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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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년 전 이 행성의 아프리카 대륙에 등장하여 수렵채집인으로 살던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전 유라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현생 인류의 선조인 호모 사피엔스는 6~9만 년 전 동굴 밖으로의 여정을 시작하였고 대규모 이주를 통해 각 대륙으로 더 멀리 진출했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달리기도 느려 언제든 야생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유약했지만, 이들은 불의 힘과 협동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여러 차례 혁명을 일으키며 문명 세계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다.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저자는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여행의 1부는 성장의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인류가 오랜 세월 생존 유지형 삶의 덫에 갇혔던 구조를 밝히고, 유럽 위주의 사회가 덫을 벗어나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을 실현했던 힘의 근원을 찾는다. 여행의 2부에서는 지난 200년간 사회마다 발전 경로가 달랐던 이유와 국가별 생활 수준에서 격차가 대폭 확대된 근본 원인을 탐구한다. 이 여행의 시작점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시기이며 이 과정에서 인류의 제도와 문화, 지리, 사회 등 요인을 두루 고려한다. 저자는 세계가 왜 갑자기 그렇게 부유해졌는지,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 왜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하는지를 물으며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원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매우 큰 대뇌피질을 새로운 기술개발에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높아진 인구 밀도는 더 세분된 분업과 전문화를 가능하게 하고 혁신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교육과 혁신을 선호하는 문화적 속성이 더욱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러한 속성을 지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번식할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이는 부가적인 기술 발전에 더 유리한 인구로 귀결된다. 1798년 토마스 맬서스는 사회가 잉여 식량을 생산하면 인구와 소비도 증가하므로 생활 수준이 일시적으로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인류의 생활 수준은 꾸준히 상승했다. 이후 기대수명은 2배 이상 늘었고 출산율은 급감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급등세를 보였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생활 수준의 발전에 대하여, 대부분 기간 소득이 정체된 것은 맬서스의 함정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설명한다. 소득을 증가시키는 기술적 진보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활 수준이 다시 생계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토지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기술 진보의 가속화를 인구 증가와 연결한다. 기술 진보가 가속화됨에 따라 사회는 전환점에 도달했다. 부모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기술을 갖추어야 함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위한 이 값비싼 투자에는 이윽고 출산율 조절이 필요해졌다. 이때부터 인구 증가는 더 이상 기술 진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생활 수준이 급상승했다. 이 논쟁은 경제 발전과 저개발 국가의 문화, 제도, 유전학의 역할로 이어진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저자는 그러나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빈곤의 덫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인 시대의 영양 많고 다양한 식단을 포기하고 개체수 대량 증식에 성공한 인류는 대신 일상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다. 식량 보급 기술의 향상으로 늘어난 인구의 입을 먹여 살리는 데 성공은 했으나, 과도하게 늘어난 인구가 생산성 향상을 상쇄하고 생활 수준을 생존 수준으로 되돌리기까지 인류의 기술 진보는 거침없이 19세기 전환점에 도달하였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적 자본의 가치는 부모들이 자녀를 적게 낳고 양육에 더 많은 투자를 선택하는 지점에 도달하였으며, 늘어난 기대수명은 인적 자본을 훨씬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평균 임금에 근접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갖기 위한 노동임금 포기 비용은 더욱 비싸졌고 출산율을 떨어뜨렸다. 이러한 인구 통계학적 변화와 인구 증가를 훨씬 웃도는 기술적 진보는 물질적으로 풍부한 현재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최초의 원시 도구에서 저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슈퍼컴퓨터로 가는 불가피한 발전이라 설명한다. 동시에 과학전 진보가 왜 세계의 일부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는지를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신석기와 농업혁명 이후 오랫동안 노동자들은 자기 아이들을 일터에 내보내 추가 수입을 얻었고, 이는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여 결과적으로 인구가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가 되자 직장에서는 읽고 계산할 줄 아는 노동자들이 필요해졌다.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많지 않아 일부 기업들은 점차 보편적 무상교육을 위한 운동에 동참했다. 아이들은 더 높은 보수를 받는 직업에 숙련되면서 가치가 증가하는 인적 자본이 되었다. 돈도 벌지 않는 취학 자녀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더 적게 가졌다. 학교 출석률은 증가하고 출산율은 떨어진다. 이런 전 세계적인 현상은 심지어 개발도상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빈곤은 감소하고 있으나 환경 악화의 지속적인 원인이 될 정도로 번영은 증가하고 있다.

 

모든 인류는 6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주 사슬이 갈라지는 각 지점에서 인구 일부만이 이동을 선택했다. 인구의 하위 집합은 집단 전체보다 덜 다양할 가능성이 컸고 멀리 이동하는 무리일수록 더 동질적이었다. 최근 몇 세기 전 가장 높은 수준의 다양성은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고 가장 낮은 수준의 다양성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었다. 다양성은 사회적 응집력을 감소시켜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지만 전문화와 혁신을 촉진하여 성장을 증가시킬 수도 있으므로 중간 수준의 다양성을 가진 지역의 경제 발전 수준이 가장 높았다. 지리 또한 경제 발전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집트 북부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곡물과 동물을 가장 쉽게 길들였고, 장벽 없는 유라시아의 동서 이동은 농업 기술의 확산을 촉진했다. 초기에 가축을 길들인 개체군은 감염성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해졌다. 다양성과 지리는 지역 경제 차이의 핵심 동력이었고 문화와 정치는 그보다 더 작은 역할을 했다.

 

경제 발전은 기술 혁신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사회와 진화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주도된다. 세계적 불평등은 이주 거리, 지리, 질병, 문화, 정치제도의 다섯 가지 요소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280페이지에 달하는 간결한 텍스트로 다루고 있다.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류의 역사라니, 독자들은 무언가 배울 것이 많고 흥미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초 장기적 관점은 역사의 원동력을 각각 수천 개의 그럴싸한 에피소드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해저의 거센 물살을 모른 채 파도에 휩쓸리면 표류하기에 십상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인류의 여정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늘날 인류의 번영은 축적된 기술 발전에서 비롯되었으며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왜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를 묻는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는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들어보자. 유럽은 교육에 대한 투자 증가와 성별 임금 격차의 감소로 인해 19세기에 빈곤의 덫에서 벗어났다. 이탈리아의 상업 혁명은 11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1000년에 유럽의 인구는 본질적으로 천 년 전과 같았고 현재의 인도나 중국 인구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유럽은 또한 중국, 특히 이집트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보다 더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덜 발전했다. 기술 발전과 인구 밀도의 선순환이 경제 성장의 근본 원인이라면 유럽은 뒷전으로 남았어야 했다.

 

저자는 경제적 도약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흔한 이유를 인용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산업혁명은 재산권과 상업 계급의 정치적 힘을 보장했으며, 유럽 대륙 개신교 지역의 종교 개혁은 더 높은 수준의 문맹률과 기업가정신으로 이어졌다. 계몽주의는 과학과 기술 진보에 유리한 냉정한 사고방식인 경험을 장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문화적 요소들은 모두 16세기와 17세기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1500년경 도시가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되면서 유럽의 낮은 농업 생산성이 유리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유럽이 앞서 50년 동안 상업 부문에서 번성하는 자치 도시 국가를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저자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등장하는 모든 왕과 왕비들은 잠시 등판했다 사라지는 선수들일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영악한 머리로 산업혁명을 예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천 년 전에 일어났을 수도 있고 천년 후에나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18세기 유럽의 춥고 습한 영국이라는 섬나라에서 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기와 장소에 영향력을 행사한 요인과 배경부터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왜 11세기부터 소수의 이탈리아 도시들이 지중해 무역의 번창하는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결국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잉태하여 후세의 발전을 이룬 기반을 마련했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의 공로는 단순히 과거를 잘 해석한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류 역사의 숨겨진 동력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도전, 즉 기후 변화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 해결책은 인류를 오늘에 이르게 한 추동력에 기대를 걸어보는 데 있다. 출산율 하락, 즉 인구 감소는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설계하는 기술 혁신에 필요한 시간을 벌면서 우리 종의 환경적 영향을 줄여줄 요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이러한 요소들로 이 기후 위기를 사라져가는 기억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혁명적인 기술의 발전을 제때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인류는 어떻게든 기후 변화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지금으로부터 천년 뒤쯤 후손의 눈에는 우리 모습이 원시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의 오랜 이야기가 중단 없는 기술 진보의 행진이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저자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리라는 점이다.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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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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