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발견 - 믿는 것이 현실이 되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한나 옮김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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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5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한참 훈련받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복통에 잠이 깨어 고통을 호소하자 조교들은 나를 의무실로 옮겨주었다.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잠이 덜 깬 시큰둥한 표정의 의무병이 약을 건네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토끼 똥처럼 까맣고 동글동글한 환약 대여섯 알을 삼켰다. 이제 곧 나아질 테니 눈을 좀 붙여두라는 말을 뒤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복통은 씻은 듯 사라졌다. 사실 그 명약의 정체는 의무병들이 만병통치약이라 부르던 소화제였다. 순간,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았다.

 

마음은 제자리에 머무르며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존 밀턴, 실낙원Paradise Lost

 

1970년대 후반 라오스에서 이주해온 수십 명의 건강해 보이는 허몽 족 청년들이 수면 중 연달아 사망하기 시작하자 미국 의료 당국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현상을 원인불명 야면 돌연사 증후군이라 불렀는데, 조사 결과 놀랍게도 사망 원인은 그들의 전통 주술(呪術)이었다. 밤이면 돌아다니는 사악한 악령 다초(dab tsog)가 희생자의 가슴에 올라앉아 죽을 때까지 입을 틀어막기 때문이었다. 악귀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던 무당과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환경에 당황스러웠을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흔한 심장 부정맥이 악화되어 결국은 심장 마비를 일으킨 것이다. 악령을 막을 수단이 없다는 믿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기대 효과가 있다니.

 

과학 작가 데이비드 롭슨은 주술 따위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을 연민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기대와 믿음은 아무리 비이성적일지라도 건강, 행복, 그리고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예컨대 우리가 노화 현상 때문에 인지능력 저하를 피할 수 없고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리라 우려한다면 청력 상실, 허약함, 심지어 알츠하이머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비관적인 태도는 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염증을 유발하고, 결국 다양한 장애의 원인이 된다. 대조적인 사례로 100세 이상 노인들이 많이 사는 사르데냐에서는 가정마다 활동적인 일상을 서로 격려한다. 불면증에 걸린다고 자기암시를 반복하면 결국은 불면증을 겪고, 장수한다고 믿으면 결국 장수한다. 좋든 나쁘든 한마디로 말해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흔히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단지 마음가짐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플라세보(placebo) 효과는 18세기 이전부터 발견되었으며, 통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몰핀이 부족해지자 의사 헬리 비처가 몰핀을 가장한 식염수를 병사들에게 투여했는데, 병사들이 통증 완화를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플라세보는 라틴어로 만족시킬지어다(I shall please)’라는 의미로, 약효가 없는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가 복용했을 때 환자의 병세가 나아지는 것을 말한다. '위약'을 복용한 뒤 촬영한 뇌 영상을 관찰해보니 진짜 약을 먹었을 때와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 플라세보 효과는 환자가 약이 병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을 가진 경우 병세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어서 만성질환이나 심리상태에 영향을 받기 쉬운 질환,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적합한 치료 방법으로 알려졌다. 다만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플라세보 효과만을 맹신하여 실제 치료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반면 치료 효과가 있음에도 믿음이 없으면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라틴어로 해로울지어다’(I shall harm)를 뜻하는 노세보(nocebo)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올리케 빙겔 박사가 진통제 정맥주사를 계속 주사하면서 환자에게 진통제 투여가 끝났다고 말하자 환자의 통증이 급상승하고 뇌에도 관련 반응이 일어났다고 한다. 노세보는 무해하지만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꽃밭 사진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미를 보고도 천식이 생기는 알레르기 환자는 그것이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기가 생긴 것으로, 꽃 사진과 플라스틱 장미가 노세보에 해당한다.


운동량이 많은 직업군의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어 A그룹 사람들에게만 지금 하는 일의 양이 하루 30분 동안 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알려줬다. 한 달 후 그들의 혈압과 체중을 측정한 결과 운동 효과가 있다고 말해준 A그룹 사람들의 혈압과 체중이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만일 실제 효과는 없어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증세가 호전되거나, 반대로 효과가 있음에도 효과가 없다는 생각으로 증세가 나아지지 않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저자는 기대 효과의 다른 이름을 긍정의 힘이라 말한다. 저자의 기본 논제는 우리의 기대가 우리 삶과 건강,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성공과 건강이 멀어져 수명이 단축될 것이고,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뭐든 잘 해낼 가능성이 커져 건강을 즐기고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룰 것이라 주장한다.

 

이 책을 접한 독자의 내면에는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이 부딪칠지도 모른다. 첫 번째 반응은 이 책 내용이 한때 인기몰이 도서였던, 론다 번의 <The Secret> 학술적 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루기 힘든 것을 바라기만 해도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줄 거라는 유사 과학이자 허황하고 위험한 전체론적 접근법(New Age) 말이다. 두 번째는 실제로 매우 타당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플라세보 효과와 그 반대인 노세보 효과는 성문화된 사례도 탄탄하고 현실 세계에서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을 읽는 접근법에 유의해야 하며, 절대로 'The Secret'의 다른 어떤 버전도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반응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대는 모름지기 믿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혹자는 이런 기대 효과가 앞서 언급한 라오스의 허몽족처럼 덜 문명화된 사람들 사이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명사회에서 발생한 믿기지 않는 놀라운 사례도 있다. 2006년 포르투갈에서 유독 청소년 300여 명이 원인불명의 어지럼증, 호흡 곤란, 피부 발진 증세를 보였다.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TV 드라마 <설탕 뿌린 딸기>를 보고 있던 십대들이 감염증상을 일으켰다. 실제 그 바이러스는 허구였는데 일단 소수가 증상을 보이자 십대들 사이에서 진짜 질병처럼 퍼져나간 것이었다. 집단 심인성(心因性) 질환에는 인위적이거나 공상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 이는 그저 사회적 자극에 민감한 우리의 마음과 예측 기계가 위험한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지만, 타인의 존재가 우리의 마음은 물론 신체적인 변화까지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신체적 영향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바로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마법처럼 행복해지고 성공을 거두리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부정적인 믿음도 이와 동급으로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고 여길 필요 역시 없다. 저자는 우리가 충분히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 것을 여러 번 경고한다. 그것은 마음속에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책임감 있는 인식이 우리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현실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의 행복을 지배하는 믿음과 기대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신체, , 그리고 문화는 어떤 상호작용으로 자기충족적 예언을 만들어내는가? 이처럼 매력적인 발견물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믿음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심오한 방식으로 형성하며, 기대를 재설정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의 건강, 행복, 생산성에 정말 놀라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불안과 우울증에 대한 기대를 재설정한 방법과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공유한다. 이 책은 기대가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전 세계의 연구와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반적 의미의 낙관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닌, 우리가 늘 사건에 부여하는 의미와 바로 그 의미에 대해 갖는 구체적인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목표는 우리가 더 똑똑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스트레스 덜 받고, 더 행복해지도록 기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와 더불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기대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는 일종의 예측 기계이다. 대부분 이런 시뮬레이션은 객관적인 현실과 일치하지만, 때로는 물리적인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과 괴리가 생길 수도 있다.”

 

예측은 우리의 시각, 미각, 청각 등 감각기억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인식과 경험은 종종 감각적인 기대의 산물이다. 불행히도 뇌의 편견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 좋든 나쁘든 예측은 언제나 작용한다. 치료제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실제로 우리의 기분을 더 좋게 해주는 생리적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노세보의 기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은 왜 어떤 이들은 자가 치유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이들은 비슷한 조건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악화되는지를 설명한다. 이처럼 우리는 치료 효과가 있다는 말만 들어도 호전되고, 단순히 질병 증상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부정적인 믿음이 신체의 중요한 기능을 방해하고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역미러링 효과로 사람들은 기대에 의한 죽음을 겪을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다고 이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도록 부채질할 뿐이다.”

 

저자는 또한 운동을 시작하고 꾸준히 지속하는 탁월한 방법을 다루며 성공을 달성하는 데 기대가 가지는 역할을 설명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몸과 함께 정신을 단련해야 한다. 우리가 운동을 지속하거나 최고의 건강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진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재구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수많은 마음의 속임수를 제시한다. 또한 우리는 먹거리 종류와 먹는 방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몸은 섭취한 양분을 채 흡수하기도 전에 다시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기억해야 속이 든든하다고 강조하며 음식과의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다른 가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한다.

 

우리의 지적 성과는 우리가 가진 신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을 똑똑하다고 여기는 방법과 연구가 제시되며, 우리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IQ를 높이고, 기억력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별, 인종, 빈곤 등에 연관되는 제도적 장벽과 고정관념의 피해를 지적한다. 자신감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시각화와 긍정을 추천한다. 기대가 세포의 생체 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노화 과정에 대한 믿음이 실제 나이만큼 장기적인 건강에 중요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만성 염증과 노화 상태를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아직 나이가 많지 들지 않았다는 믿음,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기,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등을 제시한다. 이처럼 독자들이 자기 경험을 재구성하고 긍정적인 기대를 만들어냄으로써 삶을 향상할 방법으로 가득하다. 각 장의 끝부분은 우리가 시도하는 인생의 변화가 얼마나 크든 작든, 성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만드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저자는 다음 세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우리의 마음은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신경 가소성(plasticity)이 있어 기대 효과로 인해 뇌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기대 효과는 우리가 겪는 느낌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을 조정함으로써 얻는 것이지, 느낌 자체를 즉시 달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자기 자신을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자. 스스로를 탓하고 마음가짐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마치 인생의 실패처럼 여기는 일은 반드시 피하자. 더 나은 방향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기자비(自己慈悲 자신을 고난에 빠뜨리는 여러 요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마음가짐)의 태도가 필요하다.

 

끝으로 저자는 이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단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라는 햄릿의 대사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연상시키는 인용으로 긴 글을 맺는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늘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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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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