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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 폭력이 펼쳐지는 시대마다 누가 숨은 이득을 챙기는가
던컨 웰던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원제 『피와 보물(Blood & Treasure)』은 시작부터 꽤 노골적이다. 전쟁과 약탈의 본질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묶어놓은 제목이 또 있을까 싶다. 처음에는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면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도발적인 제목이야말로 저자가 던지려는 질문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분명 피를 부른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전쟁은 때로 보물도 낳았다. 물론 그 보물은 단순한 금과 은이 아니다. 제도와 유인, 그리고 경제 구조의 변화라는, 조금 더 복잡하고 위험하며 동시에 흥미로운 것들이다.
이 책은 바이킹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경제사를 추적한다. ‘폭력 전문가’들에 의한 무력 충돌이 세계 권력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며, 갈등의 경제학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탐구한다. 전쟁이 막대한 인명 피해와 비용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긴 역사 속에서 인간 사회의 제도와 경제 발전을 이토록 강하게 밀어붙인 힘도 또 드물다. 전쟁은 국가를 일으켰고, 국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비용이 커질수록 조세 제도와 국가 조직, 국채 시장은 함께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파괴적으로 변할수록 국가의 경제 체제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저자 던컨 웰던은 전쟁을 영웅담이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왜 이런 선택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인간 행동의 숨은 인과관계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다만 무대가 일상 대신 역사라는 점이 다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사판 프리코노믹스’라고 부를 만하다. 각 장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경제학적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독자의 직관을 은근히 흔들어 놓는다.
책은 중세 영국의 데인겔드 이야기로 시작한다. 데인겔드는 영국 왕들이 바이킹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바친 일종의 조공이다. 물론 이 돈은 왕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세금으로 마련되었다. 경제학 교과서식으로 보면 세금은 대체로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소로 설명된다. 그런데 저자는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데인겔드가 징수되던 시기가 오히려 영국 경제가 비교적 활기를 띠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세금을 감당해야 하는 압력이 농민들의 생산성 향상을 자극했다는 해석이다. 폭력의 그림자 아래에서 오히려 교환과 분업이 촉진되었다는 설명은 조금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2장에서는 칭기즈칸이 뜻밖의 별명을 얻는다. 바로 ‘세계화의 아버지’이다. 몽골 제국은 초기의 파괴적인 정복 이후 광대한 지역에 일정한 질서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동서 간 육로 무역이 한 세기 가까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유럽인들이 아시아 상품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육로 무역이 어려워지자 유럽은 자연스럽게 해상 항로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몽골 제국이 대항해 시대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익숙한 역사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하다. 칼과 말발굽이 남긴 것이 폐허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신대륙 이야기에 이르면 또 하나의 통념이 흔들린다. 금과 은을 잔뜩 손에 넣은 스페인이 왜 결국 경제적으로 쇠퇴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남미의 은이 유럽으로 대량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제도 개혁에 실패했고 결국 재정 위기를 반복했다.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켰다는 설명이다. 결국 문제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제도 속에서 그것을 운용하는가’이다. 전리품은 잠깐이지만 제도는 오래 남는다.
기후 변화와 마녀사냥의 관계를 다룬 장도 흥미롭다. 얼핏 보면 집단적 광기에 가까운 마녀사냥 역시 사실은 생존 압박이라는 구조적 조건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오늘날의 국제 갈등 역시 단순히 몇몇 지도자의 성격이나 광기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갈등 뒤에는 대개 더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은 해적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다. 법도 재판도 없는 해적선에서 의외로 정교한 조직 운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보상 체계와 신호 구조가 명확하면 반란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듣다 보면 현대 기업 조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폭력 집단이 오히려 꽤 합리적인 유인책 설계를 했다는 사실은 묘하게 씁쓸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접근은 어디까지나 경제학적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총력전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도덕적 비판보다는 경제적 동원 체제의 효율성이 강조된다. 이런 분석은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선악의 판단이 아니라 행동을 만들어내는 유인 구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특정한 제도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분석일 뿐 권유가 아니다. 문제는 이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때 생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내란을 두둔하거나 강경한 물리적 충돌을 불가피한 선택처럼 말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적이 있다. 국가의 위기나 경제적 침체를 이유로 “큰 충격이 체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역사 속 전쟁이 제도 발전을 낳았으니 어느 정도의 폭력은 필요악이라는 논리와 닮았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 어떤 제도가 만들어졌는가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과 왜곡된 유인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큰 충격이 가해져도 발전 대신 파탄이 반복된다. 신대륙의 은을 움켜쥐고도 재정 파탄에 이른 군주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폭력은 자동으로 진보를 낳지 않는다. 제도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폭력은 공동체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태도는 어쩌면 ‘보물’만 보고 ‘피’를 지워버리는 편리한 기억 방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득을 얻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와 보물의 관계는 풍선효과와도 비슷하다. 경제학적 분석은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차가움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유인이 왜곡되면 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집단은 비극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던컨 웰던은 『이코노미스트』와 BBC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학자이다. 영란은행과 자산운용, 공공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워릭대학교 세계경제 비교우위 분석센터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런 이력이 보여주듯 그의 논의는 상당히 촘촘하다. 모든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반박하려면 그만큼의 근거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지닌 가장 건강한 특징이다.
이 책은 전쟁의 승패를 묻지 않는 대신 전쟁이 남긴 제도적 흔적을 추적한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총성과 함성이 아니라 어떤 유인을 설계하고 어떤 제도를 지켜내느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피와 보물 중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전쟁의 명분보다 그 결과를 더 오래 기억한다. 오늘날 중동의 긴장을 키우며 전범 논란에까지 이름이 오르는 트럼프와 네탄야후의 사례는 실정을 덮느라 보물조차 약속하지 못하는 전쟁이 결국 어떤 평가로 남게 되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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