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 예의 바른 무관심의 시대, 연결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이점들
조 코헤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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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서로를 밀어내게 한다. 만약 우리가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처럼 자랐다면, 아마도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길러졌을 것이다. 낯선 어른들로부터 대화는커녕 건네오는 사탕을 받아들지 말라는 부모님의 경고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위험하다는 비디오를 보게 했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심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사람들이 정착지에서 살기 위해 모인 이후로, 우리는 외부인들을 배반과 혼돈의 위험한 주체로 보아왔다. 이 두려움은 마을, 도시, 국가의 등장에도 그대로 지속되었다. 소수 민족은 다수 민족보다 적다는 이유로, 이방인은 정착민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아 왔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만약 미국의 조지아주 해리스 카운티로 도로 여행을 간다면, 지역 보안관이 2018년에 세워둔 표지판에 동네 주민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고, 살인죄는 살인으로 다스리며, 감옥 한 채에 356개의 묘지가 있다며 즐거운 여행 되시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우리와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날의 문화적, 정치적 소외 풍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널리 퍼진 이민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강한 반이민 정서가 드러난다. 두려움과 적대감은 종종 전쟁, 기근 또는 기후 변화에서 탈출하고 있거나 단순히 더 나은 경제적 전망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한다. 경직되고 양극화된 정치적 입장은 이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악화시킨다. 우리는 대조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그들을 우리의 치명적인 적으로 치부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역감정의 개미지옥으로 빠져들고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진다.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 발발을 계기로 우리는 위험스럽게 많은 시간을 혼자 있게 되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는 외로움이 전염병 수준에 도달한 나머지 고독을 담당하는 행정부서가 생겨나기도 했다. 외로움은 흡연만큼이나 우리의 건강에 위협적이다. 혼자 외로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고독사가 최근 급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의 중견 언론인으로 Medium, Esquire Republes 잡지사의 최고 편집자 자리를 역임했으며 그의 글은 에스콰이어, 뉴욕 매거진, 보스턴 글로브, 뉴요커, 와이어드, 뉴 리퍼블릭 등의 잡지뿐 아니라 여러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 베테랑 저널리스트는 인류가 절망적인 전쟁 부족의 집합이라는 완고한 인식에 맞서기 위해 진화생물학, 심리학, 신학, 인류학, 정치학을 두루 섭렵한다. 실제로 우리는 초협동종에 속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가 왜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지, 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방인들이 문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세인트 루이스, 런던, 헬싱키를 여행하며 인터뷰를 통해 낯선 사람들과의 유대감 기술에 관한 전문가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조언으로 무장하고, 무작위 상호작용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가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권장하는 이유를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우리에게 이롭다

저자가 만난 라스베이거스 출신의 간호사 이름은 닉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님은 정서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학교 친구들은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당연히 그녀의 인생도 뒤틀렸고 모든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10대 시절에 이 본능을 거스르고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고 수용적이며 자신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는 그것이 덜 외롭고, 더 행복하고, 더 희망적임을 알게 되면서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이어왔으며 오늘날과 같이 좋은 삶을 누리게 된 원천이라 인정한다. 널리 밝혀진 바와 같이 과학자들은 이러한 효과가 닉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버스나 지하철, 대기실, 커피숍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도록 요청받은 일련의 실험에서 심리학자들은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행동이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덜 외롭게 해주며,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와 친밀감을 높여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는 우리의 인지 기능을 향상시켜 사실상 더 똑똑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긍정적인 연결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2. 낯선 사람의 정체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이로운 것이라면 더욱 권장되어야 옳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이방인을 만남으로써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부터 계급이나 인종에 대한 더 부정적인 이유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해답은 많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낯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또는 우리만큼 인간적일까 하는 의문에 완전한 확신을 얻지 못하기에 대화를 꺼리게 된다. 낯선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심리학자 니콜라스 에플리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는 낯선 사람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제로 볼 수 없으므로 그 안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의 지능, 의지력, 그리고 자존심, 당혹감,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만성적으로 과소평가한다. 이것은 모든 낯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만, 분쟁의 시기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비인간화하라고 강요할 때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이유로 대화를 시작하기가 더 쉬우며, 우리 앞에 서 있는 다른 생명체가 사실 복잡한 사고, 풍부한 생명력, 독특한 관점, 그 외에도 얻을 게 많은 완전한 인간임을 알게 되고 기뻐한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사소한 성과에도 큰 기쁨을 얻게 된다.



 

3. 대본에서 벗어나기

우리는 사람들과 교류할 때 종종 대본을 사용하는데, 이는 실제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동네 편의점에 간다고 치자. 계산원이 "잘 지내세요?"라고 말을 건네온다. 내가 "잘 지냅니다. 당신은요?"라고 말하면 그는 "잘 지내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이러면 대화가 아니라 잘 짜인 대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체적이고 진실한 답변으로 대본에 있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이 대본을 깨는 것이다. 계산원이 "잘 지내세요?"라고 말한다. “저는 10점 만점에 7점이라 할 수 있죠. 그쪽은요?” 이러면 계산원은 약간 당황하게 된다. 이런 답변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인간은 대화할 때 서로의 선례를 따르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역시 점수로 답을 한다. “저는 8점이요.“ ”7점에서 9점이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이쯤 되면 계산원은 달콤한 군고구마나 시원한 캔맥주를 권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정해진 듯한 틀에서 벗어난 대화가 시작되고 낯선 이들과 대화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얻는 길을 가게 된다.



 

4.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인류 문명의 초석

12,000년 전, 인류가 먹이활동을 수렵채집에서 농사로 전환했을 때, 전직 사냥꾼이던 남성 대부분은 갑자기 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DNA를 연구하는 영국의 고고학자 마틴 존스에 따르면, 이 게으름뱅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황야로 떠나면서 방랑자가 되었다. 농업시대 이전에는 그리 멀리 이동하지 못했을 테지만, 새로운 정착지의 존재는 중간 기착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어느 낯선 남자가 정착촌에 접근한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음식과 쉴 곳이 필요하다. 정착촌 사람들은 낯선 그를 경계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위협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른 재주가 있거나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잠재적으로 좋은 동료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긍정적인 연결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말처럼 낯선 사람들과 정착민들은 위협과 기회를 조화시킬 방법을 고안해야 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환대라고 일컫는 행위를 통해 실현했다. 정착민들이 낯선 사람을 데려와 음식과 피난처를 제공하고 그에게 일종의 빚을 지게 하는 한편, 낯선 사람은 대화를 통해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 존재이며 정착민에게 내어놓을 만한 정보가 있음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일단 양측이 편안해지면, 호의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결국, 환대 덕분에 사회 연결망이 폭발하듯 증가했고 인간은 갑자기 그 어느 때보다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마틴 존스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환대는 다름 아닌 문명의 초석이 되었다.



 

5. 마찰은 우리를 사교적으로 만든다.

왜 어떤 지역은 낯선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한편 다른 지역은 냉랭할까? 처음에는 정말 사회가 안전하고 국정이 잘 운영되는 나라가 가장 우호적일 것이라 여겨졌다. 낯선 사람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그 반대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노르웨이와 멕시코에서의 삶을 비교해보자. 노르웨이 사람들은 국가가 매우 원활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애써 찾아 의존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하루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국가 기능이 열악한 멕시코에서는 일상적인 교류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들에게 말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고 방향을 물어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 사이의 마찰은 사람들이 친절해지도록 강요한다. 마찰의 또 다른 해소 방식으로 웃는 문화현상이 있다. 오랜 이민의 역사를 지닌 지역의 사람들은 동질적인 사회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친근하고,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서로에게 더 잘 적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보다 L.A.에서 낯선 이에게 말 걸기가 더 수월한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 세기 동안 이러한 문화권의 사람들은 그들 앞에 있는 낯선 사람이 현지 언어를 말할 수 있거나, 문화적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친근함을 표시하는 소통 방법을 찾았고 그들은 더 많이, 더 활기차게 웃는 법을 택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말 건네기는 생활이 아닌 생존법이 되었다.

 

결국, 낯선 두 사람을 한 방에 넣는다고 해서 금방 친해져 이질감이 사라지고 산적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이질적이어도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좋아할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속에 파인 웅덩이를 함께 메울 수도 있다. 그리고 함께해낼 수 있는 다른 많은 일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세계시민주의를 실현하려면 먼저 우리는 사람 사이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것이고,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언제쯤 완성될지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 낙관한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지금 바로 주위의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 환대를 실천해보자.

 

#인문 #낯선사람에게말을걸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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