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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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하고 도전적인 사회심리학자가 지금 당신의 행복은 진짜가 아닌 착각일 뿐이라고 말해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YOLO(You Only Live Once) 바람이 불어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자고 난리더니, 최근에는 몸 챙김, 마음 챙김에 이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유행하고 있음을 안다. 여기저기서 나 이 정도로 잘살고 있다며 경쟁적으로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쯤에서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의 말처럼 모두가 올라탄 행복 열차에 급제동을 건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수백만 명의 성인이 마약, 알코올, 담배, 도박, 포르노, 게임 등 쾌락을 발견하는 위험한 방법에 몰두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더 좋은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 정신의학자 할로웰 (82)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조선 왕조의 어느 임금님 부럽지 않게 더 잘 먹고 더 잘 입으며 심지어 더 오래 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당연히 옛날보다 더 행복한 세상을 산다고 해야 맞는 말일 텐데, 대한민국 국민 개개의 삶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세계 143개국 가운데 118위에 노인 자살률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최대 열 배에 이르며 40대 남성의 사망률은 세계 1위이다. 201664만여 명이던 우울증 환자의 수가 2019년에는 80만 명 가까이 증가하는 등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저자는 우리가 과거보다 더 불행해진 이유를 전작인 <풍요중독사회>를 통해 불화가 극심한 풍요-불화 사회에 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욱 암울하게도 우리가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불행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풍요 속의 빈곤 현상으로도 모자라 더욱더 놀라운 반전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사실 자본가계급이 만들어낸 행복산업의 상품이라는 점이다.



 

사회가 안정적인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못하면,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기본소득을 사회 시스템이 보장해주지 못하면, 이렇게 개인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연호 (139)

 

독점자본가계급은 왜 21세기형 산업혁명인 행복산업을 만들었을까? 첫째는 이윤 창출의 도구인 노동력의 고갈 현상으로, 하나로 뭉쳐 저항하던 노동자들을 무력으로 흩어놓았더니 다들 약해져서 더는 덤비지 않지만 너무 약해진 나머지 이제는 일마저 제대로 못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의 열정과 활력 상실이 곧 자본주의 최대의 위협임을 감지한 자본가들은 결국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힐링 산업이나 행복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자본가계급 역시 극심한 경쟁으로 불행해지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 최상위층에 군림하지만, 계급적 본성으로 인해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들 역시 행복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 행복을 갈구하지만, 근원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누리는 자유를 돈이 주는 자유와 치환하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노동자는 기댈 돈이 없어 생기는 불안감, 즉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자본가는 돈의 위력에 굴복하기 싫은 존중 불안에 몸부림친다. 결국, 돈 그 자체는 행복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한국인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물질주의 행복론이 득세하지 않는 건전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보주의는 사회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보다 사회제도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현재의 사회제도 덕분에 호의호식하고 있는 기득권과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제도 개혁을 결사반대한다. (148)

 

지금의 우리 사회는 겉만 번드르르할 뿐 사실은 속병이 깊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믿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였고 돈이 곧 진리요 정의였다. 돈 많은 집 자녀는 자제분이 되고 돈 없는 집 자녀는 그냥 아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돌보지 않는 각자도생의 사회이기 때문에 믿을 것은 오로지 돈뿐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돈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회의 사람들은 생존 불안존중 불안에 시달린다. 월평균 소득이 43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는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그 이상을 버는 가구 역시 존중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우리에게 일찍이 북유럽식 사회제도를 채택하여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국가가 개인의 생존을 상당 부분 책임져주고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도 크지 않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덴마크야말로 유토피아와 다름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흔히 임금 노예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이들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가 참다운 행복을 누리려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절대다수의 사람이 정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회로 개혁해야만 한다. (255)

 

결론적으로 저자는 개인의 행복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보다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실직자 생계지원, 재취업 국가지원, 기본소득 등을 보장하는 사회제도에 달려있으며, 개인의 생존을 국가가 책임지는 평등한 사회 구조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행복을 위한 삶의 과정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며 미국을 위시한 신자유주의 논리에 물든 주류 심리학의 가짜 행복론과 과감히 결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격한 공감과 지지를 보내며, 아울러 저자의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일갈이 진정한 행복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갈매나무출판사 #가짜행복권하는사회 #김태형 #사회심리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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