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클럽연대기 - 조용한 우리들의 인생 1963~2019
고원정 지음 / 파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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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국동란이 끝나고도 십여 년이 흘렀지만 남과 북이 한참 서슬 퍼런 이념의 냉전 시대를 관통하던 1963년부터 시작하여 비교적 최근의 오늘에 이른다. 제목이 연대기인 만큼 일어난 일을 시간 순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저자보다 한참 늦게 태어나 75년에 국민학생이 된 필자에게 이 작품 도입부의 시대적 배경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1963년이면 아무리 인심 후하다는 시골에서도 막걸리 술안주로 대통령을 흉보던 누군가가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돌아오더라도 아주 몹쓸 지경이 되곤 하던 때다. 국민학생은 시험을 쳐야 중학교에 진학했고, 집안의 장정 한둘쯤은 국가 시책으로 월남에 파병되는 누군가의 삼촌이자 아들이자 남편이었으며, 극장에서는 상영작 앞머리마다 대한늬우스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고등학교에는 예비역 장교가 상주하며 교장 부럽지 않은 위세를 부렸고 유사시 남학생은 총알받이로, 여학생은 위생병으로 전방에 투입될 운명이었다. 북한의 가정에서는 김일성 사진을, 남한의 가정에서는 박정희의 사진을 안방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올리던 때였다.

 

가장 큰 도시인 서울에서도 통행금지가 있었고 이를 어기다 걸리면 파출소에 잡혀가 유치장 찬 바닥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 했다. 장발족 청년과 미니스커트 처녀는 단속하는 경찰을 피해 다녀야 했고 저녁 여섯 시면 어김없이 울리는 애국가 사이렌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서 있곤 했다. 그러던 시대에 구국의 열사 김재규 장군의 총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러지자 철부지 동생은 다음 박정희는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17년간의 장기 독재로 그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대통령이었다. 그는 파월 장병들에게 지급할 월급을 중간에 가로채 비자금을 만들어 후대에 남겼고, 낮에는 새마을 운동에 한창인 농촌에서 모내기에 막걸리를 걸치는 성군이었지만 밤이면 딸 같은 여대생을 곁에 앉히고 양주를 마시다 심복에게서 최후의 심판을 받았다. 민간에 정권 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대통령을 가업으로 만들려던 군부독재 유신은 그렇게 무너지는 듯하더니 또다시 신군부에 의한 독재를 이어갔다. 물질에 매몰되고 반공 이념에 피폐해진 정신세계는 생각 못 하면서 웬만큼 먹고살게 해주어 기본권 문제를 해결해주었다며 아직도 박정희와 그의 딸을 그리워하더니, 군부가 사라지자 이제는 부자를 편들며 왜 나는 늘 가난한가 한탄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하 수상한 시절을 함께 출발했지만 수십 년 세월이 지나 생긴 틈새를 함께 메웠거나 더 이상 메울 수 없게 된 한 동네 초등학교 아홉 동창생과 이들을 지켜보며 세월의 증인으로서 기록을 써 내려온 주인공 문인호의 인생을 일인칭 시점에서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집안 내력을 이해하려면 가계도를 그려가며 요약할 필요가 있을 만큼 많은데, 저자는 이를 전설이라 칭한다. 모두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는 장치로 설정하였다.


초등학교 강창성 선생의 제안으로 이들 동창생은 샛별 클럽을 만들게 되고, 졸업을 기념하여 10년마다 학교 운동장을 찾기로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다섯 번째에는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못한다. 강창성 선생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 동창들의 어린 시절 순수함은 일찌감치 이념의 희생자가 된다. 예컨대 일명 반공 소년으로 웅변대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장윤태는 자신들의 선생님과 친구들을 빨갱이라 고발하여 샛별 클럽을 와해시키고, 커서는 공안 검사가 되어 유신체제에 반대하던 동창의 죽음에 일조했으나 목회자로 거듭난다. 군 장교가 된 박광도는 정치 사상범으로 몰린 의리의 주먹파 김광춘을 죽음으로 몰았으나 이후 정계에 발을 디뎠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마치고는 고향의 발전에 공헌한다. 천재라 칭송받던 한요섭은 머리가 뛰어난 만큼 비범한 삶을 살지만 제 생각과 재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고민 끝에 자동차로 공덕비를 들이받는 정면 대결을 택한다.

 


한요섭의 죽음에 이어 주인공 문인호는 군대 시절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사병 문인오의 사망에 연루되어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사건의 진실을 부정 또는 묵인함으로써 역설적인 편안함에 몸서리친다. 목숨을 부지하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게 되는 친구가 거의 없는, 이런 격변의 시대에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기록을 전달하며 역사의 증인으로 남는다. 주인공의 지배적인 감성은 누군가 자기 뜻을 펼치게 되면 반드시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읽힌다. 그러나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그가 평생을 짝사랑하던 여자 동창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는 드디어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동창을 통해 파란만장한 인생의 보상인 인정과 구원을 얻는다. 오랜만에 문단으로 돌아온 고원정 작가의 흡입력 넘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에 가려 정작 국민은 대우받지 못했던 해방 이후 세대의 애환과 그 시절을 관통했던 주인공의 발자국을 통해 숨죽여 살아야 했던 선배 세대의 아픔을 진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소설 #샛별클럽연대기 #민주화 #근대화 #고원정 #과거를돌아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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