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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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우리의 정보습득은 예전보다 더 빠르고 쉬워지고 있다. 정보 범람의 시대에 발맞춰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시시각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있으나 인간의 학습 속도는 형편없이 느리다. 정보화 사회라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학습 능력이나 부모 세대의 영향 등 다양한 원인으로 개별 학습자 사이의 정보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이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동시에 학습 능력의 차이가 있고 없음에 큰 의미가 부여되고 경제적 능력과 동의어인 시대가 되었다. 저자의 표현처럼 지식이 곧 삶의 무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노력을 애써 외면한다거나, 의도치 않은 정보격차로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당하는 일도 생긴다.

이 책의 제목이 인문학 ‘리스타트’인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경제-정치-역사-종교-철학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의 기초는 30년도 더 전 고등학교에서 이미 다 배웠음 직한 ‘흐린 기억 속의 지식’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배울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일 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몸에 배어있는 지식이라 할 수 없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실제 생활에 묻어나오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련한 옛 추억의 인문학을 오늘에 되살려 개인의 발전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삶의 무기로 만들자고 한다. 코로나19 전염을 계기로 모든 것에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진 지금,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힘을 얻어 흔들리지 않는 통찰의 바탕으로 삼자고 말한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우선 경제가 인류생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학문의 뿌리이고 정치는 이를 조정하는 모든 행위이며 인류 역사는 이들의 총합이라는 속성을 밝히고(1장), 인간의 삶 자체이자 그 삶에 대한 기록인 역사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바라본 세계사를 훑어보며(2장), 인류생존의 행동지침인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방법과 설명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설명하고(3장), 오랜 연인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절대성을 제공하는 종교와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는 철학 사이의 끈적한 사랑 이야기가 사실은 대제국의 정치적 소산이었음을 말한다.(4장)



역사 속에는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저지른 만행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개인이 돈 때문에 사람을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것 못지않게 국가도 재정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나 집단을 희생시켜왔다. 국가재정은 그만큼 잔혹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59쪽)

당파가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왕은 균형자 역할을 하며, 그들의 대립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았을 때, 백성의 삶은 더 좋아진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는 정치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당파 간의 팽팽한 세력 균형이 이뤄질 때, 국가는 오히려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6쪽)

보수란 어떻게 해서든 힘센 놈들이 자유롭게 힘을 더 키울 수 있게 만들자는 세력이고, 진보란 그 강자들의 틈을 파고들어 약자들이 설 자리를 조금이라도 넓혀 보겠다는 세력이다. 여기서 힘이란 곧 밥그릇을 선점할 수 있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69쪽)



1장에서는 인문학의 뿌리와 다양한 학문적 갈래를 주로 설명에 의존하고 있는데, 저자의 전작인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처럼 한눈에 파악하기 좋은 계통도를 제공하였다면 이해하기 훨씬 편했을 것 같다. 2장은 아무래도 세계사를 다루다 보니 영토의 확장과 변천을 보여주기에 가장 무난한 지도와 도표 같은 시각 자료가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바람에 나머지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점은 조금 아쉽다. 한편 작고 얇지만 알찬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은 간결한 설명과 산뜻한 파란 색상의 도식화된 요약문장으로 저자의 논지와 본문의 핵심을 잘 짚어주어 가독성을 높여준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에 제시된 인문 지식은 난해하고 복잡한 최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지식의 종합 선물세트인 관계로 다양한 종류별로 맛보기는 가능하나, 3대째 대를 이어 내려오는 맛집의 조리 비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먹고사니즘에 파묻혀 책 한 권 읽기는 고사하고 하루 벌이에 급급한 소시민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 메뉴로 쓰기에는 충분하다. 예컨대 우리에게 늘 부담스러운 세금과 국가재정의 역사적 관계, 하루도 멈추지 않아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정쟁의 당위성, 화석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간의 발자취를 따라가 어제의 실수로부터 미래의 교훈을 얻는 세계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졌으나 도리어 인간성 억압에 이용된 종교의 반사회적 부작용,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기 마련인 삶을 온건히 지켜내기 위한 행동지침으로 발전한 철학 등이 그것이다.



결국,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내 삶을 더욱더 윤택하고 아름답게 가꿔 갈 수는 있다. 인류의 발전이란 스스로를 깨트려 생각을 깨우치고 입이 트이고 행동이 달라져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정의처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발전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맛보았으면 한다.

#인문교양 #인문학리스타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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