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부시마니쿠스 - 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
정해종 지음 / 파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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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부터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몸과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서로 협력하는 능력은 인류의 생존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정해종의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그 오랜 관심에 새로운 질문을 보탠다.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어오는 동안 무엇을 놓쳤을까. 과학 기술 덕분에 생활은 분명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더 사람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이 책은 남부 아프리카 칼라하리 지역 부시먼의 삶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문명의 기준을 돌아본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심코 뒤처진 존재로 여긴다. 그들의 생활을 인류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흥미롭게 바라보면서도, 오늘의 삶에서 배울 만한 것으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인류의 기원을 궁금해하면서 정작 그들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바라본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에도 엄연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을 전하는 책의 방식도 인상적이다. 학술적인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는 간결하고 선명한 시인의 언어로 삶의 장면을 그려낸다. 판화와 글이 어우러진 구성은 한 권의 판화 도록을 펼쳐보는 듯하다. 그림에 눈길을 두었다가 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낯설었던 부시먼의 삶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저자는 굳이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는 사이 그가 바라보는 세계와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나눔과 공동체를 대하는 부시먼의 태도였다. 먹을 것을 얻는 일만큼 함께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 생활에 대입하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넉넉하게 가져야 안심하고, 가진 것이 줄어드는 일에는 민감하다. 그러면서도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의지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자주 묻지 않는다. 안전하게 산다는 것이 반드시 더 많이 쌓아두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몫을 살피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역시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바탕이다.

이 대목에서 진화에 대한 관심은 오늘의 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생존의 역사를 경쟁과 승패만으로 읽기보다, 서로를 돌보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능력에도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부시먼의 삶을 갈등도 부족함도 없는 이상적인 세계로 여기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미개하다고 보는 시선과 순수한 인간성의 상징으로만 보는 시선은,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찾은 것은 완벽한 삶의 모형이 아니라, 익숙한 생활을 다르게 바라볼 실마리였다.

 

50여 점 판화의 선명한 색상과 그 곁에 놓인 해설은 자연을 대하는 태도 또한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자연의 가치를 말할 때조차 그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부터 따지곤 한다. 반면 책에서 만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대상이라는 구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시먼의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다른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너무 일방적인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물론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의료와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과 다른 생활방식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필요한 만큼 소비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살피며, 자연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는 지금의 생활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삶에 비추어 내 선택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인류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보다, 그동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은 과거의 것이라 과소평가하며 지나쳤던 삶에도 여전히 배울 것이 있음을 일깨운다. 인류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하던 마음은 이제 곁에 있는 사람과 생명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지 묻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차분한 문장과 그림 사이에서 얻은 그 질문이, 이 책을 오래 기억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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