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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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 번쯤은 한밤중에 무서운 꿈에 잠이 깨어 부모님의 침대로 파고들어 가 다시 잠을 청해본 적 있으시리라.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꿈이 아무리 흉흉해도 아이들의 돈 달라는 소리와 아내의 얘기 좀 하자는 소리보다 무섭지는 않다. 아무래도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모양새고, 아이들과 아내가 귀신보다 윗전인 게 분명하다.

 

이 책은 귀신, 귀신 들린 사람 또는 사물을 소재로 재미있게 엮어낸 연작 소설이다. 작가나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치 사슬처럼 앞 이야기의 주연급 등장인물이 뒷이야기의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한날한시 한 자리에 있던 조연급 등장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아마 예전에 환상특급이라는 TV 시리즈가 이런 형식을 취해 중간에 시청을 그만둘 수 없던 기억이 난다.

 

귀신은 아니지만 괴이한 존재를 겪는 인물들도 매우 다양하다. 무표정하지만 굉장히 흔한 인상의 경비원 아저씨, ’인간 연구소직원이자 성 소수자인 찬, 실제로 아팠던 경력을 지닌 연구소의 부소장, 유투버로 재미를 보기 위해 연구소에 위장 취업했다가 혼쭐이 난 이니셜 DSP, 그리고 도저히 귀신 캐스팅으로는 부적합해 보이지만 예지 능력을 보이는 양이 등장한다. 이들은 평범해 보이는 이면 뒤에 비친 사회 비주류 계층이자 평생 일그러진 자화상을 품고 사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동시에 정신적인 평온함을 얻으려 애쓰는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신을 쓸만하고 괜찮은 존재로 여기는 정상적인 사람들이지만, 일단 비치면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는 마법의 거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이들 기괴한 일곱 가지 연작은 대부분 작가의 일상 속 경험을 통해 환상 괴담으로 재탄생한다. 동시에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고 인간과 사물이 뒤섞이는 인간 두뇌의 경계선을 자유로이 오가고 있다. 고대 설화를 배경으로 한 권선징악의 결말 같은 뻔한 예상은 먹혀들지 않지만, 그 오랜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에 와서야 끝을 맺는다. 연구소에 보관된 물건은 정기적으로 햇볕을 쬐어줘야 하며 물건마다 원혼이 깃들어 있어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나름 틀을 갖춰 읽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현대판 전설의 고향 또는 대낮에 듣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쓰면서 정말 재미있는 놀이동산 같다고 말하는 정보라 작가의 신묘한 괴담 <한밤의 시간표>에 한 번 빠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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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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