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의 기쁨
남유하 저자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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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의 기쁨(남유하 지음)

  

세상에서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해 느끼는 공포보다, 어쩌면 상상으로 그치고 말 일이 실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 본 적 있으신가. 불과 몇 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다들 곧 죽을 것처럼 위기의식에 몸서리를 쳤지만, 감염되어 한 차례 씩 호되게 증상을 겪고 난 요즘은 초창기만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느끼는 공포심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생존 의지를 불태우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기괴하고 불온한 상황을 설정하여 소설의 소재로 채택한다면 어떨까. 본래 이런 소재의 작품은 책을 덮는 느낌이 개운치 못해 꺼리는 편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호러 장르를 접해보았는데 나름 신선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생각해 보니 호러 장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의외로 많다. 우선 현실 속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데에서 전율과 재미를 제공한다. 둘째,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셋째,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넷째, 날로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풀고 정신 승리를 거두는데 이만한 게 없다. 시체가 살아나 멀쩡한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여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지니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외계 행성을 정복하면서 원 없이 총질해보고, 부하 직원이 상사의 목을 단칼에 날리고,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이 뒤집혀 아메바가 공룡을 집어삼키고, 여덟 살에 마법 학교에 입학하여 평생직업을 찾기도 하고,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괴물을 무찔러 당대 최고의 미인을 차지하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 책은 현실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열 편의 기괴한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한 작가가 쓴 단편 소설 모음인데 이 가운데 두 편은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 배우자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고, 전문가의 손을 빌어 남편의 신체를 양꼬치로 만들어 먹고, 뇌수술을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자신만의 환상 세계에서 살아가고, 남편의 후배를 세입자로 맞아 기이한 동거생활 끝에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고, 피해의식과 팽팽한 긴장 끝에 여동생이 언니의 인생을 끝장내고, 좀비가 되어가는 타자에 이은 감염으로 자기 소멸을 관찰하고, 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외계인과의 극적인 화해로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룬다. 누군가는 비도덕적이고 황당무계한 소재라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열린 마음의 독자에게는 두 시간을 책임져 줄 한국판 환상특급이다.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의 <Enter the Sandman>의 가사처럼 잠들 때 베개를 꼭 쥐게 만드는 호러 장르의 애호가는 아니더라도, 저자가 어릴 적 겪었던 즐거운 악몽과 함께하고픈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해드린다.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평온해지는 기괴 발랄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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