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치 전쟁 - 2022년 대선과 진보의 자해극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4월
평점 :
인간의 정치적 특징을 일컬어 호모 폴리티쿠스라고 했던가? 사람이 셋만 모여도 어느 쪽을 편들어야 유리할지 정치적으로 행동한다고 하는데, 나는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는 모양인지 누구를 내 편으로 만들기도 서투르거니와 그런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혼자 유유자적하였다. 말이 좋아 소신이지 사실은 주변머리 눈치도 없고 남들이 뭘 하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수년 전 광화문 광장의 탄핵 촛불 모임을 계기로 특히 지인들과의 SNS를 통한 귀동냥으로 정치를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번 대선 투표에 참여해오면서 이번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투표하고 처절하게 낙담한 적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비판적 의미로 자주 쓰지만, 대통령에게서 ’제왕‘의 모습을 기대하는 우리의 허영심이나 어리석음에 대해선 눈을 감는다. (82쪽)
이번 대선의 경우, 매우 아쉽게도 정치적 성향이 다 제각각인 우리 식구는 특정 후보를 옹호 발언하거나 비난하는 행위가 거의 금기시 되었다. 인생 첫 투표권 행사인데 마땅히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아이들의 푸념도 들렸다. 함께 TV를 보다가도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애먼 드라마나 예능으로 채널을 돌리곤 했다. 서로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로 피곤해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고 ’암묵적 긴장‘과 ’가식적 타협‘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일관되게 가족 전체가 어느 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평범한 어느 가족조차도 이토록 의견이 통합되기 어려우니 ’정의사회구현’처럼 국민 통합이야말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아닌가 싶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어느 후보든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오십 보 백 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누가 당선되든 살아가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어떤 대통령이든 나라를 망하게는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지금까지 잘 살아있기야 하지만..
우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미련할 정도로 과도한 ’승자독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독재 정권의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승자독식‘ 자체를 문제 삼는 법은 거의 없다. (중략) 게다가 승자는 독식만 하는 게 아니라 패자에 대한 보복도 잘한다. 따라서 대선은 열정의 수준을 넘어 목숨을 건 전쟁이 되고 만다. (105쪽)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다가오는데도 차기 정권의 인수위원회가 마치 점령군 행세를 하느라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소식이 매일 뉴스 첫머리를 장식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양 진영 사이의 소리 없는 전투는 매일같이 벌어진다. 승자독식 체제가 전쟁 같은 정치를 만들었고 상대 진영은 언제나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적대적 인수인계 과정을 지켜보기도 진절머리 난다. 진보와 보수 어느 진영 할 것 없이 내세우던 국가 발전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의 과감한 인재 등용 정책은 미사여구로 끝나고 인사 참사는 늘 반복된다. 저자가 표현하는 ’편 가르기 부족 정치‘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벌써부터 헛소리로 만드는 당선자의 언행을 보건대 소리높여 외쳐대던 국민 통합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먼젓번 정권이 고구마 백 개를 한꺼번에 먹이는 내공을 지녔다면, 새 정권은 국민보다 대통령의 의전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누가 더 답답하고 위험한지 서로 경쟁하는듯한 착각이 든다. 대한민국 국민의 각자도생 능력이 DNA에 각인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민초들은 거친 광야에 나가 눈물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일까?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선,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확신이다. 확신은 나의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기에 십상이다. (318쪽)
이 책은 정치, 사회, 언론, 문화, 어학 등 전방위 다작으로 유명한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의 최신작으로, 아무 말 대잔치이자 역대급 비호감으로 남은 이번 대선을 진보 진영의 자해극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왕적 권력 무소불위(?) 대통령제의 한계와 개선점, 윤석열, 이재명, 문재인 세 정치인이 가진 특징과 딜레마, 정권 연장의 국민적 꿈을 배신한 민주당의 업보 등을 다루고 있다. 보수 진보 두 진영의 이면을 가급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면서도 주관적인 해석과 관전평을 아울러 제시하려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책 뒷부분에 포함된 미주에 표시된 정치 사안을 다룬 기사의 출처가 대부분 조중동이라는 점은 영 마땅찮다. 이번 대선처럼 특정 진영을 일방적으로 옹호 비방하는 유력 언론매체를 보기도 드물었지만, 상황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지 말란 보장도 없다. 차후 저자가 이번 선거 진영만큼이나 언론의 현주소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특유의 필력으로 날카롭게 파헤쳐 주었으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현실 세계에 살면서도 정치 감각이 여전히 부족하고 이제 뭘 좀 알 것 같은 필자 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훌륭한 대선 분석이자 관전평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는 다만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된 것이며,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단합된 힘이 필요함을 거듭 확인했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로 힘들고 괴로운 5년이 될지 어떨지는, 글쎄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데 뭔들 못 당하랴?
#북유럽 #정치전쟁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사회 #정치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