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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삭 글쓰기 - '원문'과 '대안'이 유형별로 제시된다 / 수필, 자소서, 보고서, 논문의 핵심
백우진 지음 / 사개모개 / 2023년 3월
평점 :
책을 받아보고 처음 펼쳐보는데 갑자기 제본 부분이 훅 꺾어지니 앗~! 이 책 파본 아닌가? 싶었다. 지금까지 접해 본 책 가운데 330쪽 분량이면서 실로 꿰맨 제본은 처음 접해본다. 그런데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편리하다. 접착제 제본의 경우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의 비율이 맞지 않아 둥그레진 책장 가운데를 눌러가며 읽어야 한다. 그런 책은 대개 사진을 찍거나 글씨를 써넣을 때면 두 손을 다 써야 하고 자꾸 덮여 마냥 불편한데, 실로 꿰맨 책은 180도 펼쳐지니 아주 그만이다. 독서대에 올려놓아도 책갈피와 씨름할 일이 없다. 딱 하나 흠이라면 제본의 특성상 책의 어깨 부분이 없어 반드시 이를 가려주고 제목을 붙인 표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쓰기‘ 과목을 담당한 동료 선생님을 찾아갔다. 수년간 책을 읽고 써서 모은 서평 묶음을 보여주며 첨삭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동료 교사로서 첨삭 작업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같은 남성이 아니라 남우세스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나중에야 느꼈지만 그건 참 바보스러운 짓이었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문집이라며 첨삭을 부탁해온다면 흔쾌히 들어주었을 것인가? 참 쉽지 않은 부탁인데 그렇게나 서슴없이 말하다니, 쯧쯧.
인생 최초의 글쓰기 첨삭은 대학 졸업반 때, 국문도 아닌 영문 에세이였다. 당시 외국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온 같은 학과 7년 선배님이 가르치던 교양과목으로 ’시사영어‘를 수강했는데, ’타임‘지 사설을 읽고 다수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에세이를 써내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때만 해도 대개의 과제물은 제출하고 끝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선배 교수님은 일주일 후 수강생 전원의 과제물을 빨간펜으로 불바다를 만들어 돌려주시는 게 아닌가. 영문법에 취약한지라 나 역시 불바다를 면치 못 하리라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창의적인 내용이라며 후한 점수를 매겨주셨다. 더불어 교수님이 첨삭한 모든 글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문이었으며 글자마다 작성자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격려가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통하는 기법’은 글이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필요한 흥미 유발이나 임팩트 던지기 기법을 말한다. 이야기의 흡인력을 좌우하는 주요 기법인 플롯은 소설 외에 수필 등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언론계와 출판계에서 권하는 ‘각 잡아 쓰기’는 글의 전달력을 높여준다. 앵글 맞추기와 프레임 기법을 익혀 적절히 구사하면 글쓰기 고수가 된다. 인용하면 글이 풍성해지고 위트를 잘 도입하면 글발이 빛난다. 종결부는 ‘일의 끝을 단단히 마무리한다’는 뜻의 매조지기로 끝낸다. 2장 ‘짜임새 있고 두서 있게’에서는 글의 구성단위는 문장이 아닌 문단이라 정의한다. 문단은 두괄식과 안내문, 미괄식으로 구분되며 글의 구조를 시각화한 형식이 개조식이다. 3장은 ‘글의 설계와 전개’를 다룬다. 문단은 글의 설계도 격인 아우트라인과 잘 맞물려야 하며 문단 단위로 써야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글의 뼈대를 추린다. 설계에 이어 전개에서 피해야 할 여러 유형을 제시한다. 4장 ‘문장과 문장들’은 ‘접속사를 쓰지 말라’와 ‘단문 위주로 쓰라’는 두 가지 널리 알려졌지만 틀린 지침을 지적한다. 5장은 글쓰기 종류의 책에서 잘 보기 힘든 예로 공들인 보고서라도 중요한 수치가 틀렸다면 다 틀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6장에서는 앞뒤가 들어맞지 않고 심지어 충돌하여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논문과 사실을 외면하고 자가당착에 빠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의 사례를 통해 정확한 글이 나오려면 생각이 정확해야 함을 말한다.
소설가나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글을 써야 하는 경우는 자주 생긴다. 대개는 업무상 보고서이겠지만 저자는 수필, 자기소개서, 논문 등의 핵심이 되는 글쓰기 원리를 알려준다. 마치 내가 쓴 글을 첨삭해주는 듯 원문과 대안을 유형별로 제시한다. 사실 내가 잘 다듬어진 글을 원하는 이유는 남들 앞에 나설 때 말을 잘하고 싶어서다. 훌륭한 연설은 잘 읽히는 글을 소리 내어 말한 결과이기도 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읽힌다면 전달력은 분명 달라진다. 글쓰기 훈련에는 첨삭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하니 저자가 제시하는 지침을 충실히 따르면 될 일이다. 첨삭의 사례로 원문과 대안을 마주 보게 하여 비교가 편리하며, 첨삭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 보다 나아진 글을 확인하도록 구성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기존 예문들의 첨삭을 통해 평소 자신이 즐겨 쓰는 문체나 어법, 구성상의 오류가 있음을 알아채기 쉽도록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초고는 쓰레기이지만 초고를 어떻게 첨삭하느냐에 따라 글의 품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대학생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첨삭 글쓰기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얼굴 붉힐 일도, 계면쩍음도 피해 갈 정말 괜찮은 가정교사가 되어줄 책으로 추천해 드린다.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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