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 퀴어 청소년
퀴어 청소년 당사자 모임 짱똘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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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50대 중년 남성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왔다. 내 아이들이 그저 남들처럼 무난하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랐던 여느 대한민국의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반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 주변에서 자기를 '성소수자'라고 밝힌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텔레비전이나 뉴스, 혹은 멀리서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간접적으로 접했을 뿐, 내 삶과는 꽤 거리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성 정체성의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내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포용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더 이해심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작은 호기심과 책임감도 느꼈다.

 

이 책은 어떤 유명한 작가나 권위 있는 학자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딱딱한 이론서나 소설이 전혀 아니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퀴어 청소년 당사자 모임인 '짱똘' 소속의 아이들과 그들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교사 '유랑'이 직접 겪고 써 내려간 가장 생생하고 진솔한 삶의 기록이다. ‘짱똘모임은 꼬꼬라는 아이가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로 커밍아웃한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고 한다. 책은 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어떻게 서로의 손을 맞잡고 연대해 나가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내밀한 고민부터 시작하여 학교 내에 성 중립 화장실 도입을 논의하고 배제 없는 올바른 성교육을 요구하는 등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의 궤적이 참으로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책 속의 아이들은 단순히 기성세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연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스스로 연대하며 자신들만의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놀랍도록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음속에서는 묘한 뭉클함과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이 수시로 교차했다. 특히 아이들이 부모나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만약 내 자식이 남들과 다른 정체성 때문에 홀로 밤잠을 설치고, 혹여나 가장 든든한 내 편이어야 할 가족에게마저 상처받을까 두려워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다면 아빠로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평범한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려야 할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기 위해, 이 어린아이들은 매 순간 세상과 부딪히며 엄청난 용기를 내야만 했다. 한 번도 직접 마주 앉아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활자 너머로 전해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친숙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내 아이들의 친구이자, 우리 곁에 숨 쉬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의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아가 짱똘아이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겪는 갈등과 변화의 과정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교사 유랑과 함께 아이들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갈 수 있는 '성 중립 화장실'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성교육 시스템을 열망한다. 50대 아재인 내 낡은 기준에서는 낯설고 때로는 '과연 학교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던 문제들이, 누군가에게는 숨을 쉬고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음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기성세대는 써먹기 좋은 방어논리로 "지금은 공부할 때다"라며 청소년들의 정체성과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려 들기 일쑤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 시기의 퀴어들 역시 미래를 위해 견뎌야 하는 유령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온전한 나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강렬하게 항변하고 있다.

 

다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스레 드는 솔직한 안타까움도 있다. 책에도 아이들이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며 연대감을 다지는 대목이 나오는데, 가끔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축제의 일부 모습은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음지(?)에서 숨죽이던 이들이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축하하는 그 본질적인 의미와 열정에는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때때로 현장에서 남녀의 성기를 지나치게 희화화하거나 자극적으로 상품화하여 전시하는 일부 행태들은 못내 아쉽다. 이런 과격한 표현 방식이 대중에게 성소수자의 진실한 삶과 내면을 보여주며 따뜻한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거부감이나 혐오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차별 없는 시선으로 온전히 품어 안기 위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와 부드럽게 발맞추며 소통하려는 지혜로운 노력도 함께 더해졌으면 한다.

 

이에 더해, 이 아이들이 훗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어른이 되었을 때 맞닥뜨릴 현실을 생각하면 기성세대로서 약간의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일례로 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관광 수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전환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취업의 문을 열어주고 생계 활로를 돕는 등 실질적인 제도적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성소수자들의 생존권이나 노동권, 나아가 이들을 사회적으로 포용할 정책에 대해 이렇다 할 명확한 견해 표명조차 주저하고 있으며 관련 제도 역시 턱없이 부실한 실정이다. 단지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생계의 위협마저 느껴야 한다면, 책 속 아이들이 뿜어내던 그 눈부신 용기와 연대는 금세 시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인식의 변화를 넘어, 이들이 평범한 시민으로서 경제 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너무나도 시급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무한한 지지를 보내준 교사 '유랑'의 모습은 큰 울림을 주었다. 섣불리 어쭙잖은 잣대로 판단하거나 훈계하려 들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들어주고 곁에 서서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역할이자 부족한 제도의 틈새를 메워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따뜻한 포용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먹고사니즘에 밀려 성 정체성의 다양성 문제에 대해 잘 모르던 평범한 중년 아재에게도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는 핑계로 이들의 팍팍한 삶과 미래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했고, 동시에 이토록 용감한 청소년들이 빚어갈 미래 사회에 대한 따뜻한 희망을 품게 했다. 만약 내 곁에, 혹은 내 자녀의 친구 중에 이런 치열한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온다면 기꺼이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너의 모습 그대로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주저 없이 말해줄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아빠가 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많은 학부모와 기성세대들, 그리고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까지 이 책을 꼭 정독해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서로의 다른 삶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지원을 위한 사소한 노력을 모을 때, 세상의 수많은 짱똘들이 마음껏 자기 모습대로 웃고 일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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