를 받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역학자인 아내 스테파니 스트라스디가 쓴 책 '완벽한 포식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 소개한다. 2015년 캘리포니아의 한 정신과 의사가 이집트로 휴가를 떠났다가 이 초강력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돌아왔는데, 파지 치료가 그의 생명을 구했고 이 시련을 다룬 책이 출간되면서 파지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박테리오파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하고 다양한 생명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는 토양, 공기, 물 등 박테리아나 고세균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닷물 한 티스푼에는 수백만 개의 박테리오파지가 포함되어 있다. “빛의 파장보다 더 작은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 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침입하여 자신을 미친 듯이 복제하고, 그 구성 요소가 자발적으로 새로운 입자를 스스로 조립한 다음, 종종 폭발적으로 빠져나가며 그 과정에서 박테리아 숙주 세포를 죽인다.


지구상에는 박테리아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박테리오파지가 '착한 바이러스'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 개체군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익한 박테리아와 유해한 박테리아의 성장을 모두 조절할 수 있어 항생제 내성 균주를 퇴치할 수 있는 유망한 후보이다. 러시아는 1920년대부터 파지 요법을 활용해 왔는데 긍정적인 측면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이외의 국가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좋은 질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치료법은 제약 회사가 행정기관으로부터 특허를 낼 수 없으므로 이를 추구할 유인책이 거의 없다. 또한 1회 생산량이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FDA는 이를 승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인체와 세상의 설계는 놀랍도록 닮아서 견제와 균형 기능이 내장되어 있으며 우리는 이를 활용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째, 파지 요법과 같은 간단한 치료법은 그 효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집중적으로 판매되는 새로운 의약품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파지가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00년대 말, 과학자들은 액체를 여과하여 모든 박테리아를 제거할 때 여과된 액체가 박테리아 배양액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연구자들은 여과된 액체에 너무 작아서 광학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개체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곧이어 과학자들은 구소련, 중부 유럽 전역, 프랑스에서 이 여과 액체를 항균 치료제로 사용하였고 1930년대에 항생제가 발견되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20세기 초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는 파지에 열광했고, 파지 치료는 어디에나 있었다.”라고 과학 작가인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도 항생제 생산에 드는 높은 비용 때문에 폴란드 브로츠와프, 러시아 일부 지역, 특히 조지아에서는 수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파지 요법'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파지 요법이 항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파지는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일부는 감염력이 약하고 다른 일부는 특정 균주만을 표적으로 하는 초특이적존재이다. 기술 자체가 원시적이고, 정부는 전임상 시험에 대해 느슨하며, 제약 회사는 파지에 대한 특허를 받을 수 없으므로 상용화에 관심이 없다. 또한 특정 박테리아 균주를 공격하는 파지를 식별하거나 설계하기가 어렵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런데도 몇 가지 극적인 치료법이 있었다. 한편, 농업과 의학 분야에서 항생제를 광범위하게 남용하면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진화했고, 그중 일부는 오늘날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괴물로 진화했다. 이 무서운 현실은 현대 의학에서 잠자고 있던 파지 요법에 관한 관심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파지는 의료 환경 밖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최근에야 파지가 산소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공유하거나 탄소 순환에 영향을 미치고 박테리아가 질병을 일으키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독소를 암호화하는 등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합성 생물학의 도움으로 파지 치료가 자본주의 생산의 요구에 맞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1%만이 접근할 수 있는 맞춤형 파지 치료법이 탄생할 수도 있으나 예언은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약물 내성 질환을 앓고 있는 소수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파지 공식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파지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서구의 유전학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파지는 비교적 단순한 생물처럼 보였고 번식이 매우 빨랐기 때문에 냉전 시대 과학자들이 단기간에 유전학을 연구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놈 시퀀싱 기술이 이 좋은 바이러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체 게놈 시퀀싱은 1976년에 이루어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은 면역 건강의 일부로 파지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배치하며, 내장을 통해 매일 수백억 개의 파지를 흡수하고 숙주로 삼는다고 한다. 파지 감염은 장내 박테리아에 갇혀 있는 유용한 영양소를 방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파지는 항생제라는 단어처럼 영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닐까? 파지는 소련에서 자랐고 항생제는 서구에서 자랐다. 파지는 공산주의가 만든 약이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었다. 생물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파지를 사용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냉전은 끝났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파지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고, 투여량은 추측 게임이며, 무엇보다도 제약 산업에 충분한 자금을 댈 수 없으므로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파지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파지 요법을 기다리는 몇 가지 문제일 뿐이며, 저자는 이 외에도 더 많은 문젯거리를 지적한다. 한 가지 유형의 파지가 신체에서 박테리아 병원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지만, 항생제가 효과적이거나 다른 파지가 나머지를 제거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체 수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미래의 의학이 더욱 개인 맞춤형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1부에서 항생제의 역사 및 발전과 함께 파지의 개발 역사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2부에서 파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3부에서는 파지를 사용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4부와 5부에서는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의료 문제를 극복하는 데 파지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책의 표지는 프로펠러 추진기처럼 보이는 구근 모양의 머리와 몸체를 가진 두 개의 노란색 파지의 컬러 전자 현미경 이미지를 보여준다. 작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듯 나란히 포옹하고 있다. 이 유익한 책은 파지의 잠재적 용도를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파지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똑똑하고 기발한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소련이 질병 퇴치를 위해 파지를 받아들여 세계 최초의 진정한 항생제로 인정받게 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에도 구소련의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파지 한 병을 마시는 것이 일반의약품을 복용하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임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는 흔히 '더러움'을 연상시키며 전염병, 죽음, 질병과 연관된 단어이지만 파지는 전혀 다르다. 파지는 의료업계에는 물론 우리의 생활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히 '우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파지 발견의 핵심 주역부터 사례 연구, 현재 이 과학에 종사하는 놀라운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배울 점은 매우 많다. 과학자와 과학도는 물론이고 과학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이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 등 모두를 위한 책이다. 복잡한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분해하여 읽는 내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정말 흥미로운 과학 분야이므로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박테리아 감염 퇴치에 대해 잠재적으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조명하는 계몽서이다. 인류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자연의 해결책을 활용하는 대체 치료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절묘한 스토리텔링으로 과학사와 정치학을 엮어 모든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흥미롭고 가독성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책에 빠져들게 할 독특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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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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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바이러스 - 잊혀졌던 아군, 파지 이야기
Tom Ireland 지음, 유진홍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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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번식을 조절할 수 있는 미생물의 진수 박테리오파지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로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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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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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정부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면 어떡하지? 난로를 켜놓아 집에 불이 나면 어떡하지? 인생의 파트너를 잘못 선택하면 어떡하지? 우리가 늘상 입에 달고 사는 걱정거리가 있다.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며 위험을 계산하는 마음의 방식이자 놀이이다. 노르웨이 룬드 대학교 사회학 부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대다수가 학습된 무능에 고통을 받는 정도를 넘어 집단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불확실한 삶을 견디는 능력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일례로 서구 세계의 어느 기차역에서 마주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거의 20% 증가했으며, 불안과 우울증은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세계인의 건강 악화 원인 중 1위를 차지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도대체 인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졌고 생활 수준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 세계 인구를 충분히 먹이고도 절반이 남을 정도로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풍요로운 세상에 살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높아만 가고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미국 역사가 모리스 버먼은 인간이 역설안에 산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개별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불안에 고통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139)

 

매일 똑같은 해가 뜨고 지지만 모든 것이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기에 불안은 인간의 타고난 특성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문명사회를 이루고 살게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문명이 발달할수록 불안의 크기와 깊이 또한 정도를 더해 간다. 불확실성을 분명히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조차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하면 어떡하냐는 걱정도 함께 시작되는 식이다.

예컨대 좀비 바이러스로 세상이 망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는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자기 집 정원에 벙커를 지어두고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행동으로 고통을 받기는커녕 멀쩡하며 오히려 이런 행동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나 목숨은 보전할지언정 정작 문제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무너진 사회적 기반이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이처럼 불안한 사회를 걱정이라는 대표적인 단어에 담아내고자 한다. 1부는 현재 우리가 불안해하며 사는 모습을 비추면서 걱정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며 2부는 불안과 걱정을 역사적 배경에서 고찰하고 마지막 3부는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대책을 묻는다.

 

노동이라는 주제는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노동 자체는 불안을 없앤다. 학창 시절부터 주입되는 사회적 메시지는 명확하다. 철저히 계획된 지루한 삶을 계속하면, 재정 및 지위 걱정을 잠재울 수 있다. (189)

 

인간의 삶은 불안과 함께 시작된다. 일례로 지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영아 사망률이 있다. 신생아의 20% 이상이 태어난 지 수 년 이내에 사망하는 시대의 생활상은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 천연두와 소아마비가 있고 굶주리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운 좋게 한두 해를 넘기고 살아남으면 그때 가서 정식으로 출생을 신고하기도 했다. 이런 사회적 불안에서 벗어난 지 불과 70년 안쪽이다. 국민소득이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져 선진국의 문턱에 이른 지금, 더 부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으면 자살률이 줄어야 정상 아닐까? 역설적으로 국민총소득이 낮을수록 행복과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상관관계를 보인다. 삶의 수준과 행복감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부의 재분배가 가장 불평등한 국가의 상위 10%가 평등한 국가의 하위 10%보다 더 많이 걱정하는 점을 꼬집는다. 그는 승자와 패자를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받아야 인생이 살 만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생긴다고 보았다. 영락없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이야기 같다.

 

직장생활에는 규칙이 있고, 권위 있는 직업군에서는 특히 서로 정중하고 협조적이지만, 가정생활에는 스트레스, 카오스, 끓어오르는 갈등, 죄책감이 득실거리기 때문이었다. (203)

 

직장인이라면 상당 부분 수긍할 만한 이야기를 해보자. 왜 휴일에 집 안에 머무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더 마음이 더 편할까? 가정에서는 책임과 권한의 경계가 불명확한 집안일이 늘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반면 직장에서는 비교적 모든 것이 분명한 편이다. 네 일 내 일이 구분 가능하고 권한도 매우 선명한 편이다. 해야 할 일이 있는 한편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 또한 그만큼 된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이와 정 반대편에 있는 게 집안일이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해봐야 티도 안 난다는 결정적인 흠이 있고, 직장처럼 휴일 출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직장이라는 안전지대로 도피성 출근하던 이유를 비로소 명확히 파악하게 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행동뿐이다. 그러므로 가치있는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372)

 

명확하고 열정적인 화법으로 쓰인 이 책은 불안의 문화적 변화와 역사적 진화에 대한 파노라마이자, 이 사회적 전염병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영감을 주는 행동 촉구이기도 하다. 마력(魔力) 해소에 대한 막스 베버의 생각, 불안을 완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아야와스카(향정신성 성분인 DMT가 함유된 식물로 만든 일종의 환각제) 체험 여행, 이념적 몽상이 아닌 위험 회피로서의 정치에 대한 미로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백 건의 연구와 획기적인 조사, 가슴이 아플 정도로 솔직한 개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불안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집필하였으며, 쉽게 읽히는 문체를 사용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흔한 소리 대신, 걱정에 대한 일가견을 가질 수 있길 감히 희망한다.

 

#걱정중독 #롤란드 #파울센 #복복서가 #실패혐오 #불안 #심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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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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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에 관한 걱정을 해보는 걱정 해소법. 그래도 걱정은 인간의 본능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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