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한국인 학생이 외국 유학생을 만났다. 낯선 이들끼리 어떤 대화가 오갈지 대략 짐작이 가지 않으시는지? 첫 질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Where are you from?’이겠다. 이 시각 이후로 한국인 학생은 이 유학생의 출신성분을 캐내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그의 출신 국가와 한국을 비교하는데 그 기준은 대체로 GDP이다. 대체 한국인에게 일개 유학생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가 왜 그리 중요할까? 상대의 국적이 어딘가에 따라 유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속물근성이라 욕하지만, 굳이 부정은 못한다.

한국인의 정서 구조에서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국가주의다. 자국의 K 리그는 썰렁해도 일본과의 국가 대항전에서는 열 일을 제쳐두고 응원한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 해도 훌륭한데 굳이 금메달 개수에 집착한다. 국외 축구 리그에서 뛰는 모든 한국인은 빠짐없이 국가대표로 인식한다. 선수 개인을 한국의 얼굴쯤으로 여긴다. 그의 실수와 잘못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선수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본국에서 단체로 사과문을 보내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시장 만능주의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그 가치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예컨대 한국과 프랑스의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 자체도 다르다. 빚 없이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중형차를 굴려야 하고 해외여행은 분기에 한 번쯤 가 주시고 현금 10억은 있어야 중산층이다. 직접 할 줄 아는 요리와 운동, 외국어, 교양 위주인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자면 잘 사는 속물쯤으로 보이겠다. 그런데 요즘은 수저의 재질에 따라 일반화된 수저론도 먹힌다.

세 번째는 나이와 재산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위계질서다. 상대방의 나이 따위는 모르고 지내지만 일단 잘잘못을 따지는 유사시에는 나이부터 확인한다. 나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 연식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위아래 순서를 정해야 마음이 놓인다. 알아서 형님으로 모셔 주어야 서로 편하다. 상대와 나의 평등 관계는 영 불편하다. 그리고 대학과 기업은 아직도 군대식 문화에 젖어 상하 관계를 의식한다. 대학생들은 자기를 가르치는 교수보다 학과 선배한테 깍듯하게 대한다.

이처럼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속물에 찌든 한국인의 정서 구조는 여전히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무엇보다 나부터 살기 위해서는 남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한국인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다. 나부터 자신의 몫을 다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국가와 개인을 구별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개인주의가 필요하다. 애국이란 게 별건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닌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평등한 연결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 및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자율적 주체로서의 개인주의와 사회적 연대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그런데, 도대체 이 쓸데없이 성질 고약한 한국인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기질적 특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대선진리교의 교주인 저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어법으로 한국인만이 가진 특질을 한반도의 역사에서 찾는다. 저자가 단군과 고려 현종, 정도전에서 발견한 세 가지를 핵심어로 요약하면 생존, 전쟁, 혁명이다. 단군은 한국인이 살아가는 터를 닦았지만 부동산 투자에는 실패하여 우리가 지금에 이 모양 요 꼴이라고 흉을 본다. 고려 현종은 거란족을 상대로 버티고 버텨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한국인들의 근성을 기초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창업했던 정도전은 한국인들의 특질을 개별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외세를 곁에 두고도 세력권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것만도 신기할 지경인데, 한국인들은 흔히 떼놈이다 왜놈이다 하며 무시하기 일쑤다. 떼놈은 본래 북쪽에서 온 사람 즉 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낮잡아 이르는 말 되놈이 변형된 것으로, 미아리고개의 다른 이름인 되넘이고개는 청나라놈이 쳐들어온 고개가 된다. 북쪽을 가리키는 의 풀이가 지나치게 편협해진 경우다. 되놈을 떼놈으로 부르는 데에는 거란과의 전쟁, 두 차례의 호란을 비롯한 전쟁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사실 한국이 중국에 병합되지 못한 이유는 한반도의 척박한 지형과 기후 때문이다. 이 땅에 뿌리 내린 사람들도 힘들다면 침략자들은 더 힘들다. 지금이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원이 부족하여 쌀농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경 국가였다. 먹고 사는 일 자체로도 힘들었으니 게으른 자는 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일상이 생존의 결과였다. 여기서 근면 성실한 국민성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또한 한국인의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센가. 개뿔 아무것도 없는 백성이지만 억울한 일은 못 참는지라 아무리 나랏님이라도 꼭 할 말은 들어줘야 한다. 백성의 입을 틀어막았다가는 민란이라도 불사할 기세다. 매장을 찾았다가 조금이라도 불편을 겪었다 하면 여기 책임자 누구야 사장 나와라는 기본이다. 이런 콩가루 속물 한국인들이 국채보상운동이나 금모으기 운동의 경우처럼 나라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면 세상에 없는 결집력을 보여준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응원 인파 수십만이 모여 다치는 사람 하나 없이 앉았던 자리를 스스로 청소하고 떠나지 않았던가.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태도의 차이는 연교차가 극악스런 한반도의 기후와 닮았다.

한국인 스스로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을 밝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책은 그래서 재미있다. 역사를 다루는 책은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한국인의 기질 형성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였으니 흥미로우면서도 반박이 불가하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우리를 만들었음을 경쾌한 어조로 밝힌다. 혹자는 이 책을 일컬어 대선진리교 입문서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미 전작 <유신 그리고 유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책을 읽고 늦게라도 팬덤에 뛰어드시길 바란다. (2023-1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