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어른의 한자어 - 생각은 깊게 표현은 분명하게
김웅식 지음 / 보누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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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웅식 저자의 품격 있는 어른의 한자어는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놓치고 있던 단어의 깊이와 언어의 품격을 따뜻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책은 결코 딱딱한 고사성어나 어려운 한자를 무작정 외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들의 뿌리를 함께 찾아가며, 그 안에 숨겨진 본래 의미와 결을 다정하면서도 또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쓰는 말 중 한자에서 유래한 단어가 수두룩한데도, 정작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올바른 뜻을 몰라 상황에 맞지 않게 쓰거나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흔하다. 공문이나 공지의 '금일(今日)''금요일'로 착각해 일을 미루거나, 깊은 사과를 전하는 '심심(甚深)한 사과'"지루하고 심심해서 하는 사과냐"라며 엉뚱하게 분통을 터뜨리는 웃지 못할 일들이 일상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다.

 

또한, 발음이나 형태는 비슷하지만, 한자의 쓰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수많은 '대립쌍'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언어를 아슬아슬하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대금을 정산하는 '결제(決濟)'와 서류 승인을 받는 '결재(決裁)'를 헷갈리고, 기술을 개척하는 '개발(開發)'과 잠재된 재능을 열어주는 '계발(啓發)'을 구별하지 못하며, 상태를 유지하는 '보존(保存)'과 온전히 보호하거나 메우는 '보전(保全)'을 혼용하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회사에서 사람을 부르는 '고용(雇用)'과 남의 일을 해주는 '고용(雇傭)', 학습 능력인 '학력(學力)'과 학교 경력인 '학력(學歷)'에 이르기까지, 단어의 한 끗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소소한 오해들은 우리가 언어적 맥락과 언어 주권의 기틀을 얼마나 위태롭게 놓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늘날 이러한 어휘의 맥락을 짚는 일은 더욱 절실해졌다. 통계청 조사 기준 성인 종합독서율이 30%대까지 급감하는 등 책을 읽지 않는 풍조가 고착된 데다, 공교육 현장에서 한자 교육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마트폰 중심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짧은 영상이나 요약본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뇌는 길고 정교한 글을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국가 조사에 따르면 성인 인구의 약 20%가 일상적인 문서나 문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 상태인 것으로 보고된다.

 

모순적인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말의 바탕이 되는 어휘력과 기초 문해력을 가꾸는 '우리말 살리기'에는 지극히 인색하면서도 조기 영어 교육과 영어 사교육에는 매년 수조 원대의 막대한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초··고 영어 사교육비 집행액만 연간 6조 원을 훌쩍 넘어서며 전체 과목 중 최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모국어 어휘의 결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래어와 영어를 우선시하는 이러한 불균형은 결국 우리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이자 생각의 주도권인 '언어 주권'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 언어를 정교하게 다루지 못해 외부 언어나 자극적인 표현에 휘둘리는 순간, 우리는 생각의 자립성을 잃고 언어 주권을 스스로 내려놓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어휘력의 수직 하락은 단순히 '아는 단어 수가 적다'는 개인적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말 어휘의 과반수가 한자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교한 표현을 잃어버린 사회에는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언어만 남게 되며,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의식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여파로 시민 사회가 애써 쌓아 올려 온 민주주의의 탑마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건전한 비판과 성숙한 토론 대신 맹목적인 진영 논리와 자극적인 선동 언어만이 판을 치는 현실은 결국 언어 주권과 사고의 빈곤이 가져온 씁쓸한 결과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적 혼란 속에서 단어의 진짜 뜻과 맥락을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 왜 어른다운 품격을 만드는 첫걸음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책에서 들려주는 단어의 유래와 올바른 쓰임새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상황과 상대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능력은 단순히 지식을 뽐내는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오해를 줄이고, 한층 다정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마음의 교양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모국어 어휘의 빈곤이 생각의 빈곤으로 이어지기 쉬운 디지털 시대에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준다. 우리 말의 언어 주권을 단단히 지켜내고, 내 생각과 시선을 한 단계 더 깊고 풍성하게 가꾸고 싶은 모든 어른에게 필요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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