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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발을 담근 채 ㅣ 독고독락
이새벽 지음, 김승아 그림 / 사계절 / 2026년 6월
평점 :

주인공인 여고생 '이연'은 과거 친구들에게 심한 따돌림과 배신을 당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세상에 '진짜'는 없으며 모든 관계와 감정은 '가짜'일 뿐이라고 믿으며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지낸다. 그러던 중 이연은 학교 도예부에서 '성빈'이라는 남학생을 만나게 된다. 흙을 어루만지는 성빈의 섬세하고 다정한 모습, 그리고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태도에 이연은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 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성빈은 이연의 고백에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는 것이다. 성빈은 그 증거로 자기 손을 물에 푹 담근 채 보여준다. 오랜 시간 물에 발이나 손을 담그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인간과 달리, 성빈의 손은 아무런 변화 없이 매끈하고 늘씬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연이 성빈의 정체에 충격을 받을 틈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누군가가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연은 성빈의 정체가 학교 전체에 소문나 그가 배척당할까 봐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소설은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한 안드로이드 성빈과 그를 지키고자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비겁함과 마주하게 되는 이연의 내면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겉보기엔 안드로이드 소년과 인간 소녀의 풋풋한 성장 로맨스 같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서늘한 경고가 숨어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가 겉보기에 인간과 완벽하게 흡사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문제점들을 상상해본다.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는 인간관계와 감정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과 신뢰의 붕괴다. 이연이 성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외형과 행동 양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계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깊은 감정을 내어주었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배신감과 자괴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 향후 인간 사회 전체의 관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위험을 경고한다.
또한, 완벽한 안드로이드의 존재는 인간의 심각한 열등감을 유발하고 '인간다움'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작품 속 성빈은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한 도예를 훌륭히 해낼 만큼 섬세하며 육체적으로도 흠결 없는 존재다. 반면 이연을 포함한 인간들은 남을 따돌리고, 거짓말을 하며, 겁을 먹고 비겁해지는 등 수많은 결함을 드러낸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공감 능력과 감수성마저 훌륭히 모방하면서 물리적으로 완벽하기까지 하다면, 불완전한 인간은 비인간 앞에서 고유한 쓸모와 존재 이유를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가 일상에 섞여 들면 인간의 내재적 폭력성과 배타성이 비인간을 향해 집중되는 혐오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연이 누군가 엿들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성빈이 '나와 다른 존재'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에게 쏟아질 인간들의 무자비한 차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과 지나치게 흡사한 기계가 오히려 인간 사회의 비합리적인 차별과 폭력성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완벽한 안드로이드 '성빈'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이연의 지질하고 비겁한 진짜 인간성을 낱낱이 비춘다. 사람과 지나치게 흡사한 안드로이드가 초래할 가장 큰 비극은 그들이 너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완벽함 옆에 섰을 때 인간의 이기심과 비겁함 같은 결함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 아닐까. 다행히도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 이면에는 가장 인간다워지고자 하는 본성의 외침 또한 존재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모순된 지점을 파고들어, 포기하고 실수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맞잡으려는 인간만의 연대에서 희망을 찾는다. 기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인간다운 존재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의 무게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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