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 싱가포르 - 최고의 싱가포르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해외여행 가이드북, ’23~’24 최신판 프렌즈 Friends
박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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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도착한 다음 날 주롱 새 공원에서 누렸던 여유로운 아침 식사, 말레이시아 국경 철책과 맞닿아 있어 넘어오면 발포한다는 경고 표시가 붙어 있어 분위기 살벌했던 보타닉 가든, 해상 150미터 높이에서 센토사섬으로 들어가며 투명 바닥으로 파도가 보여 무섭던 해상 케이블카, 절대 떠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맨발이어야 입장이 허락되는 신성한 술탄 모스크, 이틀간 먹고 자고 헤엄치다 나온 기억밖에 없는 빈탄섬 호텔 휴양지. 이들은 비교적 신혼일 때 적금을 깨서 다녀왔던 2001년 싱가포르 방문 당시에 들렀던 장소다. 제주도와는 또 다른 남방의 이국적이고 세련된(?) 풍광과 가지각색 모양과 형체를 자랑하던 도심지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걸 여태 기억하는 나를 신통하다 칭찬하면서, 주로 관광 안내원에게서 듣고 보고 배웠던 재미난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라 달라진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참작하시길.

 

싱가포르에는 매일 정오 무렵 20분 정도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쏟아져 길바닥에서 공짜로 세차를 할 수 있다. 말은 소나기인데 간혹 얼음 알갱이도 섞여 있고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실제로 한국의 주유소에 흔한 자동 세차 기계가 싱가포르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이하게도 길바닥에 그 흔한 껌 자국이 전혀 없다. 판매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공항에서 모든 입국자의 소지품 가운데 껌 종류는 압수당한다.

 

국민의 준법정신이 대단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황색 신호등 정지위반 하나 없다. 좀 소름 돋기는 하지만 이는 사실 민간인들 가운데 사복경찰이 섞여 있어 위법행위를 발견하는 순간 현행법으로 체포되고 태형(엉덩이 회초리)을 받기도 한다. 도심지에서 25인승 소형 버스로 이동할 때는 정확히 시속 50km를 유지한다. 기사님에게 좀 더 빨리 가도 되지 않느냐 물었더니 법규 위반에 따른 손해가 너무 커서 그냥 지키고 만다고 답한다. 아무래도 빨리빨리 병은 대한민국 국민병이었나보다. 안내원 양반도 처음 한국에서 갓 도착했을 때 과속 딱지깨나 떼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운전했을 뿐인데 현지인들에게는 자동차경주 선수로 보였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LED 교통 신호등이지만, 2001년 당시는 아직 도입 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맨날 놀러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교통위 위원들이 다녀갔다는 소릴 들은 지 몇 개월 만에 신호등이 지금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햇빛에 반사되어도 잘 보이고 알전구 하나 깨지면 먹통이 되고 교통순경들 근무에 비상이 걸리던 불편함이 사라졌다.

 

공무원에 대한 급여 수준 및 사회적 처우가 매우 양호한 한편, 공무원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까다로운데다 재직 시 엄격한 준법을 요구받는다. 일례로 마법에 걸린 날 어느 여성 공무원이 슈퍼마켓에서 사소한 물건을 슬쩍했다가 적발되었는데, 이튿날 신문 1면에 본인은 물론 시댁과 형제자매들의 신원까지 강제 공개 당했다. 법적 조치로 공무원 파면 징계와 인근 국가로의 도피성 이민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데 대개는 이민을 택한다고 한다. 큰 죄를 짓고도 벌 받지 않는 우리 일부 공무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우리가 볼 때는 개인에 대한 국가의 재산권 침해가 분명해 보이는 사례가 빈번하다. 성인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지만 판매 구입 등의 시기가 5년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고, 5년 이내 기간 중 파손되더라도 무조건 해당 시기에만 거래할 수 있으니 다들 차를 애지중지한다. 싱가포르 전체의 자동차 대수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한번은 신호대기로 죽 늘어선 차량 행렬을 두고 빨간 불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 이를 두고 관광 안내원과 만 원을 걸고 내기했는데 결국은 지고 말았다. 시내 도로가 좁기는 해도 정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다.

 

싱가포르 국민은 누구나 자기 집에서 산다. 아니, 사실은 누구도 자기 집이 아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30년 장기 저리 임대주택에 살면서 매달 아주 저렴한 월세를 낸다.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들이 대를 이어 내니 사실상 종신 임대나 마찬가지다. 전세 제도가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이지는 않다. 부동산 정책이 이 모양이니 집을 사고팔아 돈을 벌자는 생각 자체가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아파트처럼 똑같이 생긴 건물이 단 한 채도 없다. 건축 허가를 내어줄 당시 어딘가 한 군데라도 다르게 설계하지 않으면 퇴짜를 받으며, 심사 기준은 심미성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국가 수입 1순위가 괜히 관광이 아니다. 참고로 수입 2순위는 동서양 해상로의 중간 기착지인 항만 통행료이고 3위는 금융 서비스다.

 

덥고 습한 기후라 대부분 건물에 필로티 구조가 일반적이며 놀이와 휴식 공간으로 쓰인다. 모든 공공건물에 냉방 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재미나게도 눈에 뜨이는 실외기의 상당수에 한국기업 LG의 로고가 선명하다. 세계적인 기업의 냉방 기술력은 어딜 가나 인정받는다.

 

싱가포르는 여성, 특히 기혼 여성에게는 천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웃한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출신의 영어 가능한 젊은 여성들이 가정부로 대거 취업하여 보모 노릇을 한다. 주중 저녁에는 동네 공원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외국 여성들로 북적이는데 서로 국적을 알아보고 민망할까 봐 서로 외면한단다. 주말에는 보모가 남편들로 바뀌고 엄마들은 모임에 나가기 바쁘다. 안내원은 같은 남자이지만 그런 모습은 영 마뜩잖다고 했다. 괜히 독신이겠는가.

 

예전에 삼합회와 같은 무시무시한 조직 폭력배와 정치권이 결탁하여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리콴유 수상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폭 조직을 일망타진한 후 이들을 배에 가둬 태평양에 산 채로 수장시켰다. 5년 후 잔존 조폭을 다시 소탕하여 2차 수장하려 했으나 조폭들이 간청하여 목숨만은 살려주고 오늘날까지 바퀴 셋 달린 자전거 트라이시클 운전으로 먹고살게 해주었다. 얼굴에 문신과 칼 자국난 험악한 대머리 아저씨가 괴랄한 미소와 한국말로 언니 오빠 멋있어를 외치며 도로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모든 차량이 다 비켜준다. 관광 수입 1순위가 우선이라 법규상 어떤 자동차라도 트라이시클에 1차로를 양보해야 한다.

 

관광 안내인이 사비를 털어 싱가포르에서 판매되는 음료수와 두리안을 사주는 바람에 맛볼 기회가 있었다. 달콤하니 톡 쏘는 맛의 음료 기술은 한국이 단연 앞선 상태였지만 입맛에 좋은 게 몸에는 더 해롭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처음 맛본 두리안의 특이한 맛은 잘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신혼부부가 두리안을 먹고 입을 맞추다가 트림하면 이혼당한다는 안내원의 말에 또 뻔한 내기를 할뻔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다녀 찍은 어마어마한 수량의 현장 사진과 알짜배기 유익한 정보로 넘쳐난다. 사진 전문기자가 촬영한 듯 그림의 구도 또한 수려하고 색감이 좋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고려해야 할 모든 조건이 담겨 있어 그야말로 이 책 한 권이면 만사 오케이다. 소장용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여행용 안내 책자로서의 사명에 투철하게 구성된 나머지 차 두어 잔 정도 액면가격에 이래도 되나 미안할 정도다.

 

새로운 경험, 볼거리 먹거리 탈것 외에도 방문지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배우고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여행이라 생각한다. 여행의 재미를 더할 양이면 영어 말고도 현지 언어를 조금씩 배워두면 더 좋을 것이다. 2001년 당시는 패키지에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고 안내 책자는커녕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어 답답한 점이 많았는데, 조만간 장성한 아이들과 함께 싱가포르를 다시 방문할 때는 이 안내 책자를 손에 들고 친절한 관광 안내인이 되어주리라 다짐해본다.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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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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