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메리토크라시 세트 - 전2권 미래 사회와 우리의 교육
이영달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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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또는 능력주의 사회를 가리키는 메리토크라시는 1958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그의 저서 능력주의 사회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을 출간하며 당시 영국의 '귀족주의 사회(aristocracy)'를 비판하고자 대응하는 개념으로 만든 말이다. 그렇다면 영이 생각한 '능력(merit)'은 과연 무엇인가? 재력과 권력, 사회적 지위와 학력 등의 배경(background)보다는 지능과 노력을 능력으로 본 영은 '기회균등'의 원칙이 의도와 달리 '불평등하기 위한 기회균등'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그 바탕에는 능력주의로 인해 엘리트 계층과 중산층이 분열되면서 엘리트 계층은 지위를 유지하는 데 과도한 힘을 쏟고 중산층은 무력감을 느끼므로 모두가 불행해지는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본래 영의 저서는 우경화하려는 영국 노동당 정부를 경고하기 위한 풍자로 쓰였지만, 그의 뜻과 달리 오히려 정반대로 노동당 정부가 능력주의 사회 구현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게 된다

 

그의 책은 특히 미국에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교육사회학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인들은 '능력주의 사회'를 대학교육은 물론 아메리칸 드림의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대학이 능력주의 사회를 지키는 보루로 간주되면서 지능지수 검사, 로르샤흐 심리검사 등 이른바 '테스트 산업(test industry)'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테스트를 능력 측정의 객관적 근거로 신봉한 탓이었다. 곧 테스트의 많은 문제가 드러나지만, 당시 테스트에 열정을 보였던 이들은 그들 나름으로는 '귀족주의'를 넘어선 '능력주의'의 구현이라는 진보적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이후 수많은 문제와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능력주의 사회는 실현되기도 어렵지만,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적 이동성의 문제로 둔갑시켜버리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설사 실현된다 해도 문제투성이다. 능력주의 사회는 부자나 빈자 모두에게 자기 정당화 효과를 발휘하는 특징이 있다. 부자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 덕택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빈자는 자신이 능력이 있어도 한계 때문에 빈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요컨대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격차에 가장 둔감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존 롤스(John Rawls) 같은 이는 능력주의 사회를 배격한다. 능력주의 사회가 민주적일지는 몰라도 공정성(fairness)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마이클 영은 85세를 맞은 2001, 자신의 책이 경고를 위한 풍자(satire)였건만 능력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능력주의 사회 이데올로기가 엘리트 기득권층의 지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층계급의 자녀 중 최상위 아이들을 뽑아 엘리트층에 편입시켜 주는 출구를 열어주고 잘 관리하는 것이 기존 체제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원칙도 그런대로 제법 잘 지켜지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소수의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유명 대기업들이 등록금을 대주면서 온갖 생색은 다 내고 있다. 이들의 후원으로 배출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정계, 재계, 법조계 등 사회 기간 분야에서 세력을 얻은 뒤 과연 누구를 위해 더 힘을 쓸지는 자명하다. 결국, 능력주의는 다양한 사회악의 근원을 떡잎부터 키워내는 셈이다.



 

미국은 고등교육 '소비'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GDP2.75 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는 유럽국가들의 2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한, 미국은 고등 교육에 가장 돈을 많이 지원하는 국가다. 그 돈은 사회복지를 희생으로 한다. 사회복지에 들어가야 할 돈이 교육 분야에 쓰이는데 물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건 좋은 일이지만, 미국이 선진 21개 국가 중 사회복지는 꼴등이라는 점은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대학, 그것도 좋은 대학을 간 사람일수록 국가지원이라는 혜택은 크게 누리는 반면,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서열체계에서 낮은 곳에 속하는 대학을 간 사람들이나 아예 대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려야 할 몫도 누리지 못한다. 과연 이걸 공정한 게임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막대한 금액의 세금을 후원받는 영재학교 학생들이 국비로 공부한 후 과학 분야 대학에 진학하여 기초과학 발전에 힘쓰는 대신,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야망과 영달을 위해 의대로 진학하는 현상에는 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




저자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서 조사한 63개국 가운데 50위 내외 수준인 우리나라 대학교육 경쟁력을 예로 들며 사실상 대학교육 후진국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 정책을 들이밀어도 모든 문제는 대입 제도로부터 파생되고 모든 교육 혁신 담론과 의제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입학 수학능력 시험의 개발자가 수능 무용론을 공공연히 밝혔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벌써 2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물론 수능(특히 영어)을 대체 보완할 장치를 개발, 도입하려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객관식이 아니라는 표면상의 이유로 좌절된 바 있다. 대학교육 개혁의 논의는 자녀가 대학생일 때 더욱 첨예해지는 경향이 있다. 집안에 둘이나 되는, 코로나19 상황에도 대학생이 되었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데도 학교 다닐 때의 등록금과 여전히 똑같은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등골 휘는 학부모가 되고 보니 대학교육 제도 개혁의 필연성을 더더욱 통감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미래 교육을 위해 저자는 국·공립대학의 통폐합, 사립대학의 시장 자유화, 국공립과 사립대학의 입시 제도 이원화, 고등학교 시장을 완전 개방, 영리 목적의 대학 설립과 운영 등을 제안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수능 최소 6회 실시 의견도 포함된다. 엄청난 양의 자료 분석과 오랜 기간 동서양을 넘나들며 익혀온 경륜으로 보건대 저자의 깊이 있는 혜안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인다. 위의 제안 역시 교육계의 세계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충분히 숙고한 결과일 것으로 짐작되나, 대학이 움직이게 되면 결국 이하 교육 기관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교육 개혁을 위해 현장의 관계자들이 겪게 될 모든 혼란과 어려움을 몇 가지 정책만으로 잠재우려면 현실적으로 너무나 큰 희생이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방안도 함께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한 해 한차례의 수능을 치를 때마다 수험생, 교사, 시행기관 할 것 없이 범국가적인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학생들의 수학능력 검증을 위해 최소 6회의 수능을 치르자는 저자의 개혁 방안은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수업일수 부족과 학력 격차 가속화, 온라인 수업 피로도 가중 등으로 더욱 열악해진 상황에서 관계자들의 트라우마를 일으킬 만하다. 자가 제안하는 수능시험 최소 6회 실시를 혹시 주변 지인들 특히 고3 수험생에게도 의견을 구해는 보았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수험생의 인생이 갈리는 중차대한 날이 1년에 단 하루인 것도 문제지만 그 말 많고 탈 많은 국가적 행사를 다섯 번이나 더 치를 여건은 되는지, 반드시 다섯 번을 더 실행해야 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된 것인지, 다섯 번을 더 치르고 결국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 등 여러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논의가 좀 더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개혁이 참으로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화두임은 틀림없지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저자의 생각처럼 대통령의 생각과 힘으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가 없어야 교육이 산다는 자조 섞인 한탄처럼 차라리 누가 정권을 잡든 교육만큼은 교육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관계 기관은 자생력을 키우도록 지원만 해줘도 좋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를 걱정하시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한민국교육필독서 #메리토크라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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