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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지금까지 세상에는 타인과 교류하며 에너지를 얻는 외향인(extrovert) 과, 홀로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인(introvert) 두 부류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이분법적 성향 분류에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심리적 특성을 파악할 때 이 두 가지 스펙트럼의 어디쯤 위치하는가를 묻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무리에 섞여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른바 ‘이향인’(otrovert) 이라는 제3의 낯선 개념을 제시한다. 소속감이라는 것이 인간이 반드시 좇아야 할 미덕이 아니라 단지 실체 없는 감정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며, 저자는 자신을 비롯하여 군집적 사고(hive mind)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이향인의 세계를 소개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낯선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보며 과연 나는 이향인의 특성에 얼마나 맞닿아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저자의 이러한 도발적 분류가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물론, 인간의 복잡다단한 성향을 또 하나의 새로운 틀로 규정짓고 선명한 경계선을 그으려는 저자의 시도에 모든 독자가 선뜻 동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기존의 스펙트럼 안에서도 얼마든지 겹치는 교집합이 존재하는데, 굳이 ‘이향인’이라는 독립된 범주를 신설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학술적, 경험적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그저 내향성의 또 다른 극단적 발현이나, 획일화된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군중 속의 고독’을 그럴싸한 용어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할 수도 있다. 저자는 비록 이향성이 이분법적이어서 ‘이향인이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단언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주어진 상황과 생애 주기에 따라 수없이 변화하는 모순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때로는 이 단호한 구분이 다소 작위적이지 않은가 하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 채 활자를 따라갔다.
저자가 정의하는 이향인의 특성을 짚어 나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자기 내면을 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과연 이향인인가?’ 책에 따르면 이향인은 태생적인 개인주의자이자 온순한 저항가다. 어느 순간 이게 꼭 독자 자신의 얘기인 듯 사뭇 반가울 때도 있다. 이들은 겉으로는 집단에 융화된 것처럼 사회적 역할을 능숙하게 연기하지만, 내면의 독립된 세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갈등과 대립을 뼛속 깊이 혐오하여 굴복하기보다는 애당초 경쟁에 끼어들지 않는 길을 택하며, 타인의 경제적 성공이나 지위에 무심하다. 이러한 대목을 읽노라면, 조직 사회에서 소모적인 다툼을 피하려고 우유부단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화려한 인맥의 허상보다 나만의 고요한 시간과 평온을 갈구해 온 수많은 개인은 자신 안의 ‘이향성’을 발견하고 묘한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
특히 학교나 군대, 혹은 기업과 같이 공동체의 규범을 강요하는 억압적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겪는 내적 갈등을 묘사한 부분은 탁월하다. 우리 사회는 타인에게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진정한 자아를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청소년기의 또래 집단이 요구하는 맹목적인 소속감에 짓눌려 가짜 외향인 행세를 해보았거나, 협업을 강요하는 직장 문화 속에서 에너지가 방전되는 뼈아픈 경험을 해본 독자라면 저자의 분석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집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이향인들이 겪는 극도의 소모감은 오늘날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근본적인 우울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독서가 깊어질수록 내 안에 내재한 이향적 파편들과 동시에, 이향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순된 자아 역시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이향인이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필요한 정보를 모두 갖고 있기에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수용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구와,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미성숙함을 빈번히 드러낸다. 진정한 ‘정서적 자급자족’을 이루고 자신과 편안한 관계를 맺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저자가 제시한 완벽한 이향인의 이데아에 비추어볼 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번민하는 평범한 자아를 가진 나는 ‘결국 순전한 이향인은 아니구나’라는 솔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현대 사회 파편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마침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등장한 도구일 뿐이라는 역설처럼, ‘이향인’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인류가 아니다. 그들은 늘 우리 사회의 틈새에 묵묵히 존재해 왔으나 집단주의적 잣대에 의해 ‘부적응자’ 혹은 ‘사회성 부족’이라는 오명을 쓴 채 적절한 이름표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저자의 이분법적 분류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혹은 스스로가 완벽한 이향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집단의 폭력적인 정상성에 짓눌려 숨죽이던 이들에게 ‘이향인’이라는 안식처 같은 이름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군집적 사고의 합의를 거부하고, 무리한 소속감에 목매는 대신 자신만의 풍요로운 내면세계 가꾸기의 정당성을 역설한 이 책은, 고립과 분열이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나다운 삶을 지켜내기 위한 철학적 지침서다. 완벽한 이향인은 아닐지라도, 집단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두고 정서적 자급자족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획일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통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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