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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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학부 시절 미국문학사를 배우면서 처음 접했던 피츠제럴드를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니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신선함을 느낀다. 그간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종종 영화로 보기도 했지만 특히 이번에 만난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같았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마치 피츠제럴드가 직접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위해 쓴 안내서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의 작품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글을 엮은 것이었다. 기대와 달리 안내서가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아쉬웠지만, 생각해 보면 그는 평소에도 다른 작가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왔고, 자기의 이야기를 아주 뻔뻔하고도 유쾌하게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에 편집자가 모아놓은 글 속에서 충분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매력적인 무대, 역동적인 전개, 활기찬 인물, 적절한 속도감과 활기까지 소설의 구상에 모두 담겨 있어야 해. 이중 두 가지가 빠지면 소설은 힘을 잃을 것이고, 세 개나 네 개가 빠지면 매장이 반쯤 문 닫는 백화점을 운영하는 꼴이 되어 버릴 거야. (51)

 

피츠제럴드가 이 책에서 말하는 두 가지 분투는 근본적으로 글쓰기의 내적 갈등과 작가로서 살아가는 현실적 갈등이다. 첫 번째 분투는 바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가져오는 고통인데, 사실 글쓰기란 자기 내면의 혼란과 마주하며 언어로써 이를 조각내고 다듬어 가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피츠제럴드의 표현대로라면 작가는 항상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아주 고약한 질문과 끊임없이 씨름하는 존재이다. 두 번째 분투는 작가로서의 삶이 전혀 녹록지 않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피츠제럴드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경제적 압박,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증, 복잡한 인간관계 등 현실의 문제들은 항상 작가를 괴롭힌다. 글쓰기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가다 보면 현실과의 타협도 불가피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대체 내가 이 일을 왜 하는 거지?"라며 존재의 목적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피츠제럴드가 이야기하는 이 두 가지 싸움은 서로 맞물려 있다. 작가로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려는 내적 투쟁과 현실의 냉혹한 벽을 뛰어넘기 위한 외적 투쟁은 모두 작가가 자신을 계속해서 탐구하며 나아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늘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피츠제럴드 역시 그 질문을 작품과 삶 속에서 온전히 살아낸 인물이었다.

 

삶에 대한 날카롭고 명확한 태도 없이, 어찌 소설가로서의 책임을 떠맡을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69)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헤밍웨이에 대해 언급한 편지와 그의 딸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중에서도 딸에게 추천한 애정 가득한 책 목록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훨씬 더 나았다고 본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는 1920~30년대 파리의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두 작가로, 서로의 삶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맺었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쇠퇴와 비교하며 자존감을 상실해 갔고,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존중하면서도 그의 방탕한 삶과 자존감 부족에 대해 실망을 드러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궤도를 돌며 간헐적으로 충돌하는 위성처럼 경쟁과 우정, 존경과 실망 사이를 오가는 공전하는 관계를 이어갔다고 알려졌다.

 

내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실제로 덜어낸 부분과 감정적으로 걷어낸 것만으로도, 또 한 권의 소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85)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인 <낙원의 이편><위대한 개츠비>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1920년대 미국의 번영기, 즉 재즈 시대(Jazz Age)의 화려한 면모와 함께 그 뒤편에 숨겨진 공허함, 환멸, 도덕적 타락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가장 밝은 동시에 가장 어둡기도 한 달의 양면처럼 특히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재물과 쾌락의 풍요로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패와 상실감을 심층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상이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개츠비의 삶을 통해 성공과 부를 얻고자 하는 개인의 열망이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영혼의 황폐함과 환멸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은 대체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도덕적으로 부패하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하다. 상류층 인물들의 겉모습과 내적 진실 사이의 괴리를 묘사하여 당시 미국 상류층의 위선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네 갈망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때닫게 된다는 거야. 그 순간 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그들 중 하나가 되거든. (101)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이나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 등에서도 피츠제럴드는 청춘의 방황, 낭만적 꿈, 이상주의가 결국 환멸과 무기력, 허무로 빠져드는 과정을 잘 묘사하면서 젊음의 화려한 순간 뒤에 찾아오는 인생의 실망과 상실을 강조한다. 인물들이 지닌 이상주의적 열망과 냉혹한 현실 간의 괴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개인의 꿈이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는 비극적 순간을 포착한다. 개츠비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대개 이상을 좇다가 현실과 충돌하여 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낭만적 이상주의(로맨티시즘)와 세련된 스타일의 문학적 모더니즘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으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와 정교한 서술 구조를 통해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히 묘사했다는 평을 듣는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더 많이 기록할 수 있을 뿐이지. (115)

 

피츠제럴드는 흔히 타고난 작가로 묘사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재능을 "나비 날개 위에 쌓인 먼지가 자연스레 그리는 무늬처럼 타고난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다르게 보았으며 "내가 성취한 작은 것들은 모두 가장 고된 노력과 힘든 싸움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인용구에 밑줄을 긋게 되는데, 아마 시간이 좀 더 흘러 다시 읽는다면 더 많은 부분에 표시를 남길 것 같다. 그는 실제로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이 그런 재능을 지녔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인용구마다 정말 많은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내 인생은 글쓰기를 향한 열망과 이를 방해하는 온갖 상황이 만들어낸 투쟁의 역사다. (143)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미국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읽히고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이 단순한 시대 묘사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의 본질과 인간 욕망의 보편성을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그의 소설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그 이면의 공허함, 계급 상승에 대한 갈망과 좌절, 사랑과 자아의 분열 같은 주제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공감과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녔다. 이는 문학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한 사회의 정신적 거울이자 교육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술이 공적 가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지인과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말을 많이 남겼다. 다만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작가로서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쓰기는 스스로를 깎는 과정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깍고 나면, 더 앙상하게 벌거벗겨진 아주 작은 무언가만 남게 되는 거지.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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