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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문학, 인간의 생애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ㅣ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커다란 질문(big question)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과학이 답변하더라고 말하는 책을 우연히 접하고 저자와 함께하는 자리까지 쫓아가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들었던 답변이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 천문학 등 과학적인 시각과 견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젊은 세대 인문학자인 저자가 25권의 고전을 통해 본 인문학적 시각의 답변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똑같은 질문에 색다른 답변이 나올 수 있다는 자체부터 흥미롭습니다.

미래를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 늘 예측 불허의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과정이 결국엔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우선 이 책에서 제시하는 25권의 고전 가운데 제대로 읽은 작품이 열 손가락에도 꼽히지 않는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구성상 특징을 살펴봅니다. 저자는 마치 어린이가 성장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경로를 거쳐 가듯 인생의 각 주요한 시기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배치하고 간략한 줄거리 소개와 함께 생애 주기를 맞아 주인공의 삶 속에 투영되는 질문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고전일까요? 고전은 시대, 나라, 환경, 사회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며 여기에는 인간 본성의 핵심과 사회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을 언어로 남긴 고전을 톺아보면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고전 가운데도 문학을 살펴보면 결국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타인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통찰함으로써 저자는 독자들이 인생을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꾸려가는 힌트로 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누구나 악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상황을 알려 하고, 이념이나 사람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판단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생애를 8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구성하였으며 도입부에 작품의 대략 줄거리와 주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츠비가 왜 위대한 인물인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왜 시대를 뛰어넘는 명저인지, 악마를 일컫는 용어 ‘바알제붑‘에서 착안한 제목 <파리 대왕>이 붙은 이유는 인간 본성에 숨은 악마성 때문이었다는 등, 작품의 이해를 도와주는 알뜰한 지식을 아낌없이 제공합니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제목만 들어도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명작들입니다. 저자의 시원시원한 말투와 재미난 설명 덕분에 순식간에 읽히기도 하였지만, 어느 독자라도 완독 후 도입부를 다시 들춰본다면 25권의 고전 내용이 새롭게 다가옴을 느끼기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책에서 작가가 써놓은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읽고 싶은 메시지를 읽는 게 아닐까. 결국, 주변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의 비밀은 자기 내면의 성장에 있다. (279쪽)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부분은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확실한 미래를 다룬 7부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온다는 기별만 보내오지만 정작 오지 않는 고도의 다른 이름은 죽음으로, 이반 일리치가 보여주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죽음의 5단계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산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적어지는 인생의 시점을 지나고 보니 죽음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자세가 대단히 고무적인 소재이며 다가오는 느낌은 이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인생을 사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즉석에서 죽음을 주제로 책 여백에 꽤 긴 메모를 하게 만들기도 하여, 그 전문을 실어봅니다.
“벌써 두 달째,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연명 치료도 거부한 그는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에게 이미 작별 인사를 해 두었습니다. 미련도 슬픔도 모두 마음속에서 정리해 놓았으며 본인의 이러한 자세에 친구들 또한 더는 감정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고도(죽음)는 우리의 고도보다 다만 조금 더 일찍 오고 있을 뿐입니다. 사그라드는 그의 목숨 빛에 또 한 가지 인생의 진실을 배웁니다. 아직 갈 길이 남은 친구들과 모이는 날,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를 안주 삼아 한 잔 기울일 테지요. 언젠가는 그와 다시 만나리라 생각하니 그의 예정된 죽음이 이제 더는 서럽지 않게 다가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개인에게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경험이지만,
전 인류적으로 보자면 늘 반복되는 하나의 프랙탈(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구조일 수 있다. (371쪽)

결과적으로 앞서 제시했던 커다란 질문에 대하여, 자료와 실험을 기반으로 우리의 생물학적 정의와 정체에 대한 분석이 과학적 답변이라면, 문학적 답변은 이야기에 살고 죽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장 인간다울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요.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인생의 정수이며 그 자체로 아름답게 빛나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바로 지식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채우고 후식으로 만 원에 네 캔짜리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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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