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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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ain't nothing but a heartbeat away,

I'm living life, do or die, what can I say

I'm 23 now, but will I live to see 24

The way things are going, I don't know

 

죽는 건 아무것도 아냐 바로 곁에 있을 뿐

죽든 살든 내 인생 사는 거야, 무슨 말이 필요해

이제 스물셋인데 살아 스물넷을 볼 수 있을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잘 모르겠어.

 

< from Gangsta’s Paradise by Coolio >

 

1. 줄거리

저자 하킴 올리세이의 어릴 적 이름은 두 개였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는 수학과 과학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끊임없이 사물의 개수를 헤아리고 물건 분해하기를 좋아하며 종종 소심한 겁쟁이로 오해받는다. 또 다른 소년 릴 제임스는 망가진 가정과 떠돌이 생활을 비롯해 사촌들의 펀치력 측정용 샌드백 역할 등 수많은 고난에 직면하며, 이스트 뉴올리언스, 휴스턴의 서드 워드,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왓츠 거리에서 먹잇감을 노리며 배회하는 갱 단원들을 피해 숨어다니기 바쁘다.

 

지식에 목마른 하킴은 끊임없이 책을 찾아 탐독하며, 그의 어머니가 없는 돈을 털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 세트를 들여놓았을 때 뛸 듯이 기뻐한다. 그가 열 살 때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책은 다 외우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교수님이라 불렀다. 영특한 머리로 한 학기 동안 배울 교과서 내용을 하루 만에 다 읽어내니 학교 수업이 따분해져 선생님들께 딴지 걸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6학년 당시 그는 학교 검사에서 IQ 162의 천재로 인정받았으나, 권총을 소지한 채 마리화나를 파는 용돈 벌이에 나선다. 결손가정에 불안정한 수입으로 생활 터전이 반복적으로 뽑혀 나가면서 그는 미국 전역의 가장 힘든 도시 지역을 돌며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미시시피주 시골에서의 청소년 시절, 그는 동물 사냥법을 배우고 가족 사업을 위해 마리화나를 재배-밀매-청소하는 일을 한다. 이 지역의 나이 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나이 불문하고 모든 백인 남녀를 아직도 마님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소문난 문제아였던 그는 훈육이란 더 큰 처벌을 불필요하게 만들어주는 훈련이라는 개념을 심어준 훌륭한 음악 선생님을 만나 수자폰 연주법을 배우고 밴드에 합류한다. 이미 5학년 때 물리학에 반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친구가 되고팠던 그는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터득하고 특수 상대성 이론의 개념을 게임으로 코딩하여 미시시피 주립 과학 박람회 물리학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다.

 

대학 진학자금이 궁해진 그는 공부도 하고 핵 기술자도 될 수 있다는 말에 해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2년 후 아토피 피부염 진단을 받으면서 선상 근무 부적격으로 강제 전역당한다. 친구의 권유로 미시시피 잭슨에 있는 투갈루 대학에 등록하였으나 그의 뛰어나지만 엇나간 능력은 마약쟁이라는 오명을 안겨주었고, 동료 학생들에게 마리화나를 팔던 그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소중한 시간과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서 결국 심각한 마약 의존증 환자가 된다. 그의 이중생활은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스탠퍼드 대학의 대학원 물리학 프로그램에 합격하는 와중에도 계속된다. 그의 아내와 멘토의 도움으로 그는 결국 내면세계의 악마들을 만나 결판을 짓고, MIT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중책을 맡는 천체물리학자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우여곡절과 때때로 드러나는 인간성의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창조하면서 그의 반전 넘치는 이야기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2. 퀀텀 라이프의 의미

우리는 믿기지 않는 험한 삶을 살아낸 하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그가 얼마나 놀랍도록 훌륭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거둔 성공의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낙후된 미국 남부지역의 빈곤한 삶 속에서도 튜바 연주자가 되고, 지역 흑인 대학에 진학하고, 십 수년간의 마약중독에서 벗어나 재활치료에 성공하고, 마법과도 같이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자신과 같은 빈민촌 출신 학생들을 위해 후학양성에 헌신하는 학자로 변모하는 경우의 수야말로 양자가 양자 터널을 빠져나오는 확률만큼이나 드물기 때문이다. 책 제목 퀀텀 라이프는 하킴의 인생 역전과 인간 승리를 지극히 희소한 확률이지만 무한한 반복과 시도 끝에 결국 터널을 벗어나는 양자에 빗대어 지은 것이다.

 

특징적으로 이 책은 만성적 빈곤, 인종차별, 교육 기회의 박탈, 마약중독, 부서진 가정, 무너진 공동체 등 하킴을 비롯한 남부지역 출신 가난한 흑인들의 암울한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화법은 세련되지 못한 길거리 말투 그대로여서 무슨 박사학위 소지자의 언어가 이 모양일까 싶어 종종 불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직설적인 언어를 여과 없이 사용함으로써 길거리 인생들을 생생하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킴과 그의 동료, 가족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직면했던 환경은 너무나 끔찍하고 파괴적이며, 당연히 품위도 없을뿐더러 물질과 정신 모두 절대 빈곤선상에 있어 도대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피상적인 간접 경험과 머리로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하킴의 이야기는 더욱 큰 느낌으로 피부에 와닿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나이, 인종, 성별과는 별도로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매우 높이 인정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참작하더라도, 하킴 이야기의 성공적인 결말은 때로 그의 지적 능력과 업적을 자랑삼아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희박한 가능성을 언급하려면 그 부분은 꼭 포함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실패담과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밑바닥 현실, 아쉬움과 실망스러움, 개인적인 치부와 아픔을 묘사할 때에도 솔직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지적 발전에 대한 엄청난 학문적 도전뿐만 아니라, 그의 생존을 위협하던 함정과 폭력, 우회적이지만 노골적인 인종차별 위협 역시 가감 없이 잘 묘사함으로써 영화 속 반전보다 더 극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3. 인생의 조력자

하킴의 이중생활이야말로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꿈을 이룬, 미국의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 아닐까.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미시시피주의 동네 뒷골목을 공짜로 구경하기도 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교정을 둘러보며 왜 아무도 다람쥐를 잡아먹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순진한 모습에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또한, 더 많은 배움과 지식에 대한 갈망에 반비례하듯 종이로 인쇄된 읽을거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간이 달에 발을 내디뎠던 똑같은 20세기인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열악한 가정환경을 통해 경제적 빈곤이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현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하킴의 인생 역전극 이면에는 학교 소유의 최신 컴퓨터를 집에서 쓰게 해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교사들과 마약중독자임을 고백한 그에게 퇴학 처분 대신 무한한 신뢰로 새로운 기회를 주었던 지도교수 등 끝없이 그를 지지하고 바라봐준 다수의 조력자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 맺는말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별은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별의 모든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미국 과학계가 지금까지 대부분 백인 남성으로 채워져 유지됐다는 제도적 모순을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하킴의 존재 자체에 각별한 의미가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불타오르는 욕구가 어떻게 한 사람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또한 어떻게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별들과 함께 밝게 빛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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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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