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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평점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듯, 죽음 역시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늙고 병든다는 것은 삶의 존엄한 마침표라기보다, 정교하게 짜인 격리 시설에 수용되는 과정에 가까울 때가 많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은 이 책에서 한 서민 여성의 삶을 통해 노년이 마주하는 이러한 잔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해 낸다. 그는 어머니의 요양원 입소와 죽음을 계기로 계급과 성별, 그리고 노년이 얽히며 발생하는 사회 구조적 폭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그저 남의 비극을 건너다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우리들의 아픈 경험을 다시 불러내며, 머지않아 다가올 나 자신의 미래를 또렷이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에리봉의 치밀한 사회학적 분석과 그 곁에 보탠 개인적 단상은 노년과 죽음이 더 이상 골방 속 사적인 문제로만 남을 수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기 신체와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노화는 이 자율성을 뿌리째 흔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움직이던 팔다리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을 때 느껴지는 공포는 삶의 기본적 조건마저 무너뜨린다. 나이 드는 것이 점차 두려워지는 직접적인 이유다. 신체적 취약성은 단순한 건강의 문제를 넘어 개인이 지닌 자유와 권리를 무(無)로 돌아가게 만드는 무서운 형틀이다.
에리봉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면서 경험한 자율성의 상실을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요양원은 겉으로는 돌봄의 공간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바깥 세계와 단절된 채 개별 노인의 삶을 구획하고 통제하는 격리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노인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잃고, 타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태에 놓인다. 이는 단순한 주거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지녀온 정체성과 권익, 즉 ‘자기 영토’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축소되는 탈인간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치매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주간보호센터와 요양원, 요양병원을 순례하며 모셔야 했던 내 가족의 경험과 궤를 같이한다.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조금씩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일은 애통함 그 자체였다. 당신이 처한 상황을 예감했기에 단 한 번도 거부하지 않고 쓸쓸한 고립을 받아들이시던 아버지의 담담함 뒤에는, 자율성을 완전히 상실한 자의 거역할 수 없는 체념이 깔려 있었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이처럼 노인의 죽음을 외롭고 신속하며 은밀하게 치워버림으로써 공적 영역에서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에리봉의 어머니가 겪은 노년의 비극은 그가 평생 짊어져 온 서민 여성으로서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이 망가지는 작업 조건 속에서도 침묵해야 했고, 가부장적 가정 환경 속에서 불행을 견뎌내야 했다. 저자는 지식계급으로 이동한 후에도 마르크스주의적 언어를 통해 출신 계급에 대한 지적 충실성을 유지하며, 어머니와의 거리를 메우고자 애쓴다.
여기서 프랑스 사회의 계급 의식과 한국 사회의 역동성 사이에 흥미로운 대조가 발생한다. 프랑스의 계급 이탈자들은 신분 상승 후에도 자기 뿌리인 노동계급 정체성을 자각하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 의식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급 정체성은 연대의 기반이 되기보다 조속히 탈출해야 할 과거로 인식되었다. "자식에게만큼은 고된 노동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한 신분 상승 욕구는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저항으로 발전시키기보다, 가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흡수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고통을 개인의 희생으로 환원한 결과는 잔혹하다. 일평생 몸을 바쳐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이르러 신체적 능력을 잃은 대다수 서민들은 사회적 안전망 없이 각자도생의 길로 몰리게 된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침묵은 노년의 무기력함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사회적 배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현실에서의 한국 노인복지는 기초연금·장기요양보험·노인일자리사업 등 막대한 예산과 제도를 운용하고 있음에도 최상위권의 노인 빈곤율이 보여주듯 실질적 생계 보장과 양질의 삶을 견인하지 못하는 '양적 확대와 실효성 부족 사이의 모순'을 안고 있다.
에리봉은 책의 후반부에서 매우 근본적인 정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고령자들은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철학과 정치 이론은 경제적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한 주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따라서 자신들을 조직화할 수 없고 생산성을 상실한 노년층은 이론적·정치적 사유의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노인들은 신체적·정신적 약화로 인해 노동조합이나 정당과 같은 집단적 결사체를 구성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힘’이 없다. 민주주의 체제가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집단의 요구를 우선으로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발언권을 상실한 노년층의 문제는 정책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한국 사회가 처한 참담한 노인 빈곤율 역시 이러한 정치적 발언권의 부재와 직결되어 있다. 노인의 가난과 소외는 단순히 국가 예산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공적인 언어로 호소할 수 있는 길, 즉 자신들을 대변할 '우리'라는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변할 정치적 힘이 없는 집단의 비극은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되고, 정치적 무력함은 경제적 빈곤으로 고착화된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한 지식인이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자, 노년이라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향한 깊은 사회학적 성찰이다. 저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인의 언어를 통해 평생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외된 노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자 애쓴다.
태어나는 순간을 선택할 수 없었듯, 우리는 나이 듦과 노화를 피할 수 없다. 훗날 나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리고 에리봉의 어머니가 걸어갔던 그 쓸쓸한 고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신체적·정신적 제약으로 스스로 결사할 수도, 사회를 향해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없는 그 무력한 상태에 다다랐을 때, 과연 우리 사회에서 누가 그들의 진정한 대변인이 되어줄 수 있는가? 정치적 표 계산에 따라 표류하는 시민단체나 정당인가, 아니면 그들의 고통을 단지 학문적 연구 대상이나 뉴스거리로 소비하는 지식인과 미디어인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들을 대신해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대변자의 기만이나 왜곡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떤 자격으로 그 정당성을 얻어 스스로 언어를 잃어버린 노년층을 정말로 대변할 수 있는가? 머잖아 노년을 맞이할 시점에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질문의 무게가 사뭇 무겁게 다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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