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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50대에 접어들고 보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짐을 느낀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나’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놓치고 살았나’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오는 동안 사람들과는 잘 어울려 지냈는지, 매 순간 선택의 기준은 뚜렷했는지, 자신을 다독일 여유는 있었는지 문득문득 자문하게 된다. 이런 시점에 만난 이 책은 그저 단순한 독서를 넘어, 바쁘게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문하게 만든다.
이 얇은 문고판 책이 각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세종대왕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히 ‘세종’ 하면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성군을 떠올리지 않던가. 하지만 책 속의 세종은 완성형 위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점검하는 ‘과정형 인간’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기보다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신하들의 쓴소리에 귀 기울였고 잘못이 드러나면 주저 없이 고쳤다. 절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세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리더의 모습과 겹치며 꽤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한 통찰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누가 더 뛰어나고 유능한지 서둘러 평가하려 든다. 하지만 세종은 사람을 탓하기 전에 ‘문제’ 그 자체를 먼저 보라고 조언한다. ‘누가 예민한가’를 찾기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살피라는 그의 태도는 오랜 세월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수없는 갈등을 겪어온 중년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순간, 정작 중요한 본질은 놓치고 만다는 뼈아픈 진실과 함께 말이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 역시 깊이 새겨볼 만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내치지 말라는 세종의 철학은, 오로지 성과와 효율만 따지는 요즘 세상에서는 자칫 무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통찰은 훨씬 깊은 곳을 향해 있다. 결과만 가지고 벌을 주면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숨기게 되고 조직은 안에서부터 병들고 만다는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누군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너그러움은 단순한 관용을 넘어, 사람과 조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단단한 뿌리와도 같다.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세종은 ‘사람을 믿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 리더’였다.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깔려 있지만, 그 믿음은 철저한 관찰과 질문,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 위에서만 작동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가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의 입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그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최선의 결정을 끌어냈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드는 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진정한 통솔력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서늘한 일침’에 있다. 우리는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만 정작 그 속에서 내 삶의 방향키를 놓쳐버릴 때가 많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묻기보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나’만 따지며 사는 것이다. 책은 그런 우리를 멈춰 세우고 묻는다.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그 길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의외로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찬찬히 되짚어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목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세종의 태도와 마주치게 된다. 자신을 의심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그 담백한 자세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진짜 잃어버린 건 대단한 능력이나 기회가 아니라 바로 이런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완독 후에 당장 속 시원한 정답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한 ‘기준’ 하나가 자리잡는 느낌이 든다. 더 가지려고 욕심내기 전에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먼저 묻는 것. 더 빨리 가려고 채찍질하기 전에 지금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는 것. 중년 아재의 가슴에 이 책이 툭 던져놓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생의 후반전은 ‘얼마나 더 채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얼마나 덜 놓치느냐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다. 정신없이 내달려온 시간 끝에 비로소 마주하게 된, 실로 값진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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