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배신 - 마이클 포터가 파헤친 거대 정당의 위선
마이클 포터.캐서린 겔 지음, 박남규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당신이 지킬 수 있다면 공화국입니다."

1787년 새로운 국가가 공화국이 될 것인가, 군주국이 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국의 정치체제는 원래부터 고안된 대로 작동해 왔으며(진실), 그 주된 목적은 일반 대중의 최선의 이익(거짓)에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 국가를 알게 될수록 워낙 넓은 영토 덕분에 소위 점령국에 자국군을 주둔시켜 세계를 호령하다 쇠락하고 말았던 로마 제국의 길을 걷고 있으며, 외부의 영향력이 아닌 체제 내부적인 이유로 만성 민주주의 부전증을 앓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들은 "오늘날 미국 양당정치의 문제는 정당과 정치인은 물론 주변 산업계 인사들과 단체 간의 경쟁적 특징"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이 정치-산업 복합체의 사익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즉, 권력과 수익을 증대시키고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만, 권리가 보장된 업계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 되어야 하는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기능은 뒷전이다. 이들은 또한, 정치산업은 공공의 영역이 아닐뿐더러 공공의 탈을 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알짜배기 민간 산업임을 폭로하고 있다. 일당독재가 아니라 양당독점 체제였다.



이 책의 공저자인 미국의 대표적 정치혁신 활동가 캐서린 겔과 세계적 비즈니스 전략가 마이클 포터는 미국 정치체제를 바라보는 데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각자의 기업 운영 경험과 경쟁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공동 연구를 통해 정치-산업 이론을 정립한 저자들은 미국 정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 사람들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을 헌법에서 파생한 숭고한 원칙과 공정한 구조 및 관행에 기초를 둔 공적인 제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도 여느 민간 산업과 똑같이 경쟁을 형성하는 성과보수와 수익 요인에 따라 움직인다.

• 정치산업의 역기능은 불건전한 경쟁과 진입장벽 때문에 고착되고 그 결과의 내용과 관계없이 양당 체제의 입지만 공고해졌다.

•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 건전한 경쟁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견제 세력이나 권한이 있는 독립적 규제 당국이 없기 때문이다.

• 건전한 경쟁과 혁신, 책임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정치의 성과보수를 바꾸려면 선거와 입법 규정에 대한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

• 기업은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경복합체의 주요 관여자가 되면서 정치의 역기능을 심화시켰다. 재계는 현재의 정치 관여 모델을 재검토하고 정치의 구조적 혁신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업과 사회에 장기적 이익을 가져오는 길이다.



이들은 다른 경쟁 산업과 마찬가지로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사업 분석 도구와 함께 독특한 다섯 가지 경쟁요인 이론을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적용한다. 또한, 선거 과정, 입법 ‘기계’와 돈의 역할, 경쟁의 개방 네 가지 핵심 영역에서 색다른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산업구조가 바뀌듯 정치 체계도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단기간 내 달성 가능한 동시에 강력하고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1. 경쟁의 성격과 강도

2. 구매자의 협상력

3. 공급자의 협상력

4. 신규 진입자의 위협

5.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하는 대체재의 압력

본래 이 경쟁요인 이론은 기업이 속한 산업구조와 그것이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지만, 이를 아래와 같이 정치에 적용하면 정치 역기능의 근본 원인과 정치혁신을 이끌 강력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산업적으로는 강건하나 민족적으로는 혐오스러운 변태적 경쟁"이라 일컫는 미국 정치산업의 구조, 즉 정치-산업 혹은 정경 복합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1. 공급자 : 후보, 선거운동원, 유권자 데이터, 두뇌집단, 로비스트

2. 대체재 : 무소속 유권자

3. 기존 경쟁자 : 선거와 법안을 두고 경쟁하는 민주당과 공화당

4. 신규 진입자 : 새로운 정당

5. 구매자 : 직접 선거 유세, 광고, 언론 보도, SNS 등의 채널 및 시민, 기부자, 주요 유권자, 특수 이해관계자 등의 고객들



미국의 정체 체제가 ‘산업화’한 가장 큰 이유는 각종 법률과 관행들이 기업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때문이다. 기업이 정치에 관여하는 가장 흔한 형태로는 두둑한 대가를 바라고 벌이는 로비 활동, 로비스트를 키우기 위한 이른바 회전문 인사로 불리는 전직 관료 영입, 기부자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도 ‘검은돈’을 살포하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자금 제공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회사가 지지하는 후보나 안건에 표를 던지고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도록 종용하거나 로비 활동이나 선거 관련 자금 사용 내용을 적극적으로 숨김으로써 직접 민주주의 절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업들의 단기적 이익만 따지는 사고방식은 불건전한 정치적 경쟁을 부추겨 여러 문제점을 파생시키고 있다. 경영 환경을 훼손하여 공익을 증진하거나 경제 전체를 개선하지 못하고, 반독점법을 느슨하게 해석 집행하여 유례없이 많은 합병을 일으켜 시장을 왜곡하고 자유경쟁을 저해하며,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양질의 공공 교육, 깨끗한 물과 위생, 총기폭력 줄이기, 주택문제 개선 등 주요 사회 정책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미국 정치 제도는 의회 구성원이 공익을 위해 활동하면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큰 기이한 구조를 지적하면서, 그러나 저자들은 정치혁신이 당파적 정체성을 깨뜨리고 민주주의가 훨씬 더 지배적인 정치-산업 복합체로 진행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혁신은 ‘선거 기계’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모든 주에서 5인 결선 투표제를 시행하여 타협과 문제해결을 진척시키는 건전한 초당파적 의회 입법 시스템, 즉 현대적 입법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선에서는 현행 다수결 투표제 대신 과반을 득표해야 선거에서 승리하는 순위 선택 투표제를 적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혁신은 건전한 경쟁과 타협 모두를 정치에 돌려주고, 현 체제를 민주적 원리로 재정비하며, 유권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대한 결과를 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자유시장 정치"라 부르는 구상안은 기능부전에 빠진 미국 정치를 정체의 늪에서 건져낼 방법이 선의의 정치적 경쟁 도입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개선책의 핵심은 진보 시대의 개혁가 로버트 라폴레트(1855-1925)의 말로 잘 압축된다. "정부를 대표하고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소극적인 시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잘못된 것에 대해 공격적인 세력들로부터 정부를 구하려면 사람들은 옳은 것에 대해 적극적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미국 정치체제의 실제 역학관계와 심오한 도전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들의 눈을 뜨게 해줄 목적으로 쓰였다. 현행 체제의 문제점을 찾아 이를 재구성하는 강력하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함으로써 매우 독창적이고 초당적인 범국민적 협력을 유도하는 제안서이자 안내서이다.

최근 실시된 대선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공화당의 도날드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하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으로 끝났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부정선거 소송을 준비하는 sitting duck 트럼프는 사실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의 재선에 유리하도록 선거판을 교묘히 꾸며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간의 그의 행적으로 보아 매우 익숙하고 충분히 예상되는 절차였다. 한국과는 영 딴판인 미국의 정치 현실을 순 양아치들이라 험담하기보다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 방향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학 #정치사회 #권력의배신 #미국대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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