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 - 패션의 권력학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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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구성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 문학에서의 계급, 대중성, 수용성’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했던 영국 문인 13인과 그들의 작품 15편을 바탕으로 당시 하나의 권력이 되었던 패션, 즉 댄디즘에 천착한 일련의 연구물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시대를 휩쓸던 실버포크 장르의 인기에 비하여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노튼 영국 문학 선집에 실린 소설은 의외로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졸업하고 무려 30년 만에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아라비(Araby)’를 찾아 읽어보는 데 성공하였다. 저자는 실버포크 장르의 대표적인 문인과 그의 작품을 한데 엮어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댄디즘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초창기 격렬한 비판에 노출되었던 댄디즘이 어떻게 철없는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조롱거리로 변화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2. 빅토리아 시대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중 영국이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시기를 일컬어 빅토리아 시대라 한다. 이때 영국은 유례없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 초기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 제국주의의 확장, 과학의 발달과 물질주의의 팽창, 종교적 회의론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공리주의적 윤리주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면서 자기 만족적이고 고상한 체하는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빅토리아니즘이 생성되었다.


3. 산업혁명과 신흥 중간계급의 부상

농노와 장원을 기반으로 농업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귀족계급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경제력이 쇠락해지자 수입 곡물을 제한하여 이익을 보장하고자 곡물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이로 인해 귀족계급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강화되고 이들의 정치적 몰락은 가속화된다. 무역과 제조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거두게 된 중간계급은 영국 사회의 많은 것이 달라진 시대적 분기점인 1832년의 선거법 개정으로 참정권과 더불어 새로 획득한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을 욕망하게 되고 이는 고품격 과시의 소비로 분출된다.

4. 왜 실버포크(silver fork) 소설인가?

본래 생선 요리를 먹을 때 사용하는 은제 포크는 막대한 부에 더해 문화적 소양까지 물려받은 최상류 계급을 지칭하며 요즘 우리의 금수저 표현에 해당하는 셈이다. 정규교육이 부족한 중간계급에 소설은 교양을 키워주고 사회와 역사,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심어주는 교과서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소설을 접하면서 철학적 사유, 신학적 쟁점, 정치와 외교의 작동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귀족 따라 하기 교과서로 이들이 선택한 실버포크 소설은 곧 지식의 매개체이자 정보체계가 되며, 1820년대 후반과 183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사업 혹은 무역으로 떼돈을 번 서툴고 예법이 형편없으며 상스러운 중간계급 벼락 출세자들에게 궁정행사 일보 또는 예법 교과서 역할을 하면서 대중적 인기의 정점을 차지한다.


5. 댄디즘이란?

기생오라비처럼 멋 부리는 남자를 dandy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댄디즘(dandyism)은 19세기 초반 영국과 프랑스 상류층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하나의 사조로서, 신흥 중간 계층이 기존 귀족층이 누리던 품위와 문화의 깊이를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멋과 치장 따라하기에 몰입함으로써 일반 계층의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댄디는 중간계급의 가치관인 근면성과 실용성, 생산성을 거부하고 장식성과 무용성, 비생산성에 집착했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신분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제약 없는 금력으로 귀족계급을 넘어서 보려는 심리가 작용하였다.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상반된 삶의 방식을 흉내 내서라도 문화적 소양의 결핍을 극복하고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댄디즘은 의상과 스타일로 타인과 구별 지으려는 분리주의와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으려는 순결주의로 요약된다. 댄디즘은 ‘일종의 종교’였고 ‘피어오른 영웅주의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109쪽)

6. 댄디즘에 대한 반응

빅토리아 시대 초기의 토머스 칼라일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은 중간계급의 귀족 따라하기를 맹렬히 비난하였는데, 이는 귀족계급의 문화 자본이 총동원되어 구성된 댄디즘이 중간계급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간계급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초기의 격렬한 비판은 한결 누그러진 냉소와 속물에 대한 조롱으로 약화하였고, 윌리엄 새커리와 같은 문인들은 오히려 중간계급 남성성을 구현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를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후 귀족을 따라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자부심과 자신감이 커진 중간계급이 떠나간 자리는 노동자 계급이 채우게 된다. 1840년대 후반기 이후 노동 개혁의 수혜자가 된 이들은 품위 있는 소비를 욕망하는 주체가 되어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요 소비층을 이루게 된다.

7. 맺음말

당시 영국 귀족들의 특징을 지성, 신분, 재산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주의라 한다면, 댄디즘은 이러한 엘리트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또 다른 귀족주의를 지향하였다 하겠다. 외양적으로는 여성적 우아함을 표방하지만 결국은 자기숭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외적 변별성에 만족하지 못한 댄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미적 도약을 시도한다. 이는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엽기적인 분장과 의상으로 청중에게 경악스러운 웃음을 유도하며 ‘패션의 완성’을 외치던 희극인들을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댄디는 귀족 따라하기의 기조였던 여성적 특징을 교묘히 감추는 동시에 정신적인 고귀함을 추구함으로써 여성성을 폄훼 혹은 혐오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댄디가 보여주듯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본래 역설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이해하기 어렵고, 모순덩어리에다 부조리한 면모투성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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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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