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의 집, 피렌체의 인노첸티 - 르네상스와 함께 만개한 돌봄 혁명
조지프 루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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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지프 루치는 르네상스의 심장 피렌체가 수 세기 동안 감추어온 가장 음습한 그늘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흔히 르네상스라 하면 메디치 가문의 눈부신 후원,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빚어낸 찬란한 미학, 그리고 고대 인문주의의 부활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우아한 회랑 뒤편에서, 1445년 이래 장장 수백 년에 걸쳐 40만 명에 달하는 핏덩이들이 회전식 요람 속으로 내던져졌다. 이 책은 유럽 최초의 아동 전담 보호소인 인노첸티 보육원이 결코 이탈리아인들의 남다른 유아 애호나 낭만적 박애주의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곳은 화려한 번영의 도시가 잉태한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비겁함이 남긴 비극적 부산물을 처리하던 거대한 배수구였다.

 

당대 피렌체의 견고한 신분제와 가부장적 질서는 필연적으로 음지의 성적 착취를 양산했다. 천문학적 액수의 신부 지참금 때문에 결혼은 사랑이 아닌 가문 간의 냉혹한 자본 거래로 전락했고,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은 수도원에 갇히거나 빈민으로 내몰렸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전까지 혼인을 미뤄야 했던 미혼 남성층의 성적 욕망은 고스란히 집안의 하녀나 노예 여성들에게 향했다. 주인의 성적 대상이 되었다가 임신한 여성들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즉시 버림받았고, 사생아 출산이 곧 가문의 파멸을 의미하던 가톨릭 사회에서 산모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보육원의 벽에 뚫린 차가운 회전통뿐이었다. 여기에 죽음을 앞둔 거상 프란체스코 다티니의 유산 기부가 보여주듯, 보육원 존립의 밑바탕에는 고리대금업으로 축적한 부에 대한 영적 공포, 즉 하느님의 '최후의 회계 감사'에서 지옥 불을 피하려는 기득권층의 절박한 구원 거래와 사회 통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노첸티는 단순한 수용소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재정의하려 했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시험대였다. 오염된 식수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포도주를 배급하며 생존을 도모했고,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의 일류 미술품으로 공간을 채워 시설의 위신과 후원자들의 신뢰를 확보했다. 그뿐 아니라 버려진 아이들에게 키케로의 수사학을 가르쳐 도시의 당당한 시민이자 기술자로 길러내려 했다. 그러나 그 고결한 교육의 이면에는 무자비한 회초리와 삼엄한 통제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지식을 습득했으나 억압적 규율 속에 숨죽여야 했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체벌은 사라졌으나 교육적 훈육과 책임마저 무너져 표류하는 우리 교실의 광경이 겹쳐 보인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사회가 약자를 배제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을 포착한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다. 짐 싣는 안장(bast)에서 유래해 노동 계급의 짐짝으로 취급받던 '사생아(bastard)'나 차별의 뉘앙스를 담은 '비적출자'라는 단어는, 오늘날 가치 판단을 덜어낸 '혼외자'라는 말로 바뀌기까지 수백 년 동안 아이들의 존재를 부정해 왔다. 보육원을 떠났으나 가부장제의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 여성들을 향해 쏟아진 '되돌아온 것들(Le ritornate)'이라는 멸칭은, 병자호란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고 살아 돌아왔음에도 정절을 잃었다며 손가락질당하고 '화냥년'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었던 조선의 '환향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와 시스템의 실패를 가장 연약한 여성에게 덮어씌워 희생양 삼았던 폭력의 역사는 시공간을 초월해 닮아 있다.

 

책의 결말에 이르러 역사의 시선은 6백 년 전의 피렌체에서 지금 우리가 딛고 선 대한민국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인노첸티의 기록이 증언하듯, 세상의 문턱에서 '내던져진 아이들(gittatelli)'은 브루넬레스키의 아치 아래를 지나며 비로소 '발견된 아이들(trovatelli)'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여전히 수백 명의 아이를 외국으로 떠나보내는 국제 입양 상위국이라는 부끄러운 현실, 그리고 0.7명대라는 출산율 통계에는 온 사회가 호들갑을 떨면서도, 업둥이로 자란 아이들이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아무런 기반 없이 시설을 떠나 살아가야 하는 각박한 현실에 둔감한 점은 피렌체의 모순과 너무나 흡사하다. 결국 이 책은 화려한 르네상스의 복식사를 읊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빛나는 번영의 뒤편에 선 채, 우리는 지금 세상에 태어난 가장 취약한 생명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 묵직하고 아픈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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