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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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간과되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도서관을 불태워 중남미 역사를 파괴한 정복자들부터 라디오와 소책자를 이용해 유대인 문화를 주류에서 소외시킨 요제프 괴벨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역사를 텔레비전에 방영한 러시아, 소셜 미디어에서 자부심을 느낄 민족 중심적 이유를 찾는 우리의 친구와 이웃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옛날부터 지배층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고 문화의 의미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학자이자 작가인 저자 마틴 푸크너는 오늘날 우리가 벌이고 있는 위의 논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질문을 던진다. 고대 로마인과 2012년 댄스 히트곡 '강남 스타일'을 만든 한국 래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000년이나 차이가 나는 인도의 왕과 이집트의 여왕은 무엇이 닮았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화를 창조하고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문화를 전파하는 청지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연극 및 영어 비교문학 교수인 마틴 푸크너는 수천 년 인류 역사를 통해 있었던 언어, 예술, 음악의 전환점을 강조하며 독자들을 안내한다. 동시에 그는 문화적 차용의 시간, 즉 많은 사람이 보기에 영락없는 도용의 시간을 통한 불변성을 조명한다. 우리는 그와 '문화'의 기원, 교만의 위험성, 인문학의 미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다.

 

문화는 종종 먼 과거와 직면하면서 발전한다. 인간은 네페르티티와 아케나톤처럼 과거를 거부하기도 하고, 그리스의 플라톤처럼 과거를 발명하기도 하고, 과거를 복원시켜 다시 이해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형하기도 한다.” (95)

 

요즘 우리는 인문학의 소멸에 관해 큰 우려를 표시한다. 대학 신입생 가운데 인문학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20%는 되었는데, 요즘은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과를 없애는 추세와 더불어 지원하는 학생 역시 급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자조적인 유행어도 인기를 끈다. 그러고는 이렇게 인문학이 쇠퇴해서야 어떡하겠느냐며 한탄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발전하는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문화의 큰 흐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런 것들을 생산할까? 즉각적인 쓸모가 없음에도 상당한 자원을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컨대 출신 불문하고 정권만 바뀔 수 있다면 혹은 돈만 잘 벌 수 있다면 지도자의 출신 배경이야 아무렴 어떻겠느냐고 했던 우리 욕망의 투사체처럼, 인문학의 쇠퇴는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므로 특수 계층만의 관심거리일 수 없다. 저자는 인문학자들이 이 분야의 흥미로운 점과 중요한 점을 대중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인문학에서 멀어지면 무엇을 잃게 되는가도 빼놓지 않는다. 이 책은 문화를 만드는 종으로서의 인간의 역사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저자는 약 37천 년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이 활동의 깊은 역사이다. 요즘 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구글에서 문화를 검색하면 문화 전쟁, 문화 취소, 문화 전유와 같은 용어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 깊은 역사가 중요하다. 우리가 문화와 관련하여 매우 논쟁적인 순간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은 지난 20년 또는 기껏해야 지난 2세기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현재적 사고방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 논쟁에서 문화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사람이 옳다, 또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 세계만 바라보고 그것에 얽매이지 말자'고 말한다. 전 세계 문화의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논쟁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자는 것이다.

 

로마는 그리스에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지 않았음에도 문화를 수입했다. 또 로마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수입이 영향력은 컸다 해도 사사로운 개인의 일이었던 반면 일본에서는 황제로 대표되는 국가가 문화 전이를 계획했다. 일본에서는 문화 수입이 정부 정책이었던 것이다.” (153)

 

문화의 특성에 대하여 저자가 강조하는 몇 가지 핵심 사항이 있다. 첫째, 문화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문화는 DNA처럼 다음 세대로 자동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저장하거나 전달해야 하고, 저장 매체와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승이 이루어지는 기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가장 초기의 기관 중 일부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일했던 쇼베 동굴과 같은 선사 시대 동굴이었다. 저장과 기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며 이후 동굴에서 도서관, 박물관, 대학으로 점차 이동한다.

 

둘째, 후발 주자에 대한 강조라고 설명할 수 있는 시사점이 있다. 우리 문화는 누가 먼저 무엇을 발명했는지, 독창성과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일종의 자부심이 있는데, 문화에는 항상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점점 더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문화차용도 마찬가지로 이 책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어떤 형태로든 차용과 관련이 있다.

 

셋째, 마지막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이 과거의 문화를 다루고 있지만, 그 과거는 매우 다르며 가치와 우선순위가 다른 딴 세상이라는 일종의 겸손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점을 존중했고 심지어 자신과 다른 것을 다루는 데에도 흥미로워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리스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아랍어 번역가, 기독교인이 아니었음에도 이교도의 과거에 관심을 가졌던 중세의 기독교 서기관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고대를 되살리려는 학자와 작가들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쓰는 용어가 인문주의자이다. 왜일까? 무엇보다도 고전을 배우면 인간다움이 강화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41)

 

이 책은 특히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엘리트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다른 문화를 탐구하고 혼합할 때 이러한 함정을 어떻게 피할지를 묻는다. 제아무리 대학교수라도 손가락을 들어 "모두가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저자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의 전략은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역학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하며, 그것에 대한 일종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식민주의나 민족주의에 대한 암묵적인 입장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화적 전유와 관련된 특정 좌파적 입장이 때때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여러모로 공감하지만, 문화적 전유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모두를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또한 과거에 현재의 기준을 적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판단 없이 과거를 반성하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과거를 그 자체로만 연구해야 한다거나 유리 상자에 넣어두어야 한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과거와 과거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숭배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먼 과거와 마주할 때, 그리고 그 먼 과거와 마주하는 인물들을 마주할 때, 저자는 자기 신념을 배 밖으로 던지지는 않지만 왠지 자기 신념과 의견이 조금 덜 절박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깨닫게 된다. 저자도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총아이기 때문에 세상 모든 곳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역사 공부를 통해 우리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다.

 

문화 차용과 소유에 대한 오늘날의 불안감은 인간 문화를 관통하는 폭력의 역사뿐 아니라 문화의 유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서 생겨나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한류가 바로 그것이다. (426)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지리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문화를 공유하고, 때로는 우연히 유물을 훔치고, 사상과 신념의 흐름이 빨라지고 느려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와 지리 전반에 걸친 문화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공유와 지식 전달의 핵심에는 실크로드라는 무역 연결망이 놓여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저자는 모든 대륙의 다양한 시대와 장소를 살펴본다. 프랑스의 동굴 벽화부터 그리스 연극과 가부키, 케이팝, 불교에서 기독교, 식민지에서 독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일화들로 가득하다. 결론적으로 누구도 문화를 소유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지식 전달을 통해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문화사, 문화인류학 등의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필독을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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