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야드 악타르(Ayad Akhtar)Homeland Elegies는 허구와 자전적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된 작품으로, 미국 사회에서의 이민자 경험과 정체성의 혼란을 탐구하는 강렬한 서사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야드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로서 그의 가족사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해부한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전형적인 이민자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병 전문의로, 1980년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며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깊이 동화된 인물이다. 교육과 노력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깊이 얽혀 있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여겼으나 9/11 이후 미국 사회 곳곳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노골적으로 깊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야드는 이러한 아버지의 세계관에 반발하며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국에서 완전한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줄 알았던 아메리칸 드림이 궁극적으로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임을 알게 된다.

 

아야드 역시 문학을 통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그는 엘리트 계층과 교류하며 미국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했음에도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사회적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민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은 아야드의 문학적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 월스트리트의 부패, 그리고 미국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애와 우정조차도 인종과 종교,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경험하며,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떠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결국, 이 소설은 아야드가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기회와 배제의 역설을 체험하며,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미국 사회에 내재한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야드는 독실한 무슬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는 단지 외견상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자기인식과 사회적 규정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9/11 이후 미국에서 무슬림은 집단적으로 의심받고 배제당하는 경험을 했다. 아야드의 아버지는 의사로서 미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것을 고려할 정도로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다. 이로써 미국 사회가 내세우는 다문화주의와 포용성이 실질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폭로한다.

 

소설은 또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모순을 깊이 탐색한다. 아야드는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부정을 목격하며, 부의 축적이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아버지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 가치는 물질적 이익보다 뒷순위로 밀려난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 사회가 표방하는 가치(자유, 평등, 기회)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 경제 시스템이 이상적으로 포장된 기회의 땅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과 부패가 만연한 현실임을 강하게 비판한다.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다. 아야드는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가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외부인으로 간주됨으로써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와 이들이 경험하는 배제 사이의 모순을 상징한다.

 

소설은 미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자유와 포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특정 집단(백인 주류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음을 강조한다.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협상하면서도 소속감의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 사회의 정체성과 모순을 이민자의 시선에서 예리하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서사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인종적 편견,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을 철저히 해부하며, 이민자로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복잡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관찰자적 시점에서 미국을 이상화하지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과 배제, 기회와 불평등, 성공과 소외라는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의 미국을 조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 사회가 지닌 본질적인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단순한 이민자 서사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이러한 고민을 예리하고 진솔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편소설 #트럼프 #팍스아메리카나 #홈랜드엘레지 #미국사회 #아메리칸드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